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항상 그렇다. 특히 "시"어른들은 당연히 더 그렇기에 '왜 그러는 거야?'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선을 넘어 간섭하고, 아무 말이나 필터 없이 던진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 옷가지를 벗듯 무의식적이고 거칠 것 없이 내던지는 말.
아이가 더 어릴 적에는 시가에 영상통화를 자주 걸었는데, 시어머니는 "엄마가 뭐 맛있는 거 해주더나?" 하는 질문을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할 때에는 그게 당연히 나를 향한 질문이어서 식사 메뉴를 일일이 대답하곤 했다. 반찬이 부실하다 싶은 날에는 어김없이 지적(우리 공주 맛있는 거 해주지~)이 있었기 때문에 곧 고기반찬이 있는 날에만 전화를 하게 되었다. 밥 먹는 시간이 아닐 때 통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린아이를 전화기 앞에 앉히는 일을 해본 적 없는 사람만의 의문이리라.
맛있는 걸 해주라는 말은 듣기 좋지 않지만, 들어 넘길 수는 있는 말이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그다음이다. 영상통화가 지루해진 아이가 칭얼대면 화면 속의 시어머니는 이런다. "왜? 엄마가 뭐라 하나? 왜 우리 공주를 울리노? 애미가 그랬나?"
화면 밖에 있는 내 얼굴은 굳지만, 저편으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대수롭지 않은 웃음기를 잃지 않는다. "전화통화가 지루한가 봐요~." 내 동생이나 엄마가 거는 영상통화는 아이에게 다정하기라도 하지. 시어른들은 얼굴 보이는 첫 순간만 "아이고~우리 공주~"할 뿐, 며느리 듣기 싫은 소리에 아이에게 이쁜 짓이나 사랑해 따위를 요구하는 일방적인 소통일 뿐이니, 아이에게는 지루하고 나에게는 피로한 의무 수행에 지나지 않는다. 손주와 며느리에게 사랑과 공경을 맡겨놓은 듯 돌려받기를 당당히 요구할 때마다 불편해진다. 다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려니, 옛날 사람들이 다 그렇지 하는 식으로 이해하지는 못해도 흘러 넘기려 애쓴다. 비슷한 며느리 입장인 사람들에게는 한 두 마디만 해도 충분히 이해와 공감을 받을 수 있지만, 막상 가족인 남편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않게 된 것도 흘러 넘기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이다.
지난주 아이가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하필이면 철제 미끄럼틀 난간에 얼굴을 부딪히는 바람에 오른쪽 볼이 퉁퉁 부어올랐다. 놀이터 가장자리에 서 있던 나는 바닥에 앉아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러 갔다. 아이를 데리고 벤치에 가서 무릎에 앉혔다. 아이 친구들도 저마다 걱정의 말을 건넸고, 넘어지는 순간을 지켜본 엄마들이 나보다 더 놀라서 곁에 다가왔다. 헐레벌떡 집에 올라가서 멍크림을 가져온 친구 엄마가 면봉으로 조심스레 아이 볼에 약을 발라주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자, 잇몸이나 입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주는 엄마가 있었고, 볼 안쪽에 피가 나는지 얼마나 아픈지, 입은 벌릴 수 있는지 꼼꼼하게 상태를 봐주는 엄마도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자 같이 놀자고 다가오는 아이 친구들이 있었으나 아이는 내 품에 폭 안겨 쉬고 있었다. 한 엄마가 "여름이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겠네?" 했더니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편의점에 가서 멘토스 한 줄을 사서는 씩씩하게 다시 킥보드를 타고 놀았다.
아이의 부상이 심각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거였다. "모레 할머니집 가야 하는데, 하필 오늘 저렇게 멍이 들었네." 옆에 서 있던 엄마들이 바로 맞장구를 쳤다.
"한소리 듣겠네. 아이고 하필이면 오늘 다치냐."
저마다 시가에 가서 잔소리 들은 경험담이 이어졌다. 애가 다치면 어떤 상황이든 그게 엄마의 잘못이 되는 괴상한 마법.
애 안 보고 뭐 했냐는 개떡 같은 소리. 보고 있다고 애가 안 다치나? 엄마들의 불만은 또 같은 소리로 마무리되었다. "여하튼 어른들은 꼭 그런다니까."
이틀 후 시가에 갈 때쯤 아이 얼굴의 멍은 그야말로 절정으로 물들어, 동그랑땡만 한 크기로 푸르딩딩에 거무죽죽한 색이 볼을 뒤덮었다. 와중에 심해진 비염 때문에 코를 너무 파서 콧구멍에 염증까지... 내가 봐도 얼굴이 참 안 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시가에 가서 거실에 앉자마자 시어머니는 애 얼굴이 왜 이러냐며 화들짝 놀랐다. 놀이터에서 넘어진 사연을 듣고(들은 건지 만 건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애미가 그랬드나? 우리 예쁜 공주 얼굴을 누가 이랬노? 아 얼굴이 형편없네. 내가 그리 애 잘 보라고 했더니~." 대답하지 않고 넘기려는데 시어머니는 "애미가 그랬냐"를 한번 더 반복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했더니 더 이상 한탄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소리는 끊겼다.
어쩌다 한 번씩 카톡이나 영상통화를 하는 요즘에도 시어머니는 마무리로 꼭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애 잘봐라~."우리 애라고? 우리 애를 잘 보라니? 내가 무슨 이 집 유모인가? 우리 애가 아니고 내 애인데, 왜 매번 나를 식모취급하지 못해서 안달인가?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 해도 목구멍에 걸리고 마는 우리 애 잘 보라는 말, 그리고 아이가 다칠 때 듣는 질책은 내가 어머니에게 느끼는 작은 애정을 순식간에 접어버리게 한다. 물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느끼는 애정이 크지도 않겠지만, 대단치 않은 애정이나마 품고 있게도 해주지 않는 실정이다.
수습하려 억지로 짜내는 말이 아니라 나의 시어머니 정도면 정말 상당히 괜찮은 시어머니다. 내 엄마였으면 좋았겠다고 여러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봤을 정도로. 그러나 만약은 가정일 뿐이고, 내 엄마가 아닌 시어머니는 나를 아들의 매니저로, 아이의 유모로 대한다. 시어머니 당신은 나를 아마 자식처럼, 딸처럼 대한다고 여기고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