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토리와 메그와 앤과 나

횡설수설하는 이야기지만 그렇다는 말

by 원효서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집에 온 적이 있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학교에 있던 시절이었는데 저녁에 교무실에 찾아가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선뜻 귀가를 허락해주었다.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방가방가 햄토리’의 오프닝 주제곡이 나오고 있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깜찍하고 인사성 밝은 햄스터인 햄토리의 귀여운 일상을 그린 이야기이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대부분 인간 주인이 키우는 햄스터들이라, ‘토이 스토리’처럼 인간들이 볼 때는 쳇바퀴를 돌리고 해바라기 씨를 먹는 보송보송한 햄스터이지만, 인간들이 문을 탁 닫고 나가는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날의 내용은 이랬다. 어쩌다 그만 차를 잘못 타게 된 햄토리(가출을 한 것이었을까?)가 여자 친구인 리본, 마을의 친구들, 사랑하는 인간 주인과 영영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문제 해결의 과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햄토리가 다시 햄스터 마을로 돌아오던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산 위로 주황빛 노을이 내리고 금빛 햇살이 퍼져나가는 시간, 멀리서 햄토리가 짧고 앙증맞은 손을 흔들면서 달려온다. 초조하게 마을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자그마한 손을 힘껏 흔들면서 입을 모아 외친다. "햄토리! 어서 와!" 단순한 해피엔딩. 가방을 던져두고 장롱에 기대서 햄토리를 보다가 훌쩍훌쩍 울었다. 울면서도 좀 멋쩍어서 금세 그치긴 했지만, 가슴 깊이 감동했다. 그래! 친구들이 기다려주었어! 그게 그렇게 찡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고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그런 순간에 잘 울곤 했다.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주인공이 가슴 아픈 사랑으로 고통받을 때 옆에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친구의 진심이 느껴지면 도리 없이 엉엉 울곤 했다. "널 비난하고 싶지 않아.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너는 지금 괜찮니? 돌아와서 다행이야." 같은 대사들이 나오면 주인공보다 더 감동하는 관객이 되었다. 나를 울리는 판타지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로맨스는 비극일 때 한없이 멋지게 느껴지고 해피엔딩일 때는 ‘뭐, 아, 네 그러세요. 행복하게 사십시오.’ 이런 느낌? 슬프지만 그건 내가 한 번도 로맨틱한 관계에서 온전히 이해받은 적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눈부신 로맨스는 나와 어울리는 꿈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로맨스와 결혼식을 꿈꾸는 몰리 언니를 이해하기 힘든, 늘 자신의 꿈을 생각하는 메그처럼.

“그 여름의 끝”을 읽고 왜 햄토리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메그보다 몰리에 집중했었다. 몹쓸 병에 걸린 아름답고 해맑은 소녀, 연약해져 가면서 마리아 아줌마가 낳을 아기를 기다리는 몰리를 보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풀꽃들에 마음을 주며 점점 투명해져 가는 몰리의 모습이 마음 깊이 새겨져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책을 읽으면서는 메그와 메그의 꿈꾸는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윌에게 훨씬 더 마음이 이끌렸다.

<p.90 윌이 말을 마쳤을 때,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어 졌을까? 나는 '덧없다'라는 말뜻도 잘 모르는데. 내 속에서 사탕 속에 든 따뜻하고 말랑말랑 시럽 같은 게 솟아올랐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콤해서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진정한 친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평생 그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윌이 메그의 사진을 보고 건넨 말에 메그의 마음에서는 평생 간직하고 싶은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마음속에서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시럽 같은 게 솟아오르면 눈물이 나는 법이다. 메그는 울고 싶어 졌고 그걸 읽던 나는 울었다. 평생 그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처럼 훌쩍훌쩍 울었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때때로 영혼의 단짝 같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윌처럼 나를 이해해 주는 어른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메그가 느낀 감정은 말 그대로 소설에나 나올 법한 마음이 깨끗한 소녀 시절에 어울리는 반짝임이었다. 마흔이 넘어서 그런 말랑한 마음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울다니, 햄토리를 보던 고등학교 시절 때와 똑같이 머쓱해지며 눈물을 닦았다.

‘그 여름의 끝’은 눈물 포인트가 많은 책이라 자꾸 훌쩍이게 되었다. 다시 읽을 때는 처음처럼 많이 울지 않았지만, 여전히 울컥하는 순간이 있었다. 다행이었다. 좋은 이야기를 읽고 울 줄 알다니, 내 마음에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계속 샘솟고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p.197 내 얼굴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윤곽선, 어두운 나무들과 대비되며 내 이마와 뺨에 흐르는 빛이 만들어 낸 선은 예전에 내가 몰리 언니의 얼굴에서 본 바로 그 선이었다. 어깨를 움츠린 자세도 언니가 하던 그대로였다. 윌은 카메라를 들고 500분의 1초의 빠르기로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을 포착했고 내 안에 있는 몰리 언니를 영원하게 만들었다. 고맙고 또 기뻤다.>

사진에는 피사체를 향한 애정이 들어간다는 말은 흔히들 하지만, 애정을 담아 찍는다고 다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 윌은 메그에게서 메그가 가장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찍어냈다. 깊은 애정과 세심한 주의와 관찰, 카메라와 사진에 관한 기술, 그 모든 순간을 아우르는 빛과 타이밍으로 영원히 간직할 만한 무언가를 찍는 것이다. 메그가 마음속으로 사진을 찍는 순간처럼.

<p.118 해가 지며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마루에 앉아 아저씨에게 기대어 있는 아줌마를 비추었다. 아줌마의 어깨와 두껍게 땋아 내린 머리에 금빛 무늬가 드리워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이 구절이 참 좋았다고 이야기하자, 북클럽의 누군가가 이 장면의 메그가 나와 닮았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마음속으로 ‘찰칵’하고 사진을 찍듯 그 장면을 새길 테니, 저 문장이 내 마음에 와닿은 건 자신의 모습과 닮아서 그렇지 않겠느냐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가 그린 몰리 그림에 더 애정이 생겼다.

​ 마음에 때가 타는 느낌이 들고 책도 글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을 본다. 앤이 하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들, 어두운 과거를 딛고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앤, 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매슈 아저씨, 앤과 함께 성장하는 마릴라 아줌마와 앤의 친구들. 그 모습들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 소중하다. 이미 열 장도 넘게 앤을 그렸지만 그리고 싶은 새로운 장면은 볼 때마다 찾게 된다. 그렇게 때 탄 마음을 닦고 깨끗한 정신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잠시나마 편안해진다. 내일은 앤을 보면서 메그를 그려보아야겠다.

그때 그린 몰리



#미루글방

#여름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