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금주는 어려워

술이 좋은 나, 괴롭다

by 원효서



어쩌다 2주 정도 금주할 때가 있지만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 20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건 독서도 운동도 아닌 술 마시기.(임신 기간에 금주하기는 힘들 줄 알았는데, 체중 증가와 널 뛰는 감정 기복에 시달리느라 다행히 술까지 떠올릴 여력이 없었다.) “술을 좀 마시면 어떠냐?” 하는 분위기 속에서 평생 살아왔지만, 건강검진 질문에 “주 2회, 막걸리나 와인 1병”이라고 쓰면 건강에 별 이상이 없더라도 ‘절주 필요’라고 쓰인 결과지를 받게 된다. 주 2회가 아니고 3회일 때도 잦고 일주일에 한 병이 어니라 1회에 한 병일 때도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제대로 하지 못해도 나는 내 생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이다.


매일 술을 참으려 노력한다. 맥주나 와인, 막걸리를 미리 사두지 않는다. 갈증이 나도 탄산수를 마시며 참는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서 술까지 마시면 안 된다고 다짐한다. 저녁밥상에서 하루 더 참고 내일 마시기로 스스로를 달래는 약속을 한다. 6시 이후 수업이 있는 날에는 반주를 못해 괜찮을 것 같아도 9시에 아이와 함께 잠들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되면, 딱 한 잔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사흘까지 참고 모레 마시는 거야! 의지를 굳건히 다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 딱 한 잔을 마시고야 만다. 감자칩이나 생라면을 뜯은 날에는 두 잔에서 석 잔도 어렵지 않다. 대화하지 않으면 술기운이 빨리 돌아 느슨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짠 안주와 술의 조합으로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야 하고 갈증이 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그 한 잔. 점심때부터 술 생각이 날 때도 많다. 파스타를 먹으면 와인이 당기고, 한식을 먹으면 막걸리가 떠오른다. 매콤한 걸 먹으면 소맥 한 잔이 간절하지만, 마시지 않는 편이 옳기에 참는다.

집 안에 들인 화분들

대단한 주사는 없다. 많이 마시면 목소리가 커지고 잘 웃는다. 가장 부끄러운 술버릇은 토하는 것이다. 지난봄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안주는 별로 안 먹고 와인과 소주를 실컷 마시는 바람에 화장실에 달려간 일이 최근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다. 친구들이 화장실 밖에서 “괜찮아? 우리 갈게~”하고 떠났다. 다음 날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올 때까지 숙취로 고생하면서 다시는 과음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해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필름이 끊긴 적이 없기 때문에 혀가 꼬이도록 술을 마시고 길가에 토한 기억이 잔뜩 쌓여있다. 술집 화장실, 집 화장실, 심지어 버스와 방 안에서 토한 적도 있다. 장판에 토한 채 정신없이 잠든 척하고 있었지만 “야가 미쳤나~”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이고, 나야.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하고 막 써서가 아니라 쓰고 있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럽기는 오랜만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모조리 써서라도 오늘, 내일, 가능하다면 주말까지 술을 마시지 않으려는 노력을 어여삐 여겨야 할까.


술에 의지하고 싶지 않다. 카페인도 못 끊는데 알코올에까지 기대고 싶지 않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기 위해서, 단시간에 빨리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술을 마시는 습관을 벗어던지고 싶다. 씁쓸하고 상쾌한 와인, 달착지근하고 든든한 막걸리를 향한 애정을 거두고 싶다. 더위에 지친 날 하이트 한 잔, 반주하기에 딱 좋은 청하 한 병, 부드럽고 향이 좋은 블랑 한 캔(500ml), 많이 마셔도 입 안이 깨끗한 소비뇽 블랑, 언제나 만만하고 열기도 편한 옐로 테일…. 절주를 결심하는 글인지, 뭐 마실지 고민하는 글인지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