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더 작은 집을 찾아 나서는 이유
전방에 보이는 옥탑방을 바라보면서, 아내가 말합니다
“오늘은 저 앞 집 옥상에 사람이 유난히 많네.”
“그러게. 일요일이라서 그런가?”
“평소에는 인기척도 없던 집이었는데, 모처럼 활기가 도는 게 참 보기 좋다.”
“맞아. 이제 사람 사는 집 같아 보인다.”
요즘 들어 테라스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일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오늘은 건너편 옥탑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처럼만의 소란을 즐기고 있네요. 저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분들은 고층 아파트 테라스에서의 근사한 휴식을 상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대를 저버려서 죄송하지만, 저희가 앉아 있는 공간은 그렇게 멋진 공간이 아닙니다.
저희가 지금 앉아 있는 곳은, 세 들어 사는 2층 집 뒤편의 아주 자그마한 공간입니다. 폭은 간신히 60cm 정도나 될까요. 최근에서야, 그 공간을 저희는 테라스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애초부터 이 공간이 테라스 역할을 제대로 한 건 아니었거든요. 이 집에 이사온지 1년이 넘어서야 이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공간의 가치를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 덕분이었습니다
이사 오면서부터, 그 공간은 자전거가 독차지해 버렸습니다. 잘 타지도 않던 자전거가 1년 동안 그곳에 방치되어 있던 탓입니다. 자전거를 치우고 나자, 원래의 빈 공간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기다란 의자 하나를 무심코 그곳에 놓았습니다. 사실 의자라고 부르기보다는, 허름한 발판대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도배하시는 분들이 사용하는 도배 발판 작업대 위에 스펀지를 올려놓은 게 전부였으니까요.
어쨌든 의자 하나가 그 공간에 놓였을 뿐인데, 갑자기 그 공간이 달라 보였습니다. 자꾸 앉게 되고, 쉬게 되고, 바라보게 되고, 이야기하게 되더군요. 의자가 놓이고 나면서부터 참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둘이 의자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거든요.
저희가 사는 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의자에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면 꽤 근사한 전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희들 눈에는 꽤 괜찮아 보이는데, 솔직히 다른 분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세련되고, 화려하고, 멋진 마을 풍경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좀 있거든요. 주변 대부분의 집들이 오래된 낡은 주택들 뿐이니까요. 물론 먼발치로 아파트도 듬성듬성 눈에 띄고, 백 미터 전방 앞에는 최근에 지어진 빌라도 있습니다만, 지은 지 몇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집들이 가장 많습니다.
테라스 바로 앞, 그러니까 저희 집 뒤쪽은 지금 비어 있습니다. 이사 오기 전부터 공터였던 곳입니다. 현재 그곳에는 고구마와 쌈채소, 그리고 감자가 심어져 있습니다. 현재 이웃집 아저씨가 소일거리로 밭을 가꾸고 계시거든요.
담장 바로 아래에는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꽃이 피어도 무슨 나무인지 도통 몰랐었는데, 최근에서야 그 나무가 개복숭아 나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나무에 꽃이 만개했었습니다. 덕분에 개복숭아 꽃을 하염없이 관찰할 수 있었네요. 종일 꽃만 바라보고 있는데도 싫증 나지 않더군요. 이 집에 이사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이사 오게 된 결정적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풍경 덕분이기도 합니다
풍경 하나에 마음을 뺏겨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하면, 어떤 단어로도 설명하기는 참 힘들 것 같네요.
이 집은 세 번째로 방문한 집이었습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정작 이 집을 소개하여준 중개업자 분도 마지못해 소개해 준 집이었으니까요. 이 집은 애초부터 후보 순위에 들어 있지도 않은 집이었습니다. 다른 중개업자분에게 물어 물어 간신히 저희에게 말을 꺼낼 정도였으니까요. 집을 보기 전부터, 중개업자분이 그러시더군요. 집이 너무 작아서, 많이 불편할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저희는 집이 작다는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반가웠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작은 집을 찾고 있었거든요. 집이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가 살아왔던 집들이 분에 넘치게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혹시 있을지 모르겠네요. 세상에 작은 집을 찾아다니는 부부가 있다니, 반신반의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큰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서 안달인데, 스스로 더 작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집은 넓을수록 좋다는 생각, 살아보니까 달라졌습니다
대궐같이 넓은 집에 산 적은 물론 없었습니다.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넓었던 집이 28평 정도였으니까요. 그 정도 규모의 집도 두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넓더군요.
