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애쓰며 사는 중
2월 7일 토요일
가구 이동
가구 이동, 가구를 옮길 때마다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는 장소를 바꿀 수 없지만 어떻게든 공간을 달리하고 싶을 때, 엄마는 낡은 집에서 얻어 온 서랍장과 장롱을 옮겼다. 이 벽에서 저 벽으로 옮겨진 가구는 잠깐 기분을 환기시켰지만 살던 공간이니까 곧 익숙해졌다. 책상 2개가 나란히 놓여있던 작은 방에서 나는 동생에게 몇 번이나 책상을 바꾸자고 했다. 이 인형 너 줄게, 이 연습장 너 줄게, 라디오에서 노래 녹음할 때 니 테이프 먼저 넣게 해 줄게. 온갖 사소한 조건을 걸어 동생을 귀찮게 했다. 변덕을 아무리 부려도 내 책상에 만족하는 날은 바꾼 그날뿐이었다.
결혼하고 혼자 원목 침대를 옮긴 날 이후, 나는 자주 무언가를 옮겼다. 책장은 무게보다도 높이 때문에 꽤 고생했는데, 두세 번의 이동 끝에 복도에 자리 잡았다. 책장보다 크고 무거운 가구는 없었다. 침대와 세트인 원목서랍과 화장대, 속옷과 양말을 넣는 서랍장을 이리저리 옮겼다. 식탁은 가로로 놓았다가 세로로 돌렸다가 했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살림이 늘어나자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테트리스하듯 자리를 바꿨다. 화장대를 안방에서 끝방으로, 다시 아이방으로 옮겼다. 새 식탁이 생겨서 10년 썼지만 멀쩡한 식탁을 문간방에 옮겼다가 움직일 자리가 없어서 결국 내놨다. 전자키보드 크기에 맞추어서 제작한 탁자도 거실에서 문간방으로, 다시 가운뎃방으로 옮겼다가 문간방 벽에 붙였다. 충동으로 시작하는 가구 이동에는 변수가 잦았다. 급한 성질에 한 뼘, 두 뼘으로 쟀던 길이와 너비가 틀리면 그제야 줄자를 꺼내 들었다. 가구를 들어낸 자리에 있는 먼지를 닦다가 줄자를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 동시에 옷 정리, 책정리, 장난감 정리를 하다 보면 정신이 쏙 빠진다. 아무튼 개운해진다.
지금은 거실 창가에 놓여있는 구 화장대 현 책상은 내놓기에 아깝고, 유리상판 들고나가기가 힘들어서 버리기를 미루는 중.
오늘은 국민서랍장이라는 샘키즈 수납장을 기어코 베란다로 옮겼다. 옷장을 사면서 내놓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수납장은 아이의 장난감과 미술도구들, 학교 준비물로 가득 차 버렸다. 베란다에서 자리를 차지하던 10년 넘은 작은 신발장과 탁자 의자 둘을 내다 버렸다. 수납장을 꺼내서 아이와 자는 방은 훨씬 쾌적해졌고, 베란다도 깔끔해졌다. 다리가 아프지만 좋다.
2월 8일 일요일
종일 집에 있었다. 남편을 회사에 태워주느라 20분 정도 차에 머물렀는데,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길 때도 차문을 열지 않고 낑낑대며 건너갔다. 지하주차장으로 다니니 찬 공기를 맞을 일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음쓰 버리러 나갔을 때 찬바람을 쐬긴 했다. 털슬리퍼에서 튀어나온 뒤꿈치가 깜짝 놀랄 만큼 차디찬 겨울 저녁이었다. 놀러 온 여동생과 냉동 생지 페스츄리를 구워 먹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크리스피 도넛과 쥐포와 막걸리까지 가열차게 실컷 먹어버렸다. 이기적인 선물과 철없음의 정도, 사기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몹시 졸린다.
2월 9일 월요일
아침부터 수업을 두 타임 하느라 바빴다. 수업하는 동안 여름을 신경 쓰느라 방학 중 수업은 마음이 더 힘들다. 학생들은 착실하고 솔직해서 수업 자체는 즐거운데, 거실에 있는 여름이 오랜 시간 닌텐도를 하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별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내 수업 시간에 딱 맞추어 여름도 학원에 보내려고 했는데 시간표는 도무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여름의 수업은 1:1이 아니라 시간표가 고정되어 있고, 1:1인 내 수업은 아이들의 일정에 따라 자유로이 변하는 편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수업과 한의원 일정 사이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잠깐이나마 역시 나가길 잘했지, 환기가 되어 기운이 솟았다. 한의원에 누워서 반찬가게에 고등어구이와 밑반찬을 포장주문하고 집에 와서 나물반찬과 막걸리를 먹었다. 약을 먹지 않은 지 좀 되어서 그런지 다시 부쩍 술생각이 잦은 요즘이다. 얼음을 탄 술 한 잔을 오래오래 나눠먹고 빨래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샤워하고 싶어졌다. 세탁기 돌아가는 초반에는 샤워를 하면 따뜻한 물이 쫄쫄거릴 때가 있어서 곤란한데 말이다. 기운찬 듯하면서도 차분하지 못한 요즘의 나는 부쩍 더욱 산만해져서, 모든 일을 동시에 시작하는 느낌이다. 폰을 보는 시간도 더 늘어나서 눈밑이 자주 떨린다. 마그네슘 문제도 아니고 9시간씩 자니까 수면 부족도 아닌데, 스트레스와 영상 자극 때문이겠지 싶으면서도 이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 병원에 가면 물어봐야겠다.
틈틈이 한강 작가의 동화 "눈물상자"를 읽고 있다. 한강의 문장은 맑고 깨끗해서 탁도 높은 내 마음으로 읽기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깨끗한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떨구는 마음으로 투명한 이야기를 읽는다. 사람을 향한 복잡한 미움과 의심을 조금이라도 묽게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