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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Feb 22. 2022

내 다이어리의 역사

그 많은 다이어리는 다 어디로 갔나



 중학생이 되자 학교에서 더 이상 일기장 검사를 하지 않았다. 어느새 일기장이라는 단어도 잘 쓰지 않았고 모두가 다이어리라는 세련된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새 학기가 되면 다이어리 맨 뒤쪽을 펼쳐서 새로 사귄 친구들끼리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한 일정이었다. 일단 근처에 앉은 사이라면 이름, 집전화(휴대폰이 세상에 막 등장한 시기였다) 번호, 주소, 생일까지 3월에 다 공유하고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정말 친한 친구가 되면 교환일기를 쓰기도 하면서.

 중학교 때의 다이어리에는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팬이 된 안재욱 배우의 방송 스케줄이나 지키지 못할 공부 계획이 쓰여 있거나 했지만 일기장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출석번호 3번(키 순서대로)인 나는 2번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게 되었다. 매 번 일기의 마지막쯤에는 각자의 마음 상태를 원그래프로 표현하던 게 기억난다. 그때 2번 친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동네 고등학생 오빠와 H.O.T의 토니가 함께 있었지. 시험 걱정이나 다른 학교 생활에 대한 걱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선명히 기억이 나진 않고, (25년이나 지났으니...) 중3이 되어 각자 다른 반이 되고는 교환 일기도 흐지부지, 2번 친구의 적극적인(뭔가 좀 강요하는) 성격에 각자 갈 길을 가게 되었다. 영화 blue 포스터 표지였던 그 일기장은 어디로 갔을까.

 혼자 쓰던 일기장은 주로 화가 났을 때 펼쳤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욕과 저주가 난무했다. 남동생과 싸운 날에 썼던 일기는 며칠 후에 봤을 때 너무 심하다 싶어서 찢어버리기도 했다. 가끔 감상적인 기분에 빠질 때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 순간이 너무 좋다." 같은 걸 쓰기도 했지만 그런 날보다는 화가 난 날이 많고 일기장을 펼치지 않는 날은 더 많았다. 그래서 푸르스름한 바탕에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애가 그려진 그 일기장은 너덜너덜하면서도 속이 텅텅 빈 채로 한참 책상에 꽂혀 있었다.


ㅡ소중한 인생 다이어리

 본격적으로 다이어리 쓰기가 일상이 된 것은 아침 7시부터 밤까지 학교 생활뿐이던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공책보다는 작은 6공 바인더에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그림을 코팅해서 끼우고, 예쁜 스티커를 사서 아껴가면서 붙이고, 시험 범위와 성적도 쓰면서 애지중지했다. 정말 좋아하던 친구와는 교환일기도 썼고 여러 친구들과 주고받은 쪽지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었다. 고2 늦가을 무렵에, 가장 좋아하던 친구와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끝난 후에는 큰 상실감에 빠져서 다이어리고 뭐고 잠시 내팽개쳤던 것 같기도 하다.

 고3이 되던 해에는 역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머리를 싹 넘겨서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두꺼운 노트에 나름대로 스터디플래너 같은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를 세로로 네 칸으로 나누고 양쪽을 펴서 1주일로 표시하면 한 칸이 남는다. 각각 요일 칸에는 위쪽에 숙제와 공부 계획을 세워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개념, 수학 공식, 처음 나온 영어 단어 같은 것을 써 두는 식이었다. 그 계획표대로 뿌듯하게 공부했던 몇 안 되는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수능을 준비할 때의 심정이란 "아, 진짜 하기 싫다.""봐도 봐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었지만 두세 달에 한 번쯤은 "아, 오늘 진짜 열심히 공부했다. 이 문제 풀 수 있어서 좋다." 이런 날도 있었다는 것.
 월간 만화 잡지 '나인'에 실린 권신아의 일러스트를 표지로 삼고 혹시나 찢어지고 때가 탈까 시트지로 꼼꼼히 포장한 그 다이어리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쪽지와 수많은 메모지로 점점 뚱뚱해졌다. 나중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나 과외수업을 할 때에도 가끔 가져가서 보여줄 정도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끼던 그 다이어리. 그토록 소중한 것을 내가 왜 버렸을까?