넓고 큰 집의 단점이, 작고 좁은 집의 장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집의 매력은, 일단 유지비, 관리비가 적게 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집이 넓으니까, 냉난방비가 기대 이상으로 많이 들더군요. 보일러 밸브를 잠그고, 창문마다 뽁뽁이를 붙여고, 단열재를 보강해도 결국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넓은 공간 전체를 덥히거나, 식히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으니까요. 유지비가 아까워서 절약한다고 노력하다 보니까, 결국에는 작은 방에서만 지내게 되더군요. 넓은 공간을 내버려 두고 우리가 왜 이러고 사는 걸까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집이 넓으면, 할 일도 정말 많아집니다
일단은 청소를 시작할 때마다 각오부터 단단히 다져야 했습니다. 집 전체를 제대로 청소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죠. 먼지 털고, 쓸고, 닦고, 정리까지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리하거나 손볼 곳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도대체 손볼 곳은 왜 그리 많은지, 돌아서면 새로운 집안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조금만 미루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금세 티가 났습니다. 집 안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으니까요. 그야말로 집이 상전이었습니다. 집을 떠받들고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집이 작으면, 가사노동의 시간도 월등히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희생하는 시간도 확실히 적어질 테고요. 불필요한 짐도 줄어들 것이고, 꼭 필요한 물건만 갖추고 살게 될 것입니다. 작은 공간에 있다 보면, 부부 사이도 더 친밀해지고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작은 집을 원했던 결정적이었던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들이 너무 욕심껏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중개업자분이 작은 집으로 저희를 안내했습니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서 다다른 집은, 지은 지 몇십 년은 된 듯한 오래된 이층 집이었습니다. 1층과 2층 모두 비어 있었는데, 저희를 안내한 곳은 2층이었습니다. 꽤 넓어 보였던 1층에 비해, 2층은 한눈에 보기에도 작고 아담했습니다. 2층 공간 대부분을 옥상 바닥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집이라고 미리 알고 왔는데도, 아내는 살짝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실내의 모든 공간을 다 합쳐도 9평이 채 안 될 정도로 작았거든요. 작은방은 1평이 살짝 넘는 크기였고, 큰방은 4평이라고 우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더군다나 큰 방의 문은 지금은 거의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미닫이 문이었습니다.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죠. 거실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듯했고, 주방은 냉장고를 놓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좁았습니다. 집이 작다고 미리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이 정도면 너무 작은 거 아닐까? 너무 작으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삿짐이 이 작은 공간에 다 들어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작은 집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구나
후회를 하면서, 화장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염려가 일순간에 다 사라져 버리는 일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현듯,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화장실 하나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화장실 때문이 아니라, 화장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들어선 순간, 작은 화장실 창문으로 겨울 햇살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창문 너머로 풍경이 눈에 들어온 순간, 말문을 잃었습니다. 그 풍경 하나가 마음을 딱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더군요. 살면서 단 한 번도, 화장실에서 그런 풍경을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화장실은 저희가 현재 앉아 있는 테라스 바로 뒤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화장실에서 보이는 풍경은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의 일부였던 거죠.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의 일부가 딱 화장실 창문의 크기만큼만 보였던 것입니다.
갑자기 엉뚱하게도 그런 호기심도 들더군요. 이런 화장실의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모르긴 몰라도 큰일 보는 기분 하나는 최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짓궂은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 내부를 다 둘러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확인차 들렸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테라스로 쓰고 있는 공간입니다. 화장실 안에서 보았던 풍경의 전체를 보고 싶었거든요. 그때는 물론 테라스도 아니었고, 간이의자 같은 것도 없는 비어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개복숭아 나무에는 잎사귀 하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서서 보니, 비로소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집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욕망이 들더군요. 이 집 변기에 앉아서 빨리 큰 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집을 계약하자고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희가 작은 집에 살게 된 배경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집에 이사 오게 된 이유가 이것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저희가 집을 구하러 다니기 전부터 미리 의논하고, 염두에 두었던 것들입니다. 저희가 평소에 욕망했던 집, 꿈꿨던 집, 그리고 집에 대한 가치관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들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집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겠다. 집은 도서관과 최대한 가까웠으면 좋겠다. 재래시장과 최대한 가까웠으면 좋겠다. 집세는 싸면 쌀수록 좋겠다. 작은 집에 대한 욕망은 충분히 설명이 된 것 같으니,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한 탓에,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대놓고 도서관 근처로 이사를 가자고 했습니다. 저로써는 반가운 제안이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저는 이왕 도서관 근처로 갈 거면, 제일 큰 도서관 인근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도서관과의 거리가 350m 정도 되니까, 소원을 이룬 셈입니다. 모든 게 저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아내 덕분이었습니다. 제일 큰 도서관 인근에 집을 구한 뒤부터, 원 없이 책을 읽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집에 서재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도서관을 들락거릴 수 있으니까요. 도서관이 제 서재나 다름없습니다.
재래시장과 가까우면 좋겠다는 생각은 서로 사전에 동의한 내용입니다. 집밥을 좋아하고, 집밥을 자주 해 먹고, 둘 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희에게 식재료 공급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인근에 집을 알아보기 전부터, 작고 아담한 재래시장의 유무를 파악하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으니까요. 이 집이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다는 건 미리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상상했던 대부분의 조건들을 만족하는 집을 구했다는 게 말입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 근래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희가 집을 구한 게 아니라 집이 저희들을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집은 저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수많은 집 중에서 가장 작은 집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만족스러운 집이었습니다. 작은 집 덕분에 날마다 행복했습니다. 살다 보니,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깨달았습니다. 집 안의 물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근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과감히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모시고 살아왔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를 할 때마다 부끄럽더군요.
어느덧 이 집에서 살아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네요
이 집에서 살겠다고 계약한 기간이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어쩌면 그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만족스러운 집을 찾았고, 날마다 행복하다면서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집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너무 편하고 행복해서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살아 보기 전에는, 집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 보니까, 작은 집에도 살만 했습니다. 일 년 넘게 살아 보니까, 이 집도 저희에게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홉 평이 채 안 되는 공간도 이제는 크게 느껴집니다. 요즘 들어서는, 집이 더 작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저희가 앞으로 살게 될 집은 더 작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작고, 더 볼품없고, 더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할 예정입니다. 함께 한다면, 세상 그 어느 곳이라도 저희들의 집이 될 테니까요. 더 작은 집을 향한 욕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