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일 - 최종의 최종 3

첫 휴가 나온 군인에게 이별은 좀 그렇겠지만

by 원효서


이대 앞 카페에서 첫 휴가를 나온 연우를 만났다. 나는 연우와 헤어질 결심을 한 지 한참, 우리의 이별은 연우만 알면 되는 일. 선배가 고백하기 전에도 연우를 향한 마음은 식은 지 오래여서 나에게 연우는 이미 연인이 아니었다. 항상 바글바글 끓고 있던, 두근거리고 초조하고 불안하던 내 사랑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입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다정해지는 연우를 만날 때마다 설렘이 사그라들었다. 이제서야, 이제 와서야 나를 사랑한다고? 지난 일 년 동안 너에게만 보이는 게시판에 쌓은 내 편지들에 이제 와서 말줄임표 가득한 댓글을 단다고? 내가 너에게 뭐라고 했니. 적막이 아닌 고요를 사랑한다고 그랬잖니. 그런데 왜 너는 이렇게 수다스러워진 거니? 그러지 말지 그랬니. 내 사랑을 이제야 안다고? 차라리 모르지 그랬니. 앞으로 잘하겠다고? 알겠어. 알겠는데, 군대에 가서 칭얼대는 건 잘하는 게 아니란다.


심한 코감기에 걸렸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콧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연우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반드시 이별을 알려야 했다. 선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연우와 헤어지고 선배와 내 마음을 편하게 할 작정이었다. 연우는 힘들겠지만, 글쎄, 그건 내 문제가 아니었다. 어서 연우에게 이별을 고하고 선배와 병희 커플과 맛난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코가 꽉 막혀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는 나를 보고 연우는 내가 슬퍼한다고 생각했다. 기다림이 힘들어서 헤어지자고 해보는 걸 거라고, 가장 쉬운 해석으로 접근했다. “아니, 감기가 너무 심해서.” 하고 코를 팽 푸는 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악역이 되고 싶지 않아서 선배 이야기는 숨겼다.


진실을 숨긴 채 진심을 전하려 노력했다. “이제 니가 좋지 않다. 헤어지고 싶다.” 빙빙 돌리지 않고 말했다. 연우는 믿지 않았다. 여전히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제대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어서 헤어지자고 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다른 남자가 생겼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말하자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이토록 쉽게 연우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걸까? 지난 봄, 황사에 버드나무가 미친 듯 흔들리던 날, 연우가 보고 싶어 밤새 울고 말도 없이 새벽부터 연우의 집을 찾아갔던 나는 죽어버렸나? 연우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던 가을날부터 우리는 끝난 거였다. 만남의 시작도 끝도 만나서 해야 하던 시절이었지만, 편지로 이별을 고할 걸 그랬나? 망연자실한 연우를 두고 나는 카페를 나섰다. 선배와 병희 커플을 만나 횟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생전 처음 본 산낙지가 꿈틀거리는 접시에 비위가 상했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술잔을 받았다.


밤이 깊을수록 콧물이 줄줄 나오고 기침도 잦아졌다. 서대문구 어딘가, 빌라 3층에 병희 커플이 사는 집에 머무르는 내내 연우는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답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불편했지만 놀랍도록 미안하지 않았다. 의리도 사랑도 믿음도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고 믿은 나 자신이 실은 순거짓말쟁이에 한낱 배신자일 뿐인가 고뇌할 법도 했는데, 적어도 연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질 법은 했는데, 무감했다. 그저 이제나 저제나 내가 정식 여자친구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선배의 바람만이 중요했다. 계약이 끝난 월세방을 떠날 때보다 홀가분했다. 그날 밤 깊이 잠든 선배 옆에서 연우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