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는 없지만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모르고 살다가 어느 순간 혼자가 된 사람은 우왕좌왕하다가, 돌연 텅 빈 자신을 마주하고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30대가 되어서야 겨우 혼자 노는 법을 배운 나는 집에서 혼자 노느라 밖에 잘 나오지 않던 어린 시절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자기만의 구석이 있었던 거다. 자기만의 구석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보물상자를 가진 동화의 주인공처럼 부족한 것이 없는 존재이다.
80년대에 태어난 보통의 아이들처럼 나도 내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어릴 때는 할머니와 커서는 여동생과 한방을 써왔다. 사춘기가 되면서 우리 방 벽에는 배우와 아이돌의 포스터가 잠시 붙었다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으로 도배되었다. 20대 후반 둘이서 살던 이층 집에 온통 곰팡이가 피자, 우리는 한겨울에 며칠 동안 창문을 열고 온 집에 벽지페인트를 칠했다. 분홍과 연두와 레몬색으로 집을 칠하고 나자 낡고 구질구질한 셋방에 빛이 가득 들어차는 듯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공간에 애착이 생겼던 듯하다.
그래도 ‘만족할 만한 집’에 대해서만은 확고한 기준을 가진 나였기에 그 집을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 집은 잠시 머물 곳일 뿐, 내가 찾는 것은 집안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밖에서 놀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온통 후회에 휩싸이면서도 끊임없이 집 밖으로 나돌았던 이유가. 집과 가족이 불편하니 밖의 관계에 치중했다. 그 시절에는 친구를 만나 술집에 가서 시간을 죽이며 ‘집구석’이 들어가는 말을 많이 했다. ‘우울과 가난의 노래’를 7절 정도 부르고 나면 후렴이랄까, 타령이랄까, 마무리는 늘 ‘망할 놈의 집구석’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이나 방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제 알겠다.
나는 나만의 평화로운 구석을 찾지 못한 거였다는 걸. 평생 똑같은 공간에서 살면서도 집에서 자기만의 생활과 취미를 가꿀 줄 아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쨌든, 나에게 집은 늘 들어가기 싫은, 최대한 늦게 도착하고 싶은 장소였다. 애석한 것은 밖에도 안에도 나의 구석은 없었다는 사실.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나의 구석을 맡기는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실체적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내던지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몰랐다. 어린 시절 겨울 방학에 친구네 방바닥에 엎드려서 연습장에 그리던 집이 기억난다. 나중에 자라서 도시에 가면, 도시에서 혼자 살 방은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어. 이야기를 나누며 그렸던 복층구조의 귀여운 방 그림. 거기에는 하트와 별 모양의 쿠션이 있었고, 책상과 화장대가 있었다. 나만의 옷장에 걸어놓을 옷을 그리며 꿈꾸던 그 순간들도 귀여운 나의 구석이었구나.
그러고 보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책상이면 충분했다. 방은 없었어도 책상은 있었던 가난한 시절에 내가 정성 들여 가꾼 공간은 늘 책상 위에 있었다. 표지 디자인이 형편없는 교과서와 문제집을 마음에 쏙 드는 포장지로 씌우고 다이어리를 열정적으로 꾸미던 책상. 선배들의 졸업식 날, 장미 한 송이를 갖고 싶어서 괜히 멀리까지 가서 꽃을 사 와서는 거꾸로 붙이던 책상. 이름도 모르는 화분(나중에 호야라는 걸 알았다)을 사 와서 올려두고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뿌리가 썩어버리게 만들었던 책상.
온종일 학교에 있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상 크기의 하드보드지를 예쁘게 꾸몄다. 이동 수업을 할 때나 자리를 옮길 때 들고 가면 바로 내 자리가 되는 듯해 편했던 보드판. 거기에는 월간 만화 잡지 ‘나인’에서 자른 컬러 일러스트와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시간표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예쁜 것들을 잔뜩 붙인 나만의 보드판이 상할세라 투명 시트지로 꼼꼼하게 포장할 때 공기 방울이 들어갈까 숨을 참던 그 순간도 풋풋했던 나의 구석.
대학에는 내 책상이 없었다. 책상은커녕 ‘내 자리’라 할만한 공간 하나 없이 강의실을 떠돌아야 하는 신세가 개강 첫날부터 힘들었다. 그때 도서관에서 나의 구석을 하나 찾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어리고 자신을 잘 몰랐던 나는 잔디밭과 교문 앞 술집에서 내 자리를 찾으려 했다. 사정이 복잡해진 집안에도, 즐겁지만 뒤돌아서면 허무한 밖에도 나의 자리는 없어, 혼자 오래 꾼 꿈은 더욱더 오래 꾸는 꿈이 되었다.
책상을 잃고 20년,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나는 다시 내 자리, 내 책상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살아보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서 내 자리는 식탁이었다가 화장대였다가 했다.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는 남편과 실용주의자인 내가 사는 집은 깔끔하기만 하면 되었다. 청소가 순식간에 끝날 정도로 휑한 공간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기에 여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집에는 버릴 물건조차 별로 없었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몽땅 잃어버린 내 시공간에 당황하고 몸부림치다가 지난겨울 내 공간을 마련했다. 문간방에 큰마음먹고 커다란 책상을 넣었다. 걸리적거리는 물건들은 처분하고, 잘 치지 않지만, 사랑하는 전자키보드와 책상으로 방을 채웠다. 책상 위에는 여동생이 추천해준 그다지 실용적이지는 않지만 예쁜 책상 용품들을 올리고 텅 빈 벽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붙였다. 책장에 덜 읽은 책을 잔뜩 꽂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 일쑤지만 식탁보다는 특별한 나의 구석이다.
사실 이제 내가 사는 집에는 거의 모든 공간에 내 구석이 있다. 문간방은 내 방이고 복도 책장 가득 내 책이 꽂혀 있고, 아일랜드 식탁에도 항상 읽던 책과 그림 도구가 올라와 있다. 주방을 떠올리자 이 집구석이 모두 내 일터라는 생각이 머리를 치지만, 몇 발짝 움직이면 숨 돌릴 자리가 있으니 괜찮은 구석이 많은 나의 집구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