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초의 구급대원(2)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4)

by 소방관아빠 무스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사라언니의 행복일기')


어제는 퇴근길에 엄마가 신장투석을 받으시는 병원에 들러 엄마를 모시고 왔다. 엄마는 매주 화, 목, 토요일오전 8시부터 11시 30분까지 B병원에서 신장투석을 받으시고 있다. 아침에는 엄마 혼자 택시 타고 병원에 가시고 오전 9시에 소방서에서 퇴근한 내가 11시 반까지 병원에서 기다리다 모시고 온 것이다.


몇 달 전에 욕실에서 넘어지면서 허리에 생긴 압박골절이 요즘 조금 나아서 그나마 지팡이에 의지해서 택시를 타실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아침에는 엄마가 혼자 병원에 가시고 마칠 때는 누나나 내가 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오는 걸로 정리가 된 것이었다.


집에 엄마를 모시고 와서 점심을 차렸다. 된장국과 계란 프라이로 조촐한 점심 식탁이 차려졌다. 신장투석을 하고 있는 엄마는 자극적인 음식은 물론이고 고기나 야채도 마음대로 드실 수 없다. 된장국에 계란프라이야 말로 엄마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만찬인 것이다. 그래도 이만큼 나아서 혼자서 택시라도 타게 된 게 어디냐고 엄마는 된장국을 입에 떠 넣으며 말했다.


'그래요, 여기서 더 아프지만 마세요...'


난 이루어지지 않을 바램임을 알면서도 엄마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마도 엄마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질 것이다. 휠체어를 타야 할지도 모르고 나중에는 누워 지내실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이렇게 내 차로 모시고 와서 함께 점심을 먹던 날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이 정도 상태를 유지하기만 바랄 뿐이다.


"그런데 너 이게 뭐야?"


엄마는 언제 봤는지 내 팔에 난 상처를 보고 물었다. 며칠 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면서 왼쪽 팔꿈치에 찰과상을 입었다. 애들이 바르는 후시딘 연고를 발라놨는데 그걸 보더니 또 애 취급이다.


"어휴, 살갗이 다 까졌구나, 있어봐라, 그게 어디 있더라?"


엄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일본어가 잔뜩 적힌 안티프라민(?) 통 같은 걸 갖고 오셨다.


"이거 뭐야?"


"가정상비약(?)이다."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가정상비약이란 말을 했다.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방에서 TV를 너무 많이 보셨나? 쓸데없이 어휘력이 많이 느신 것 같다. 일단 안티프라민에 일본어가 적혀 있길래 손가락으로 푹 찍어 상처에 발라보았다. 설마 더 나빠지진 않겠지?


엄마는 어느새 또 가위와 붕대와 반창고를 찾아오셨다. 명색이 소방서 구급대원 출신인 내게 손수 붕대와 반창고를 발라주시겠단다.


"아, 괜찮아요, 안 발라요!"


단호한 내 말에 좀 기가 죽으셨는지


"그래도 반창고는 발라야지"


하셨다. 하지만 나는


"괜찮아요, 이렇게 내놔야 잘 아물지, 자꾸 싸매면 오히려 더 안 아물어요."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이후론 별말씀이 없으시다. 나이 오십에 이렇게 자전거를 타다 다쳐서 엄마와 반창고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다섯 살 때로 되돌아간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그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그때는 아미동 국수골목에서 내려와 초장동이란 곳에 정착(?)했을 때였다. 주인집에 세를 얻어서 단칸방과 거기 딸린 구멍가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주인집이 가장 안쪽에 있었고 그다음 우리 집, 아니 우리 네 식구가 사는 방이 있었다. 그다음엔 연탄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었고 부엌을 지나면 구멍가게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그리고 부엌에서 계단을 10개쯤 올라가면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다락방이 있었다. 다락방은 우리 집의 창고 겸 누나와 나의 공부방으로 썼는데 그날 아침에도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가 그 다락방에서 책가방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다섯 개씩 지그재그로 된 계단이 그날따라 왜 그리 높아 보였을까? 잠이 덜 깨서 그랬는지 갑자기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계단 맨 꼭대기에서 난 발을 헛디뎠고 10개의 계단참을 데구르르 굴러 결국 도착한 곳은 시뻘건 연탄불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는 아궁이었다. 머리가 그곳에 처박히기 전에 난 손을 뻗었는데 그곳이 정확히 연탄불 위였다.


