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흰색 투피스

하얀 투피스의 추억

by 원효서

어릴 때 내가 다닌 분교에는 1학년과 2학년을 합쳐서 12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둘째 고모가 첫 입학생이라던 그 작은 분교는 내 남동생이 마지막 입학생으로 폐교가 되었다. 분교가 있던 산 밑 자리는 누군가의 밭이 되었는데, 올해에는 고구마밭이 되었다고 한다.

분교를 졸업하던 날 찍은 사진에는 2학년 세 명이 나란히 단상에 걸터앉아 있다. 셋이서 나란히 화단 앞에서 구구단을 외고, 한 권뿐인 문제집도 같이 공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열정적이셨던 담임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처음으로 대구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도 가 봤고 난생처음으로 포항에 있는 해수욕장과 경주에 있는 놀이공원에도 가 볼 수 있었다.


나는 키가 작고 피부는 까만 촌스러운 아이였지만 엄마는 나를 정성스레 꾸며 주었다. 파마도 해주고 디스코 머리도 땋아주고 대구 외할머니댁에 가면 예쁜 옷도 사 주었다. 여름에는 분홍색으로 나풀거리는 원피스가 있었고 오래오래 입은 보라색 겨울 코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날이면 꼭 입던 옷이 있었다. 하얀색의 두툼한 투피스. 어깨 부분이 봉긋했고 까만색 구불구불한 무늬의 자수가 가득 놓여있었는데 어린이대공원에 가던 날도 입었고 졸업식 날에도 입었다. 분교에서 사진을 찍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옷이 특별했던 제일 큰 이유는 작은 이모가 선물해준 옷이었기 때문이다. 친척 어른에게 옷 선물을 받은 경험이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리라. 세련되고 재미있는 둘째 이모가 사 준 옷이라고, 입을 때마다 더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이모는 나에게 '언제 옷 한 벌 사줘야 하는데' 하는 말을 자주 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다음에 어디 함께 놀러 가자는 말처럼 그냥 하는 빈말이었지만 나는 늘 어릴 때 입던 그 하얀 옷을 떠올리며 끝내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가 그 옷은 이모가 선물한 게 아니고 엄마가 돈을 줘서 심부름으로 사서 보내 준 옷이라고 말해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