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그린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

나는 그림을 그려요.

by 원효서

2W 매거진 31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s://m.blog.naver.com/2yjyj/223003067830




지난 12월, 친한 책방 사장님의 제안으로 ‘귀여운 내 얼굴 그려드려요’ 날을 열었다. 수채화로 간단하고 귀여운 초상화를 그려주는 작은 행사였다. 처음으로 돈을 받고 그려주는 초상화라 떨렸지만, 고객들 대부분이 책방 단골이라 부담 없이 웃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칠 시간이 임박해 처음 뵌 분을 그릴 때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더군다나 마지막 손님은 그림 선물을 받게 될지도 모르고 친구를 따라 책방에 오신 분이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말을 나누면서 속으로는 ‘망치면 어떡하지?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지? 시간도 얼마 안 남았네?’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순간, 질문을 받았다. 그림을 좀 그리는 사람이라면 받게 되는 그 질문! “그림을 전공하셨나요?” 나는 긴장과 불안을 숨기는 쾌활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하하하! 아니요. 취미예요. 전공 아니고 흔한 문과생이고요. 오늘 그려드릴 그림은요….” 다행히 손님은 보기 그림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고, 나는 용기를 내 ‘양 갈래머리로 그려드려도 될까요?’ 하며 초상화를 완성했다.

자화상

손 그림을 시작한 지 7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나를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적은 없다. 매일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고, 엽서를 만들어서 팔고, 그림 그리기 모임도 진행했지만 나를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정의하지는 못하겠다.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인 여동생과 자주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동생 덕을 톡톡히 본다. 펜과 작은 스케치북 정도만 스스로 사면 갖가지 종이와 물감이 세팅된 팔레트, 붓 같은 재료들은 동생이 다 챙겨 준다. 늘 내 그림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동생에게 배우는 게 많다. 잘 안 되는 부분은 동생이 직접 시범을 보여 주고 그림 자료와 아이디어까지 나눠준다. 내가 그림만 그리면 동생이 사진을 찍어 보정을 해주고 엽서 제작도 도와준다. 동생 덕분에 경주에 있는 아름다운 ‘카페 어제’에서 나의 작은 그림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운도 누렸다. 나 혼자였다면 그런 기회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카페 어제에서의 전시

동생 덕을 보는 만큼, 동생의 그림을 오래 지켜본 나는 내 그림이 부족하게만 보인다. 미술을 전공하고 일생의 반 이상 그림에 열중하며 살아온 동생을 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종이접기를 배운 어린아이가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추지 못한 제 작품과 깔끔하게 완성된 선생님의 작품을 번갈아보며 좌절하듯이 근사하게 완성된 수채화 앞에서 나는 자꾸 주눅이 들곤 했다.


그러니까 '창작의 희열'이라는 주제에 내 이름을 써넣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창작' 정도는 오케이, 내가 그림을 그리니까 괜찮다. 그런데 희열이라니? ‘희열은’ 큰 단어다. 희열이라고 말하려면 더 대단해야 하지 않나?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거창한 감정, 자신이 만들어내는 음률에 무아지경으로 몰두한 연주자라든지, 자기 머리에서 풀려나오는 이야기에 홀린 듯이 글을 쓰는 작가가 느낄 법한 감정 아닌가?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희열’을 느낄까?

동생과 나의 그림테이블

배우 배종옥이 나오던 옛날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아시는가? 소방서에서 일하는 종옥은 유능한 구급 계장이고, 매사 정확하게 당당한 대사를 날리는 여성이다. 민아에게는 훌륭한 엄마, 부하들에게는 따뜻한 상사, 홍렬에게는 지극한 사랑인 종옥. 그러나 시트콤의 캐릭터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우스꽝스러운 면모가 있는데, 이름하여 ‘허세 퀸 종옥’이다.


‘언제나 친절하고 활기찬 계장님’이라는 오중의 해설로 시작하는 229화에서 종옥이 공수표를 날리고 망친 일들의 목록은 이러하다. 우스꽝스러운 오중의 앞머리 파마, 궁중요리를 차려준다고 굳이 집으로 남편 친구들을 초대하고 내놓은 일명 궁중식 만둣국, 초등학생이 처음 연필 데생을 배워 그린 것보다도 못한 직장 후배의 초상화. 가장 먼저 종옥의 근자감에 당한 오중의 설명이 이어진다.

