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만들어진 통도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물건 정리를 시작한 지 17일 차입니다.
오늘 정리될 사물 세 가지는 양초, 스프레이통, 스타벅스 핫초코 통입니다.
그중에서, 안이 텅텅 비어있는 스타벅스 핫초코 통만 할 말이 있나 봅니다.
“당신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괜찮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
내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내용물 못지않게 겉모습까지 염두에 두고 만든 거거든.
그렇지 않고서야, 통을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예쁘게 만들 이유가 없잖아.
당신도 내용물보다 겉모습에 홀려서 나를 구입했던 거 아냐?
막상 내용물을 다 먹고 나서도, 그 이유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 아냐?
이 통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 계속 고민한 거 맞잖아?
나처럼 빼어난 외모를 지닌 포장을 만나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그러니까, 당신이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어. 더군다나 당신은 이미 정당한 가격을 지불했잖아. 당신이 나를 구입할 때 낸 돈 안에는 예쁜 포장비용이 이미 들어 있었어.
오히려,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나지. 이렇게 예쁘게 통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버려질 텐데. 인간들은 참 이상해. 정작 중요한 것은 내용물인데, 왜 겉모습에 유독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어. 예쁜 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인데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예쁘게 태어난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고.”
심지가 다 타버린 양초를 왜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아직 스프레이 기능이 작동되는 스프레이통은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져서 버리기로 했습니다.
핫초코 안에 있는 내용물을 다 먹은 꽤 되었습니다만, 통이 마음에 들어서 차마 못 버리고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빈 통 안에 다른 것을 담아 놓는 것도 고민했었습니다만, 이제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 보니, 핫초코 통이 놓여 있던 자리에는 통이 놓이는 것보다,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