사물 정리, 15일 차

46개의 물건을 정리하다

by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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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리될 사물 세 가지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통, 천, 그리고 아이스 트레이입니다.




오렌지 색의 미니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가장 먼저 말을 시작합니다.


“나는 쓰레기통이야.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아담하고 귀여운 크기지. 작고 깜찍한 게 내 매력이야.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쓰레기를 먹고살아. 물론 몸이 작아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지는 못하긴 해.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내 매력 때문에, 선택받은 줄 알았어. 살다 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고. 아무래도 주인의 귀차니즘이 더 큰 몫을 한 것 같아.

그녀는 집 안 곳곳에 작은 쓰레기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한번 앉아서 일을 시작하면, 자리에서 잘 안 일어났지. 그런데, 그것 때문에 문제가 하나 있었어. 앉은자리에서 나오는 각종 쓰레기들을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거지.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귀찮았던 거야. 그게 내가 이 집에 들어오게 된 진짜 이유야. 앉은 채로 어디서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주로 책상 위에 놓여 있었어. 한동안은 나한테 쓰레기를 마음껏 버렸지. 처음에는 좋았을 거야. 일일이 일어나서 버리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내가 너무 작아서, 쓰레기를 많이 담을 수가 없었던 거야. 쓰다 보니까, 이전하고 별로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이전보다, 쓰레기를 조금 더 모아서 버리는 정도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은 거지. 그리고, 집 안에 쓰레기통이 많아질수록 할 일도 점점 늘어난다는 것도 뒤늦게 깨닫게 됐지.

그걸 알고 나서부터는, 나한테 버리는 쓰레기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어. 결국에는 내가 할 일이 아예 없어지고 말았지. 책상 앞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지는 아주 오래되었다고.”


가운데 있던 천도 할 말이 있나 보네요.


“나는 체크무늬 천. 이 집에 들어온 지는 5년이 넘었어.

오자마자 할 일이 무척 많을 줄 알았는데, 몇 달 동안은 오히려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렸지. 날마다 무료해서,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더군. 나를 꺼내자마자 치수를 재고, 자르고, 박음질까지 하더라고. 너무 기분 좋았지. 드디어 나도 할 일이 생겼으니까. 마침내, 근사하게 변신을 마쳤어.

한동안 나는 덮개로 쓰였어. 안주인이 오븐에 먼지 쌓이는 것을 무척 싫어했거든. 그러다가, 이사하고 난 뒤에 또다시 백수가 됐지.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고서 나를 어떻게 잊을 수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가만히 듣기만 하던 아이스 트레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아이스 트레이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용도가 좀 달라. 마늘만 전문적으로 상대하거든. 이 집에 처음 와서 마늘을 얼리던 날, 안주인은 나를 못마땅해했어. 마늘이 잘 안 빠진다고 나를 얼마나 구박했는지 몰라. 나를 그나마 사랑해줬던 것은 당신이었어. 그런데, 당신은 조심성이 많이 부족했지. 얼린 마늘을 함부로 꺼내다가 나를 깨뜨리고 말았거든. 나는 몸이 연약해서 조심조심 다뤄야 했는데 말이야. 내가 그렇게 된 뒤로, 더 이상 나한테 마늘을 얼리지 않았어. 찬장에 고이 모셔 놓았기만 했지. 그리고, 마침내 나는 잊혔어.

그런데, 오랜만에 나를 꺼낸 이유가 나를 버리려고 작정해서 그런 거야? 아직 마늘을 얼릴 수 있는데도? 그럼 이제 마늘은 누가 얼려?”




집 안에 쓰레기통이 많으면, 할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븐 위에는 먼지 덮개가 엎어도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마늘을 얼리는 더 좋은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46개의 물건이 정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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