'앗! 뜨거!!!!!~'


이런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가게에 있던 엄마는 어느새 슈퍼맨처럼 내게로 와서 내 손을 연탄불에서 빼냈고(엄마 특유의 촉이 왔던 것일까?) 또 어느새 가게로 가서 소주 한 병을 들고 왔다. 내가 뜨거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병따개로 소주병을 땄고(참고로 우리 엄마는 얼굴이 빨개져서 본인의 의지로는 술을 한잔도 못하는 사람이다, 당시는 장사를 하신 지 얼마 안되어 병따개로 병을 딸 때마다 어려워했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처럼 돌려따는 병마개는 아예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능숙하게 소주병을 따는 것을 그 이전이나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소주를 대접에 콸콸콸 붓더니 내 오른손을 거기다 담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뭐라 말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이쯤에서 한번 울어줘야 할 것 같긴 한데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어설프게 울면 엄마의 뒤통수 스매싱이 한번 날아올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결국 내 손은 소주 속에서 점차 온도가 낮아졌고 난 별다른 화상을 입지 않아 그날 학교에 등교도 무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도 그러고 나서도 별 말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때가 생각나서 밥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도 물론 44년 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그날 알았어?"


"뭘 말이냐?"


"그날 왜 내가 연탄불에 손 데인 그날 말이야, 내가 손 데일 줄 알고 있었냐고?"


"그래, 가게문을 열고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 그래서 직감적으로 네가 다락에서 떨어지는 걸 알았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때였지만 그 계단과 아궁이가 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거든, 그래서 거기에 떨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얼른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네가 거기에 손을 넣고 있지 뭐야."


"그래서? 불에 손을 데면 소주에 담그라는 건 어디서 들었어?"


"왜, 옛날에는 뜨거운 거에 데면 소주에 담그라는 말이 있었어, 한 번도 그렇게 해 보진 않았지만 네가 아궁이에 손을 넣고 있는 걸 보니 갑자기 소주를 가져다 그 안에 네 손을 담그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뭐야, 그 이후론 나도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 때 엄마의 응급처치가 옳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외견상, 기능상 아무런 문제 없이 오른손을 사용하고 있으니 엄마의 민간요법이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얇은 고무공 같은 초등학교 1학년 짜리의 손이 이글거리는 아궁이의 연탄 위에 놓였다가 아무런 이상 없이 돌아왔다는 것은 엄마의 민간요법이 맞았거나, 아니면 아무런 이상 없기를 바라는 엄마의 바램이 내 손의 화상을 기적적으로 식혀주었던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둘 다든가~


이렇게 81세 엄마와 51세 아들의 점심시간과 대화가 흘러갔다. 나는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니지만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어쩌면 슈퍼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날 내가 다락방에서 떨어지는 소리를 놀라운 청력으로 듣고 빛의 속도로 이동해서 평소에는 딸 수 없었던 병뚜껑을 괴력(?)으로 따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평소 생각해 두었던 프로토콜대로 응급처치를 능숙하게 해내는, 슈퍼맨이자 내 인생 최초의 구급대원인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그 슈퍼 구급대원 덕분에 내 삶은 그럭저럭 여기까지 흘러온 것 같다. 이제는 입장이 뒤바뀌어 그 슈퍼 구급대원이 내 보살핌을 받을 때도 있지만. 하지만 힘을 내요, 슈퍼 구급대원! 이제는 내가 당신을 지켜 드릴게요!


https://youtu.be/IBrWJ7RH-4E

(울엄마가 넘나 좋아하는 또 하나의 히어로, 미스터 트롯의 임영웅으로 마무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