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38)
다음날 아침, 여수의 아침바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엊저녁 석양이 석류처럼 붉게 타는 농익은 붉은빛이라면, 오늘 아침 햇살은 은은한 오렌지빛으로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준비해 간 영화(엄마, 아빠가 데이트하던 시절에 같이 본 영화 '너는 내 운명'을 숙소에 설치된 프로젝트 빔으로 같이 보자고 해서 그것을 봄~)를 보느라 많이 자지는 못했지만 여수의 아침은 피곤을 잊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다웠다.
아침은 대충 어제 남은 음식들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해결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를 나섰다. 여수에 온 김에 들러보아야 할 곳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둘러볼 곳은 트릭아트 미술관(?)이었다. 거기에 가면 재밌는 사진들을 찍을 수 있다고 아이들이 계획한 곳이었다.
아이들은 가상현실(?)의 공간에서 나오기라도 한 양, 포즈를 취했고 아내와 나는 서로 질세라 셔터를 눌러댔다. 언니들의 모습을 순식간에 학습한 막둥이도 트릭아트의 매력에 빠져 제대로 포즈를 취했다.
원래는 트릭아트 미술관을 보고 야외 액티비티로 짚라인과 루지도 타보려고 했으나 바깥에 나가면 날씨가 푹푹 쪘기 때문에 우리는 실내에 있는 트릭아트 미술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트릭아트 미술관을 겨우 빠져나와 우리 가족이 향한 곳은 여수의 밥도둑 돌게장이 맛있다는 한 식당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 지역의 맛난 음식을 먹어보지 않으면 서운한 것은 당연한 얘기였다. 그 식당은 이미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는지 주차할 자리도 없었다. 주위를 뺑뺑 돌다 거의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걸어가려니 막둥이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했나 보다. 내가 들쳐업고 100m를 걸어가노라니 뜨거운 열기가 훅훅 끼쳐왔다. 근 10년, 15년 전의 데쟈뷰가 되살아났다. 그때도 이랬는데... 그 시절에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휴가를 갔던 곳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 녀석처럼 조그맣던 언니들은 이제 내가 들쳐업지 못할 만큼 자라 있었다. 그리고 막둥이... 막둥이의 무게가 업기에 딱 좋았다. 조금 있으면 이 녀석도 내가 업지 못할 만큼 자라 있겠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뙤약볕 아래를 걸어 식당에 도착했는데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된단다. 오 마이 갓~
잠든 막둥이를 들쳐업고 한두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시 100m를 걸어 차로 되돌아왔다. 뜨거워진 차로 다시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식당이 하나 보였다. 처음 식당보다 허름하긴 했지만 메뉴는 그 식당과 마찬가지로 돌게장과 생선구이, 갈치조림이었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왔다. 일단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주문을 하고 창밖을 바라보니 시원한 여수의 바다가 보였다.
'아, 케이블카가 있는 걸 보니 저기가 여수 오동도로구나~'
내 입에서는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동도의 동백꽃은 익히 얘기를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그곳을 두고도 가지를 못하는구나, 동백꽃을 보러 겨울에 한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오늘처럼 이렇게 덥지는 않겠지... 아이는 여전히 내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여수의 진미라는 돌게장의 감칠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다시 부산으로 운전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올해 여름휴가는 뜨겁고도 시원한 여수바다로 기억될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