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없는 사람은 없지만
나만이 제일 힘들고 가련하던 20대 초반, 대학에서 만나 친해진 사람들 가운데 나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었다. 공무원인 엄마와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선배는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으면서 차를 끌고 다녔다. 내가 과외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을 용돈으로 받으면서 공무원 공부를 하는 선배는 팔자가 좋아 보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스타크래프트 하고 여자 친구와 노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당연하지?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나도 엄마랑 단칸방에서 고생한 적 있어.”
힘들어하는 여자친구의 사연 듣기에 질린 선배가 어느 날 역정을 내며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안 그래도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꽁생원인 사람이 공시 준비까지 하려니 죽을 맛이었겠지. 거기다 여친은 툭하면 우울해서 힘들다는 둥, 와병 중인 할머니 때문에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는 둥 투정을 해대니 말이다. 선배가 모른 건 이거였다. 내가 넉넉하게 자라 발랄하게 사는 스무 살 여자애였다면 선배 같은 남자랑 사귈 이유는 없었다는 것. 외로움을 많이 타고 집과 학교에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어린 여자애니까 보잘것없는 선배를 사귀게 되었다는 걸 나도 몰랐다. 나에게 남자 보는 기준은 오로지 ‘나에게 잘해주는가?’뿐이었다는 걸 서른이 넘어 깨달았다. 선배는 모르는 걸까? 단칸방에서 고생한 적 있는 사람과 계속 그런 형편으로 사는 사람의 차이를? 선배가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기 때문에 나는 팔자타령을 줄였다. 그쯤에는 선배에게 애정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도 했고.
어느 화창한 날 벤치에 앉아 있던 선배는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헤어지자는 걸까? 결혼해서 어찌 살지 헛소리에 불과한 공상을 듣기보다는 차라리 이별 통보를 바랐다. 아니었다. 선배는 숨겨왔던 집안사를 이야기했다. 선배의 부모는 주말부부가 아니었다. 이혼 같은 별거 중이었다. 선배의 기대만큼 내가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못한 점이 조금 미안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밀 고백이란 대단한 리액션을 받기 힘들다. 아주 예전부터 병희 무리에서 선배의 부모가 이혼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문제라고 5년이 넘도록 친구들에게 숨기는지 모르겠다는 게 병희의 말이었고, 나 역시 병희 의견에 동의했다.
선배에게는 친구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할 상처겠지만, 매번 애인에게 주말부부라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삶이 더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이혼 가정의 외동아들이 겪는 고통은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겠지만, 인간애가 부족하던 나에게 그 슬픔은 우리 집의 가난과 고난에 비해 하찮다고 여겼다. 자기 연민이 넘쳐흐르는 시절이기도 했지만, 선배가 숨기는 가정사가 별로 숨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음울한 표정으로 떠나간 아빠 이야기를 하던 선배는 불쌍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부담스러웠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나에게 말하다니, 정말 나와 결혼이라도 생각하는 걸까? 곤란한 심정을 꼭 깨물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고 그의 슬픔을 느끼는 척했다. 선배의 아빠가 꾸린 새 가정에는 12살 어린 이복동생도 있다고 했다. 두 여자와 두 아이를 괴롭히는 빌어먹을 남자 새끼, 선배와 선배 엄마는 그래서 늘 이모들과 만나는 거였군.
선배의 엄마는 한 번 마주친 적 있었다. 청춘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엄마가 없는 집에 여자친구를 불러들였는데, 엄마가 예고 없이 들이닥친 상황. 선배는 우왕좌왕하며 방금 감은 머리를 숨기려고 캡모자를 뒤집어썼고, 아무도 속지 않을 ‘책 빌리러 온 후배’라고 나를 소개했다.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아주머니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마보이로 큰 외아들답게 선배는 호들갑을 떨었다. 공부한답시고 취직도 하지 않고 엄마한테 얹혀살면서 연애질이나 하는 걸 들켰으니 법석을 떨 만도 했다. 모든 연애를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는 나 역시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래도 화가 났다. 내가 왜 잘못한 애처럼 눈치를 보아야 한단 말인가? 나를 제 방으로 불러들인 건 언제나처럼 선배이지 않은가? 제 엄마가 내 인사도 똑바로 받지 않은 건 이해할 일이고, 내가 불쾌한 건 알 바 아니라는 건가? 선배의 엄마는 열흘 정도 아들을 무시하다가 평소처럼 돌아갔다. 아들 엄마들이 다 그렇지 뭐. 짧은 순간이지만 ‘성실한 아들 앞날에 방해가 되는 여자’ 취급을 당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들과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