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귤 Jun 09. 2022

빵집의 바뇨

우리 집 어린이가 몇 일 전 갑자기 집에 오더니 꾸아르또 데 바뇨가 무슨 뜻인지 아냐며 퀴즈를 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십 년쯤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훅 되살아났다. El Cuarto de baño는 스페인어로 화장실이라는 뜻이다. 


20대 초반에 운좋게 멕시코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동생이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라는 도시로 어학연수를 가 있었다. 나는 당시 일본에 교환학생을 가 있었는데, 약간의 장학금 외에 학교 안의 구내 매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나오는 작은 수입이 있었다. 그 돈을 조금씩 모아 동생이 멕시코에 있는 동안 싼 비행기 표를 구해 여행을 가볼 수 있었던 것이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 안에서는 수도인 멕시코 시티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지만 칸쿤 같은 관광지는 아니라 경유를 하며 긴 비행을 해야 했다. 경유지에서도 하루를 묵어야 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YMCA 인가 YWCA에서 하는 도미토리 형식의 배낭여행자용 숙소에서 잠이 잘 오지 않아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겨우 과달라하라에 도착을 한 건 좋은데, 마중을 나오기로 한 동생이 공항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은 있었지만 로밍이 대중화된 서비스가 아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리고 동생이 당시 현지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하릴없이 공항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30여 분을 기다려서야 동생은 다른 선배와 함께 나타났다. 여러 가지 멕시코적인 사정 때문에 늦어졌던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어떤 일도 잘 되지 않지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그 곳에서 오래 살았던, 나중에 알게 된 교민 분이 쓴 웃음을 지으며 얘기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공항에서부터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여행 내내 그런 일들은 계속됐다. 하지만 묘하게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게 참 웃기는 일인데, 나라마다 어떤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여행을 하다 보면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게 된다. 멕시코에서 멕시코 사람들과 함께 느긋하게 다니다보니 문제가 생겨도 그냥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든 그 문제가 해결되긴 한다. 예컨대 여행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큰 문제는 길 찾기였다. 


휴대폰이 있어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기,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에 의지해서 돌아다니던 우리는 연신 지도를 찾아가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론리 플래닛 지도는 정확하기로 유명하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특정한 가게 같은 곳에 가려면 지도만으로는 부족해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멕시코 사람들은 길을 모른다고 답해주면 굉장히 큰 실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르겠다고 해주면 될 텐데 자기 짐작에 따라서 대충 엉터리 길을 가르쳐 준다. 


여기에 더 큰 혼란의 씨가 더해지기 십상이니 왜냐하면 멕시코의 도시들에는 겹치는 길 이름이 엄청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로' 같은 길들이 어디에나 있는데, 어떤 곳에는 이 '중앙로'가 왠지 두 개나 세 개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길을 끝없이 헤매다 보면, 그래도 어떻게든 누군가는 정확한 장소를 생각해 내서 그 곳으로 가여운 외국인 여행자들을 안내해 주곤 했다. 가는 길에 그 동네의 역사와 지리적 특징과 맛있는 식당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덤이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던 어느 날, 밤 버스를 타고 멕시코 시티로 들어오게 되었다. 선배의 소개로 동생은 UNA라는 큰 대학 앞길에 있는 작은 호텔을 알아 둔 상태였다. 막 동이 튼 새벽, 여행객들에 뒤섞여 내린 우리는 정류장에서 짐을 들고 택시로 그 호텔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거기서 생각치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주변을 뒤져보아도 그 호텔이 나타나지 않는 거였다. 선배가 묘사해 주었던 그 호텔 주변의 다른 지형지물은 모두 보이는데 오로지 그 호텔만 보이지 않았다. 택시 기사도 처음 한두 번은 천천히 그 주변을 돌아 주었지만 슬슬 이제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는 눈치를 줬다. 우리도 차를 타고 무작정 돌기보다는 내려서 찾아보는 게 좋겠다 생각하고 일단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걸어서 샅샅이 찾아봐도 우리가 찾는 호텔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세종로 네거리나 경복궁 앞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치안상 위험하지는 않지만 어떤 시간이 되기 전에는 인적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연휴 기간이었다. 누구 붙들고 물어 볼 만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없어진 거 아닐까?"