 

대학 생활은 술을 많이 마시거나 술을 적게 마신 날, 몹시 우울하고 무기력한 날과 좀 괜찮은 날로 나눌 수 있었는데 그때에도 다이어리는 잘 챙기며 살았다. 월간 표 외에는 모두 낙서와 메모를 섞어 쓰는 나의 다이어리 패턴도 이때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월간 표에는 반듯한 글씨로 만난 사람, 과외 일정, 영화 제목, 술집 이름 같은 걸 쓰고 생리주기도 빠짐없이 표시했다. 알록달록 무지개색이 나오는 애착 색연필로 동그라미도 하고 빈자리에 그림도 그리고 잘 그려진 그림에는 색칠도 하면서 잘 썼다. 한 동안은 너무 우울한 날은 G(gloomy), 괜찮은 날은 F(fine), 행복한 날은 H(happy)로 표시를 해보았는데 압도적으로 G가 많은 걸 보고 표기를 그만두기로 한 기억도 난다.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고부터는 다이어리를 쓰다말다를 반복했지만 12월이 되면 대구 시내에서 제일 큰 문구센터를 다 돌며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샀다. 애착 색연필과 스티커도 함께. 데이트나 영화, 가끔 읽는 책, 친구와의 만남을 간단하게라도 써두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했다. 그저 다 날아가 버릴 것만 같고 다 잊어버릴 것 같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수많은 망상과 말장난, 아무 뜻 없는 일상들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그 시절의 나는 굳게 믿고 있었나 보다. 이사를 두 번 하는 동안에도 버리지 못했던 걸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앨범처럼 꺼내볼 추억 이상의 의미도 있었나 보다. 그 많은 다이어리 어딘가에는 막연하게 내가 진짜 쓰고 싶은 말들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같은 것.


ㅡ이렇게 버릴 거면서

 나는 이 많은 다이어리들을 다 버렸다.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얼마 안 되는 내 물건들을 챙기면서 한 권도 남겨두지 않고 모두 버렸다. 시골집에 가서 불에 태우고 싶었지만 너무 무거웠고 나에게는 차가 없었다. 엄마가 왜 전부 다 불에 태우냐고 물어볼 텐데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이어리만 버린 게 아니라 쪽지와 편지들도 다 버렸다. 연보라색 케이크 상자에 모아 두었던 것들을 한 번씩 읽어보고 골라서 모으려다가 곧 시간 낭비라는 판단으로 집 앞 재활용 종이를 모아두는 곳에 내다 버렸다. 다이어리도 제대로 다시 펼쳐보지도 않고 다 내놓았다. 코팅지가 두툼하게 끼워진 부분은 따로 빼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분리수거를 해야 하니까. 종이가방과 상자에 담긴 다이어리와 편지를 주택가 구석에 내놓을 때에는 마음이 덜컹, 했던 것도 같다. 누가 저걸 가져가서 읽으면 어쩌나, 길고양이들이 다 헤집지는 않겠지... 그런 불안감과 진짜 다 버린 거야. 괜찮아?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나는 괜찮았다.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개운했다. 이제까지 뭐하러 가지고 있었지? 진즉 내다 버릴 걸. 싶을 정도였다. 이제 이 따위 다이어리는 쓰지 않을 거야. 맨날 우울하다는 이야기, 슬프다는 소리, 남들에게는 못할 나쁜 말들, 즐거웠다는 건 온통 술자리뿐. 한심하다, 한심해. 이런 다이어리 백날천날 써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된다. 고3 때 공부한 다이어리가 자랑이 되냐? 너는 벌써 32살이야. 너 결혼하고도 우울하다는 소리만 할 거니? 아니잖아. 이제 그렇게 살지 않을 거잖아. 내가 지금 이걸 다 버리는 건 다짐이야. 지나간 날을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하고 분노하는 자신이 싫잖아. 이건 아주 오랫동안 써 온 반성문 같은 거야. 그런 자신에 대한 기록이 남는 다이어리니까 다 버리는 거야.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그래서 그 후로는 우울한 다이어리와는 헤어졌는가 하면, 그럴 리가 있나.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은 신혼여행의 시작과 함께 와장창. 남편에게는 하루 종일 서운했고 서운함을 표현하면 싸우게 되었다.  싸우고 나면 친구(교환일기도 쓴 적 있는)에게 연락을 했지만, 친구는 결혼을 해 버린 내 이야기엔 관심이 없었다. 결혼을 하면서 이사 온 낯선 도시에는 남편 외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나는 다시 다이어리를 펼치게 된 것이었다. 애용하던 월간과 메모지가 있는 다이어리가 없어서 표지가 예쁜 연습장을 펼쳤다. 그리고 절대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던 나쁜 말들을 손이 아플 때까지 쓰고 또 썼다. 눈물을 흘리면서 마구 욕을 하면서. 민트색 바탕에 작은 꽃과 새들이 그려진 그 연습장을 처음 살 때 "동화를 써 볼 거야"라고 혼자 수줍게 한 다짐이 떠오르자 더욱 서러워졌다.


그래도 다시 쌓이는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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