‘타고난 천성인지 계장님은 모든 일을 참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감 있는 태도는 상대를 엄청나게 기대하게 한다. 일단 큰소리를 친다. 잘 안되면 안면몰수, 배 째란 식. 계장님은 늘 자기 능력의 최대치만 생각하는 사람! 우리는 그걸 몰랐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일을 어렵게 생각하고, 자기 능력의 최저치부터 고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이 아무리 내 그림을 칭찬해도 좀체 쭈그러진 어깨가 펴지지 않았다. 진심 어린 칭찬과 감탄마저도 자신감이 부족한 나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으레 해주는 다정한 말이라고 여겼다. 나는 언제나 내 결과물에 비판적이고 깐깐한 평가자였다. 나뿐만 아니라 남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 "나 이거 잘한다! 나 봐!"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민망하고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만큼 정확하게 들어맞는 속담도 없으니까. 가슴이 쪼그라들었을 때의 나는 ‘그림을 그리는 나’가 종옥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난다.


나는 펜과 수채물감으로 꽃과 식물, 친구와 가족,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들을 그린다. 그리기에 집중하는 동안은 머릿속 소음들의 음량이 줄어들어 감정이 평온함에 가까워진다. 그 감각을 찾은 후에는 손에서 뜨개질감을 놓치지 않는 할머니처럼 매일 그림 도구를 들고 다닌다. 친구와 아침 운동을 마치고 카페에 가면 그림을 그린다. 여름에는 엽서 제작을 위해 그림의 크기를 키웠다가 요즘은 손바닥 만 한 드로잉북에 펜으로 그림일기를 그린다. 어제 본 앙증맞은 단풍잎, 좋아하는 색감의 옷을 입은 딸, 앞에 놓인 커피잔과 빵, 좋았던 책의 표지까지, 좁은 페이지를 작은 그림으로 가득 채운다. 운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한 장을 다 채우고, 시간이 부족하면 저녁이나 밤에 완성한다. 웬만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인스타에 그림을 올리려고 노력한다.

그림일기

눈을 부릅뜨고 건재함을 과시하는 내 마음의 검열관이 그림을 지적하는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침내 내 그림을 좋아하게 된 나는 꿋꿋하게 그림을 그린다. 선이 삐뚤어지거나 색이 지저분해져도 대충 수습할 수 있다. 때로 망친 종이를 찢어버리지만 크게 속상하지 않다. 안 그려지는 건 넘어가고 잘 그릴 수 있는 자료를 다시 찾는다. 이제는 내 그림을 칭찬하는 동생의 말에 ‘진짜 좀 잘 그린 것 같아!’라고 맞장구를 친다. 내 그림이 그만큼 늘기도 했지만, 그보다 내 그림만의 고유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화사하고 선명한 색감의 자연물과 어찌 되었든 일단은 귀여운 인물과 풍성한 소재가 내 그림의 매력이다.


종옥의 대책 없는 자신감은 끝 간 데가 없었다. 이웃 소방서와 연합한 단합대회에서 요들송을 부르겠다고 나서서는 우렁차게 요들송을 부른다. 요르레이 요를레이 요르레이히에 이히리에!! 또박또박 발음하는 생목소리를 들으며 종옥에게 민망함을 넘어선 애정을 느낀다. 듣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지만 종옥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 노래가 아무렴 어떠냐!’ 오히려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가 위풍당당하다.


이제 나도 말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조만간 또 ‘귀여운 무언가’를 그려주는 날을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그림일기를 그리는 날도 만들어야겠다. 그릴 거리를 찾느라 주변을 찬찬히 살피며 걷는 시간과 함께 나의 그림일기가 쌓여간다. 작은 페이지에 더 작은 그림을 조각조각 완성해 나가는 순간의 만족감이 좋다. 마주 앉은 사람이 그림일기 주인공이 되면 기뻐해서 뿌듯하다. 때때로 커피잔에 붓을 담글 뻔하고 깔깔 웃기도 하면서 놀 듯이 색칠하면 즐겁다. 덜 마른 물감을 후후 불어서 완성한 페이지를 보는 순간에는 ‘희열’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같다.

공들인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