"호텔이 없어져? 그 선배는 언제 거기 묵었는데?"

"글쎄 한 몇 달 되지 않았나?" 


무슨 일도 잘 되어가지 않지만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멕시코 아닌가. 작은 호텔이 두어 달 사이 없어지는 일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호텔만 철썩같이 믿고 온 우리에겐 다른 백업 플랜이 없었다. 동생은 벤치에 걸터앉아 론리 플래닛의 멕시코 시티 숙소 편을 무서운 기세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게 개인적인 위기가 닥쳐왔다.


갑자기 너무너무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것도 큰 일이었다. 추석이나 설 연휴 기간의 아침 7시에 경복궁 앞에서 갑자기 큰 일이 보고 싶어진 외국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인이고 서울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전혀 모르겠다. 길을 건너서 어디 건물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그런데 그 때 멕시코 시티의 그 거리에는 문 연 건물이나 가게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배는 점점 더 심하게 아파오고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만 되던 그 때 구세주처럼 딱 한 군데 문 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빵집이었다. 


동생에게 저 빵집에 가서 화장실 찾아본다고 한 마디를 남기고 서둘러 뛰어가 문을 열었더니 과연 흰 옷을 입은 점원들이 바쁘게 다니면서 빵을 진열하며 그 날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거기 나타난 꾀죄죄한 행색의 외국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되는대로 진열대에 놓인 빵을 쟁반에 주워 담았다. 


꽤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멕시코만큼 음식이 맛있고 다양한 곳도 많지 않았다. 이탈리아나 프랑스보다도 내 취향에는 더 잘 맞았다. 요리도 다양하고 풍부했지만 치즈도 과일도 빵도 모두 맛있었다. 담백한 식사빵도 달콤한 빵도 다 좋았다. 그 가게에 진열된 빵들도 여럿이었지만 끓어오르는 배를 안고 한가하게 빵을 고르기는 어려워 적당히 담고 계산대로 뛰듯이 다가가 쟁반을 내려놨을 때는 슬슬 한계가 오고 있었다. 계산을 끝내자마자 급하게 외쳤다. 바, 바뇨? 바뇨? (baño?)


정식 이름인 El Cuarto de baño가 생각나지도 않았고 입에서 나올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바뇨라고만 하는 건 어린애들이나 쓰는 유치한 말이고 별로 적절하지 않다는 말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런 걸 따질 새가 없었다. 아무튼 그런 내가 어지간히 다급해 보였는지 빵집 직원들은 웃기는 커녕 진지한 얼굴로 나를 직원 화장실에 데려다 주었다. 


친절한 멕시코 시티의 빵집 직원들 덕분에 다행히 나는 더 이상 큰 수모는 겪지 않고 무사히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다만 화장실의 위치가 직원용 탈의실 한가운데, 게다가 변기를 둘러싼 벽이 무척 낮아서 앉아도 머리 위는 벽 위로 쏙 나오게 된다는 사실 만큼은 지금도 참 잊기 어렵다. 그나마 나를 거기 데려다 준 직원이 등을 돌리고 다른 데를 보고 있어준 덕분에 최악의 민망함은 피했다. 그러나 그 탈의실의 흰 벽과 등을 돌리고 선 친절한 직원의 뒷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겨우 일을 끝내고 매장으로 다시 나오자 동생이 내가 계산대에 남기고 간 빵 봉지를 들고 있었다. 내가화장실 때문에 난리를 치는 동안 론리 플래닛에서 적당한 숙소를 찾아 공중전화로 예약까지 끝냈다면서 아주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거리로 다시 나오자 동생이 이제 배고파졌다면서 벤치에 다시 앉아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초콜렛 크로아상 같은 빵이었던가? 아무튼 초콜렛이 들어간 빵이었는데, 동생은 엄청 맛있다고 감탄하면서 빵을 열심히 먹었지만 나는 그 빵 맛은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맛있어 보이긴 했으나 도무지 그걸 먹을 수 있는 기분은 아니었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찌개 찬양과 음식의 정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