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와 연우와 헤어지는 일
부담스럽다. 내가 정말 좋아한 사람들이 나를 떨어내고 싶을 때 하는 말이었다. 부담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쉽게 포기가 되었다. 왜 나처럼 깔끔하게 말해주지 않는지 몰랐지만, 부담스럽도록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제 니가 좋지 않아.”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담스럽다는 말이 곧 헤어지자는 의미임을 묻지 않아도 알아서 물러나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하고 싶었다. 일말의 여지도 갖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숨 막히도록 옥죄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갑고 단호하게 “싫어.”라고 말해주지도 못하는 비겁한 사람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게 내 연애의 마지막 챕터였다.
이 이별로부터 10년쯤을 거슬러 올라가면 몇 달간 친구들을 괴롭히는 연애 상담 끝에 마침내 10월 어느 저녁에 “선배, 나 이제 선배가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내가 있다. 옆에서 나를 쏘아보는 사람은 2년 가까이 만나온 6살 많은 선배였다. “언제부터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한, 두 달 전부터 고민했어요.”
“그동안 내가 아주 우스웠겠다?” 전혀 우습지 않았다. 나 말고는 같이 놀 친구가 없다는 그가 한심스러웠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우습지는 않았다. 아직 대학생인 나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점이 부담스러웠고, 오래 계획하던 취업도 안 되었는데 나와 테니스를 함께 배우는 미래를 그리는 선배의 철없음에 질렸다.
시시때때로 나를 무시하려 들던 옹졸함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한국말 더빙한 미국 영화에는 몰입이 안 된다고 하자 “대단한 영화 비평가 나셨네.” 하던 일이나, 미니스커트 논쟁(?) 가운데 “이래서 똑똑한 여자랑은 사귀면 안 된다니까.” 하던 말을 하던 목소리가 생생했다. 내 취향이 아닌 브이넥 티셔츠와 게스 청바지를 사주고 자주 입지 않는다고 구시렁댔던 선배, “왜 걔랑은 자고 나랑은 안 자는 거냐?”라고 대놓고 묻지 않고 “이제까지 몇 명이랑 잤어?”라고 물었던 선배. (그때 술자리에는 남자 선배가 두 명 더 있었고,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연애 초기에 겪었다. 왜 계속 만났을까? 그건 선배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좋아한다고 말하기 전에도 어울려서 오래 놀면서 나를 쭉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내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갔을 때 끊임없이 나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밥을 사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선배에게 갓 입대한 남자 친구와 헤어질 결심을 말하자 “나와 사귀지 않아도 괜찮으니 좋은 선후배로 잘 지내자. 그러다가 네 마음에 내가 좋아지면 사귀자.”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제법 어른스럽고 쿨한 사이처럼 느껴졌다. 심드렁한 반응으로 나를 늘 애타는 불안으로 몰고 가던 남자 친구 연우는 입대하자마자 세상 다정한 찌질이가 되어 전화를 해댔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내가 지난 1년 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때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