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활동이 어른스러웠다고 생각하는 게 아직 어린 마음
1월 27일 화요일
여행 다녀온 날 밤
글쓰기 수업이 끝나자 일기조차 잘 쓰지 않게 되었다. 힘들까 지레 겁먹었던 겨울방학도 그럭저럭 절반을 보냈다. 아침이 늦어지는 요즘에는 요가도 거의 가지 않는데, 운동을 하지 못해서 초조하거나 혼자 나가 놀고 싶어 안달이 나지도 않는다. 여름이 영상과 게임에 매달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마음 편히 지낸다고는 못하겠지만, 모든 순간 엄마 곁에 있겠다고 하는 시기는 확실히 지나간 것 같다. 2박 3일 엄빠와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서 그런가, 느긋한 기분이 드는 밤이다. 토지 9권을 읽다가 내려놓고 배경으로 빅뱅이론을 틀어두었다.
가족여행에서 화를 내지 않았다. 일정을 빡빡하게 짜지도 않았고,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정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면 저녁을 먹고 곧 잠들었고 일출과 함께 깨어났다. 돈을 많이 벌어서 호텔에서 오래 쉬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엄빠와는 더 긴 여행을 계획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도 들었다. 엄빠가 집으로 먼저 출발한 여행 마지막날 아침에서야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동생과 여름과 케이블카를 타고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휴게소에서 떡라면을 먹는 일정이 즐거웠다. 엄빠를 위해 특별히 내가 하는 일이 없어도 본능적으로 어른들의 기분을 살피는 일이 여행을 의무로 만들고,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조만간 산뜻하게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와 잠드는 당일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1월 30일 금요일
어른의 하루
휴무인 남편과 방학인 어린이의 아침을 차려주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우당탕탕 서두르며, 그래도 무려 새우버섯봄동 파스타를 만들어주었다. 노브랜드 알리오올리오소스의 힘을 빌려 만든 파스타는 맛있었다. 뽀글 파마를 지키기 위해 아침에 머리를 감았다. 약속시간에 늦어 남편에게 설거지해라! 소리를 치고 바쁘게 나갔다. 조카들에게 물려받은 작은 레고를 윤 회장에게 주기로 한 날이라 사운즈 커피에 갔다. 양송이 수프와 빵과 커피를 얻어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웃느라 자꾸 눈물이 났다. 새끼손가락 재활을 위해 호두를 쥐니 공을 잡니 하다가 실리콘 악력기를 주문했다. 홈 발레와 닭가슴살 이야기가 샐러드와 무릎 관절 걱정으로 이어질 때, 여전히 어른이고 싶지 않은 우리의 나이를 새삼 느꼈다.
1시에는 새로운 학생과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학부모가 집에 오는 건 오랜만이라 몹시 떨렸다. 공부방 책상을 정리하고 후닥닥 먼지를 털고 환기를 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국어 공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긴장한 탓에 나는 말수가 확 늘어났고 학생은 조용히 있었다. 오랜만에 고등학생과 공부하게 될지 모르겠다.
상담이 끝나자마자 여름과 함께 치과에 갔다. 몇 달을 미루다가 까먹은 정기검진. 아이와 옆방에 나란히 들어가 진료를 받았다. 아이는 영구치 홈메우기를 하고, 나는 스케일링을 받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스케일링 시간. 시린 느낌이 들 때마다 왼쪽 다리가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깍지를 끼고 있다가 의식적으로 새끼손가락을 주물렀다. 그러나 스케일링 중에 의식을 입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저 석션기(?)에 감사하며 견디는 수밖에. 둘 다 충치가 없어 감사한 마음이었으나, 주걱턱 위험이 커진 여름은 결국 교정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이었다. 다음 주에는 경대치과까지 가야 하는데, 검색해 보니 어린이 교정도 보통 일은 아닌 듯해 걱정이 앞선다. 아무쪼록 큰 고생 없이 교정할 수 있길 바란다.
아주 오래전에 쓰던 14k, 18k 귀걸이 3짝(한 짝 분실)과 휴대폰 고리용 금돼지를 동네 금방에 가서 팔았다. 몇 년 전 시계 전지 교체 후 처음 갔는데 사장님이 정말 친절했다. 보석을 좋아한다는 여름의 말에 보석 사진을 쭉 보여주며 사파이어와 루비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 보석 하나 사 가자."라는 해맑은 여름의 손을 이끌고 나와 현금을 바로 입금했다. 가욋돈인 만큼 돈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난달 무지막지하게 나온 카드값을 메꾸는 데 쓰일 나의 금쪼가리 들이여. 쥐 잡듯 집을 뒤져서 또 귀걸이 조각이라도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 일정은 새끼손가락에 침 맞으러 가기. 한의원에 가면 배에 올려주는 따끈하고 납작한 동그라미(구들장 찜질이라고 쓰여있었다)가 좋다. 언제나 친절하고 젠틀한 분위기의 한의사 선생님의 치료도 좋다. 침은 안 아프지만 피 뽑을 땐 아픈 한의원, 알람이 울렸다. 치료받으러 갈 시간!
그 후에는 홈발레를 한 시간 넘게 하고, 수업도 있는 오늘 정말이지 너무 알차서 주말 내내 드러누워도 될 듯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