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새 잎의 계절, 5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특징도 볼품도 없는 국도변의 시골집 담벼락들이 그리 화려할 수가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장미가 웅성웅성, 와르르르 무더기로 피어있다. 요즘 동네 길가에는 노란 금계국과 보랏빛 갈퀴나물이 예쁘고, 공원 둑에는 수레국화가, 공터에는 개망초가 넘치도록 피어있다. 그래도 단연 돋보이는 건 새빨간 장미들. 수많은 종류가 있다지만 담벼락에 핀 넝쿨 장미는 비슷한 붉은색이다. 빛나는 분홍빛이 꽃송이 안쪽에서 반짝이고 꽃잎 끝일수록 더욱 새빨간 장미넝쿨들.
장미를 보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맹한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문구사에 "향기 나는 샤프심"이라는 엄청난 아이템이 등장했다. 샤프심에서 향기가 나서 무엇하겠느냐마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선풍적 인기를 끌어버린 그 샤프심은, 쓸데없는 물건들 특유의 비싼 가격으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누군가 학교에 가져온 향기 샤프심을 맡아본 친구가 "그 향기는 분명 장미향"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던 평리동 주택가에는 장미가 많이 피니까 그걸 꺾어서 샤프심을 담그면 될 거라고, 한 친구가 확신에 차서 아이들을 설득했다.
그리하여 어느 평일 저녁 무렵 장미채집(서리) 원정대가 꾸려졌다. 학교 근처보다는 시장이 있는 길 건너 동네에 장미 덩굴로 장식한 집들이 많았다. 겁이 많고 뜀박질도 느린 나는 벨튀같은 장난에 스릴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날 장미를 뜯으면서는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우리 키에 닿는 꽃이 별로 없기도 했고 집주인에게 들키면 혼쭐이 날 거라는 공포에 몇 송이 꺾지도 못했지만, 장미는 한 송이만 뜯어도 꽃잎이 많아 때문에 충분하다고 서로를 위로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수돗물에 장미꽃과 샤프심을 빠뜨리는 걸 할머니가 잠자코 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꽃잎과 샤프심을 담근 물에 코를 대고 킁킁 향을 맡으며 '아무래도 이건 아닌데...' 했던 기억이 전부다. 다음날 학교에는 박카스병에 짓이긴 꽃잎을 가득 채워 샤프심을 넣어온 친구가 있었는데... 참 순진하고 맹한 것이 귀여운 시절이었다. 저녁 먹을 때가 지나도 밝은 날, 골목골목을 누비며 주머니에 장미꽃을 쑤셔 넣는 여자애들이라니!
엄마 친구집 장미
담장에 핀 장미를 보면 떠오르는 또 한 가지 기억.
중 2 때였나? 같은 학원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영어 발음이 놀라울 정도로 좋은 그 아이(대충 현정이라고 하자)는 공부를 그럭저럭 했고 발표를 잘하는 편이었다. 특히 영어 시간에 본문을 읽으면 "웨이러!" "워러!"라고 당당한 미국식 발음을 뽐냈는데, 아이들이 좀 놀려도(발음이 좋으면 놀리던 시절이었다. 요즘 중학생들은 어떤가 모르겠네) 꿋꿋한 점이 내 보기에 민망하면서도 멋있었다. 현정이와는 학원을 마치고 같이 버스를 타던 사이였지만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스승의 날, 학교를 일찍 마쳐 학원 시작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현정이가 사는 아파트에 놀러 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가구가 옥색이었던 것 외에 크게 기억에 남는 건 없었다. 애들 말대로 현정이네 집은 "좀 사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왜 가구가 다 옥색인지 물어보았던 것 같다. 원래 아파트에 있는 건 처음부터 그런 거라는 현정이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주택은 겉과 속이 모두 제각각이니까.
그날도 오늘처럼 날이 참 좋았다. 우리는 막 하복을 입기 시작했고 아파트 화단과 담장에 장미가 가득했다. 우리는 그 장미를 꺾어서 학원 선생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꽃집에서 카네이션을 살 돈은 없었지만, 츄파춥스를 살 돈은 있었다. 현정이는 여전히 듣고 있고, 나는 겨울방학 동안만 수업을 들었던 영어 선생님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팝송 "미셀"을 가르쳐주었고 시청각실에서 "쉘로우 그레이브"라는 외국 영화를 더빙이 아닌 자막 버전으로 보여준, 정말 멋있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활짝 피지 않은 싱싱한 장미 송이를 꺾어서 츄파춥스와 함께 종이컵에 담았다. 그걸 하나씩 들고 학원 교무실에 가서 수학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에게 주었다. 선생님들은 웃으며 기뻐했다. "이 꽃 어디서 막 꺾어온 거야?" 했지만 다 같이 웃어넘겼다. 문득 영어 수업이 그리워진 나는 "선생님! 제가 영어 듣는 게 좋아요?" 했다. 왜 그랬을까,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유치한 질문을 왜 했을까. 후회할 시간도 없이 영어 선생님이 대답했다.
"중학생이니까 그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잖아~"
나는 머쓱해져서 교무실을 나왔다. 빈말이라도 "네가 다시 영어 수업도 들으러 왔으면 좋겠어!" 해주면 좋았을 텐데 싶어 서운한 마음이 왈칵 들었다. 내가 건넨 스승의 날 선물이 너무 작고 초라했던 걸까 싶기도 했지만...
조금 더 자랐을 때 가끔 그 영어 선생님을 떠올리면, 그런 어린애가 얼마나 귀찮고 유치했을까 싶어 귀까지 뻘게지곤 했다. 내가 학원에 일하고 나서는 그때의 내가 잠깐이지만 천덕꾸러기였구나 싶기도 했지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그냥 그때 좋아했던 영어선생님과 수학선생님이 지금 어찌 지내나 궁금할 때가 있다. 요즘처럼 빨간 장미가 온통 담벼락에서 쏟아질 것 같을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