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치는 기분

쪼그라들고 싶지 않지만 쪼그라드는 그런 날들

by 원효서

주기적으로(그 주기는 점점 짧아진다) 돈벌이 고민을 한다. 과외 광고를 당근마켓에 낼 것인가? 아파트 게시판에 붙여볼 것인가? 내신을 강조할 것인가, 독서 논술을 강조할 것인가? 고민 끝에 당근마켓에 유료 광고를 사흘 정도 하고 작년부터 중학생 두 명을 가르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일을 더 하려니 유치원 하원 후에 매번 아이에게 유튜브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쯤이면 되었다고 느끼던 5월, 한 명은 이사를 가고 한 명은 과학 학원으로 떠나버렸다. 일이 사라지자 급히 다시 광고를 내고 몇 명 정도 상담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중2 딸아이와 함께 찾아온 어머니가 ‘고민해 보겠다’고 돌아간 후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아(이런 적은 처음) 또 돈벌이 고민을 하고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 잠깐만 생각해 봐도 국어까지 사교육을 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동네에 학원도 있으니 내가 열정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새 수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시험 성적을 위한 국어 수업은 익숙한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내가 그런 수업에 지쳤다는(솔직히 흥미를 잃었다는) 생각이 든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상담을 온 어머니 앞에서도 긴장감 없이 느슨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준 것도 같다. 책상에 온통 좋아하는 책들만 꽂고 문제집도 꺼내놓지 않은 것이 학부모의 눈에 그다지 프로답지 않아 보였을 게다. ‘문제집은 안 예뻐서 안 올려두거든요.’라는 설명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국어 영역 선행학습에 관심을 두고 찾아온 어머니에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책을 읽겠어요, 저는 아이들과 책을 더 읽고 싶어요.’ 같은 이야기를 한 게 전혀 매력 포인트가 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현관문이 닫힌 후였다.


아이들 성적이 오르면 기쁘고, 성적이 떨어지면 속상한 일. 지문이 바뀌긴 하지만 늘 같은 것만 가르치는 지루함과 보람 없음이 뭐랄까, 참 짜친다. 돈이 필요해지면 할 줄 아는 일을 하는 게 제일 편하다는 걸 알지만, 당장 생활비를 내가 많이 벌어야 하는 처지는 아니니까 좀 고상을 떨면서 하고 싶은 일들로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느라 돈을 못 벌어도 제법 바쁘다. 봄에만 해도 그런 시간들이 너무나 즐겁고 보고픈 콘텐츠가 끝이 없어 행복하다는 글을 썼는데, 아이 통장에서 돈을 빼기 시작하니 행복감은 하찮아지고 덜컥 겁이 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안중에 없던 ‘지원 사업’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돈이 안 되면서 이래라저래라 귀찮게 하는구나.’하고 툴툴대다가 ‘커피값이라도 벌어야겠다.’로 다짐하고 그림일기 모임을 운영하게 되었다. 친구가 함께 하자고 하는 다른 지원 사업에도 참여했다. 어차피 빵과 커피를 먹으며 노는 김에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좀 해봐도 좋겠다 싶었다. 저녁에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면서 줌 회의 오리엔테이션에 접속했다. 발표는 팀장에게 맡겨두고 영수증 내역서를 첨부한 모임 일지를 작성해서 보냈다. 지원 사업 덕분에 동네 동생들에게 커피를 사주고 그림 재료도 나눠주는 좋은 언니가 되었다. 내일은 새로운 지원 사업 서류를 써야 한다. 이번에는 책모임을 만들까 물어보니 그림일기 모임의 친구들이 참여하겠다고 해주었다. 아마도 이걸로 책값과 커피값을 벌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말

독립서점 책봄 "심야책방" 글방에서 쓴 글입니다. 어딘가에 올리지 않으려다가, 오늘 저녁 작은 지원사업에서 탈락하여...짜치는 기분에 올려봅니다.(먼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