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들과 미루기

미루고 미루리라 내일도

by 원효서

3월 10일 화요일


칼란디바와 제라늄, 무화과와 금귤나무


우리 집에 있는 화분들이다. 몇 해 전 선물 받은 칼란디바는 툭 꺾어서 꽂아도 뿌리를 내리고, 폭력적인 가위질로 가지를 다 쳐내도 새 잎이 돋아난다. 잘라낸 가지 두 개를 물에 꽂으니 하얀 뿌리가 돋았다. 떨어진 이파리 하나가 흙에 닫기만 해도 물을 주면 거기서부터 자라났다. 수형을 다듬을 뜻도 없이 엉망진창으로 키우다 보니 꽃을 본 지가 오래인데, 뭐 어떠랴. 건강한 초록으로 자라면 그만이지. 역시 몇 해 전 선물 받은 제라늄은 지금 네 개 화분이 되었다. 물꽂이로 잘 번식하고 잊을 만하면 꽃대도 쭉쭉 올라온다. 말린 시래기처럼 씁쓸한 냄새가 나는 이파리를 만지면 보송보송한 느낌이 들어 정이 간다.


이제 십 년이 된 금귤나무는 지난해 분갈이 이후로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큰 가지를 두 개 쳐내고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겨울부터 쉬지 않고 꽃을 피운 자리마다 열매를 맺었는데, 이러다 죽지 않을까 싶어 깨알만 한 열매를 몇 번이나 솎아주었다. 예닐곱 개 열매가 진초록 알사탕모양으로 자라나고 있다. 잎이 비실비실해 보여 제미나이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감귤전용비료를 알려주었다. 검색에서 대용량 비료들을 치우고 겨우 하나 주문했는데, 부디 도움이 되길.


작년부터 키우는 무화과도 별 노력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 무화과 나뭇가지에는 아이가 실바니안 아기토끼를 올려두는데, 귀여워서 어쩐지 거기가 아기토끼 자리가 되어버렸다. 자기 전에 금귤과 큰 제라늄 화분에 물을 주어야겠다. 큰 화분 옆에 있는 엉망진창 장난감과 만들기 재료도 좀 정리하고.




3월 12일 목요일


미루고 미루리라 하게 되는 스케줄들이 있다.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는 않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들, 지금은 프린터 카트리지(헤드?) 청소와 한국어교원 자격증 재발급을 미루고 있다. 프린터는 아직 급한 컬러프린트가 없어 더 미루어질 것 같고, 어제 이력서에 쓰려고 찾던 자격증 번호를 아직 못 찾았지만, 이미 이력서를 제출해 버려서 굳이 재발급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는 모바일에서 접속하면 재발급 화면이 작성불가한 모양새로 열리는 바람에 노트북을 켜지 않고서는...


그래도 며칠 미루던 편지 쓰기와 우산 반납은 오늘 드디어 일정표에서 사라졌다. 오늘 있던 두 개 수업 가운데 하나는 내일로 미루어졌고(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지금쯤 두 번째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 중딩도 당연스레 지각 진행 중.

1월부터 미루던 일 가운데에는 내년까지 밀릴 일도 있다. 그건 바로 연하장 쓰기.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몇 장의 편지와 엽서를 받고 설 전에는 꼭 연하장을 쓰리라 다짐했는데 2월을 지나는 동안 잊어버렸다. 지각쟁이가 다 와간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래도 일기는 미루지 않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