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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ul 16. 2024

패딩이 갖고 싶진 않았던 겨울

밤중에 지나간 일기를 발견한 김에

기억 하나.


3학년  반장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과 입이 큼직한 여자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체육도 잘하는 반장. 반장과 친해지고 싶은 아이들은 참 많았다. 나도 그런 아이 중 하나라서 어느 날 방과 후에 반장의 집에 따라갔다. 반장의 집은 동네에 흔한 2층 다세대 주택이었다. 주인집인지 아닌지까지는 모르겠으나 2층에 사는 반장의 집에는 거실과 주방과 방이 분리되어 있었고, 주방에는 식탁이 놓여 있었으니 겉보기에 좀 사는(?) 집처럼 보였다.


집에서 놀다가 다 같이 놀이터에 가기로 했는데 반장의 엄마가 왔다. 반장은 나에게 놀이터 앞에서 뭘 좀 사 먹자고 했고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반장은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용돈을 얻으면서 내 몫까지 받아내려고 했다. "엄마, 내 친구가 돈이 없어서, 백 원만 주면 안 돼?" "엄마, 같이 뭐 사 먹게 좀 주면 안 돼?"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도 백 원 정도는 주지도 않을까 싶어, 안 들리는 체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반장 엄마는 내 몫의 돈은 더 주지 않았다. 반장이 여러 번 조르자 엄마는 화를 냈다.


"내가 왜 쟤 돈까지 줘야 되냐? 지네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하지." 반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할머니랑 살고 부모님이 시골에 있다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라고 열심히 엄마를 설득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최선을 다해 안 듣는 척했다. 결국 놀이터에 나갔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사 먹었고, 반장은 쥐포 튀김을 사 먹었다. 반장은 문방구 할머니에게 케첩을 뿌려달라고 했고 할머니는 케첩은 핫도그에만 뿌려주는 거라고 했다. 겨우 이거 하나 사 먹으며 무슨 케첩이냐며 역정을 냈다. 반장은 할아버지는 늘 케첩을 뿌려준다며 굽히지 않았고, 할머니는 '망할 노무 계집애'라고 하면서 케첩을 뿌려주었다.


반장에게는 정이 떨어지고, 반장 엄마는 무섭고, 문구사 할머니도 싫고, 그 와중에 50원짜리 뭐라도 사 먹고 싶은 복잡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여전히 반장이 부러웠지만, 다시는 반장네 집에 놀러 가지 않았다.​​



기억 둘.


4학년 때부터 친했던 민이 한동네에 살 때는 단짝처럼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대신 동시 짓기 숙제를 해줘서 민이는 그걸로 상을 받고 시화 전시를 했다. 5학년 때인가? 민이네가 새로 지은 아파트촌으로 이사했는데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거리였다. 어느 토요일에 민이가 수아와 나를 데리고 자기 집에 갔다. 그렇게 많은 아파트가 빽빽한 동네는 처음이었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공단의 풍경이 기억난다. 민이와 수아는 둘만의 단짝 파자마 파티 같은 걸 하고 싶어 했는데, 내가 눈치 없이 끼었다는 걸 좀 늦게 알았다.


처음으로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가게 되어 설레는데, 민이네 엄마는 '수아는 괜찮지만 너까지?'라는 표정이었다. 지금이라도 집에 간다고 할까 싶었지만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있었다. 민이 엄마는 우리에게 빵집 햄버거를 나눠주면서 말했다. "민이랑 오빠랑 주려고 개수 맞춰서 사 왔는데, 너네 때문에 오빠는 못 주겠다." 역시 아까 집에 갔어야 했는데, 밖은 슬슬 어둡고 집에 가는 버스를 혼자 타러 가기도 싫고... 결국 민이네에서 잤다.


밤에는 무서운 상상(계단에서 계속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들렸다)악몽에 시달리다가 아침 일찍 수아를 따라 교회에 갔다. 수아는 낯선 교회에라도 꼭 가야 한다고, 교회를 빠트릴 수는 없다고 했다. 교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민이네 집에 가는 일은 없었다.


지금.


남편에게 새 패딩과 바람막이가 생겼다. 시어머니가 시누이에게 부탁해서 사 보낸 것이다. 몇 년째 똑같은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니는 아들에게 마음이 쓰여서 딸에게 오빠의 옷 심부름을 시키신 것이다. 마침 작년 가을에 매부의 바람막이를 마음에 들어 하던 것도 잊지 않고 똑같은 옷하나 사다 주었다. 퇴근이 늦은 남편이 부르기에 나는 자다가 깨어나서 패딩 점퍼 입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멋은 나지 않았지만, 잘 맞고 깔끔한 옷이었다.


오늘 아침에 가격표를 보니 둘을 합쳐 50만 원이 넘었다. 하기야 늘 입던 패딩도 40만 원이 넘는 돈이었으니 이번 옷이 저렴하다 해야 할지, 요즘 브랜드 패딩 치고는 비싼 것도 아니었다. 자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입어 본 비싼 옷은 결혼 전에 샀던 트렌치코트가 유일했는데... 옷이 적다고는 하지만 남편은 늘 브랜드 옷만 사지. 며칠 전 생일이라고 나에게 20만 원을 보내주셨으니 감사할 일이지. 지난번에도 커피 마시라고 용돈 따로 챙겨주시고, 좋은 옷을 알아서 사주시니 고마운 일 아닌가.


하지만 또 슬슬 올라오는 생각들이 많았다. 평소에 모든 사소한 연락들은 몽땅 며느리에게 하면서 이럴 때는 딸에게 쇼핑을 맡기시는구나,부터 나도 저 브랜드 옷 좋아하는데, 한 번도 안 사봤는데! 까지... 그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사고 싶은 옷은 한가득이었지만 역시 너무 비싸서 구경에 그쳤다. 용돈 좀 받았다고 책 사고 외식하고 했더니 마음에 드는 옷을 살 수 없었다.(돈도 모자랐고) 그러다가 또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있어서, 자주 가는 쇼핑몰에서 구경하던 옷을 몇 개 샀다. 얼마나 자주 입을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귀여운 상하 세트 옷과 카디건을 사도 15만 원이었다.


그 브랜드가 아니었다면 30년 전 기억까지 떠오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아들 옷 사주는 게 뭐가 문제인가, 우리 엄마도 내 옷은 종종 사주고 사위까지는 챙기지 않는 것을.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옷 사주어 고맙다는 연락을 하지 않은 남편 때문에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아야 했다. '마음에 들어 하더냐?'라는 메시지. "전화하라 시켰는데 안 했던가요? 예쁘게 잘 맞던데요." 했다. "잠바가 옛날 거라 사주고 싶어서"라는 답장까지... 뭐, 내가, 고맙다고까지 대신해야 하나? 싶어서 그 말까지는 안 했다. 그리고 또 이렇게 긴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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