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똑같죠. 엔트로피 증가를 겪으며 쇠퇴하다가 결국 사망하겠죠.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시트콤 <빅뱅이론> 시즌4의 3화, 잘 지내냐는 페니의 안부 인사에 대한 에이미의 대답이다. 인간관계에 서툰 에이미는 신경 생물학자로서 학문과 직업에 열중하는 외톨이였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취미 생활이 있었다. 변변찮은 연주 실력으로 거대한 하프를 연주하고, 퀼트와 재봉, 뜨개질 마니아이기도 하다. 제프리 초서를 비롯한 중세 문학과 옛날 드라마 '초원의 집'의 열성팬이기도 한 에이미의 삶은 친구 없이 외로울지언정 지루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모든 사람이 ‘전면적이고, 불가피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향해 달려 나간다고 말한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사랑했다. 삶의 허무를 입에 달고 사는 인물들치고는 노는 일에 제법 열심 아닌가? 오늘도 나는 시트콤에 나오는 인물의 대사와 위인의 반열에 오른 철학자의 염세적인 말에서 위안을 찾는다.
어른이 된 내 삶에는 의무와 책임뿐이었다. 돈을 벌면 피아노를 꼭 배워야지, 이 직장을 관두면 글쓰기를 시작해야지. 하는 결심들은 쇼핑몰 장바구니를 채운 원피스들보다 빨리 비워졌다. 일을 많이 했지만, 돈이 모이지 않았다. 시간이 생기면 돈이 바로 사라졌다. 취미생활은 명품 가방처럼 남들이 누리는 사치재였다. 세상과 나를 향한 미움만이 착실히 쌓여갔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나를 깔보는 나와 눈치를 보는 내가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비웃어댔다. 이렇게 허접한 그림을 인스타에 올린다고? 사람들이 비웃을 거야. 피아노를 친다고? 겨우 소나티네 한쪽을 기억할 뿐인데, 20년 만에 피아노를 배우겠다니, 너무 철이 없는 것 아니니? 이제는 초등학교 시절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니?
에이미
결혼하고 용기를 내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것으로 취미생활의 짧은 역사가 시작되었다. 문간방에 놓인 키보드를 본 손님이 "어릴 때의 한풀이냐"라고 물었을 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들켜 민망했지만 1년 동안 꾸준히 학원에 다닌 건 잘한 일이었다. 덮개를 열지도 않는 날이 더 많았지만, 내 책상 뒤에 늘 펼쳐진 악보와 키보드가 있어 든든했다.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보고 다시 빠진 곡 ‘Aqua’를 연습하고 있다. 역시 배우길 잘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친구와 플라잉 요가를 배우기 시작한 일도 좋은 선택이었다. 평생 처음 나에게도 좋아하는 운동이 생겼으니까, 잘하지 못해도 몇 년 동안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익혔다는 자부심이 민달팽이 같은 내 정신의 껍데기가 되어준다.
취미에 열성적인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생업과 집안일에 밀려난 여가 시간에 마지막 남은 기력을 짜내서 놀아야 하니까,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할 시간에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 하며 술을 마시기 마련이다.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을 보고 감격에 겨워할 때가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미디어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고는 있지만, 내 이름이 엔딩크레디트에 나오는 것도 아니니 생산적인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럴 때 "뭔가를 하고 싶다"는 기분에 아름다운 장면, 사랑하는 인물을 그림으로 그려본다. 8년 전 여동생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일, 작년부터 끊임없이 그림일기를 그리는 나를 자화자찬해본다. 수다를 떨면서도 손에서 일거리를 놓지 않던 옛 여인들처럼 그림 일기장을 챙겨 다니는 내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익숙해져 가는 나날이 좋다. 일상이 보잘것없는 날에도 그림에는 괜찮은 순간을 그려본다.(괜찮지 않은 점은 이렇게 글에 드러난다) 디테일과 색감에 치중해 자그마한 내 그림은 쫌쫌따리 사소한 상황과 기억에 집착하는 성격과 닮았다.
내 취미에 대해 왜 이리 긴 설명이 필요할까? 그건 취미만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살기 위해서'라든지 '인생의 의미를 찾아서' 같은 근엄함도, '재미있으니까!'라는 발랄함도 '생활비'라는 엄정한 단어 앞에서 수시로 힘을 잃으니까. 힘을 잃을 때마다 이런 글쓰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이야기밖에 못하는 나에게 ‘영감'은 아득하게 먼 단어, 나는 나에 관해 쓰다가 그리다가 또 쓴다. 어찌어찌 끌어모은 자신감과 용기로 그림을 그리고 자디잔 이야기를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린다. 쓸모가 있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못 쓸 이야기가 없다. 뭐라도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나를 돌보는 방법. 내 이야기를 진정으로 듣고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니, 크게 숨을 내쉬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 남들 보기 우습고, 자신에게 비장하리만치 진지해야 ‘취미’로 기울어진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