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방서에서 맡아보지 못한 보직이 딱 두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기관원(소방차 운전)과 상황요원(119 상황실 근무)이다. 소방서에 처음 들어올 때 맡은 보직이 경방(화재 진압)대원이었고 그러다 응급 구조사 자격증을 따서 한 십 년 정도 구급대원으로 근무했으며 그 후 내근직(소방서 행정파트)으로 옮겨가면서 3~4년 정도 소방검사 업무를 했었고 2012년 여름에는 부산 송도 해수욕장에서 수상구조대원으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소방정(불 끄는 소방선박)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위의 두 가지만 빼고는 소방서에서의 거의 모든 보직을 거쳤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내가 집에서의 보직을 말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패밀리카 드라이버라고 할 수 있다. 소방서에서는 소방차 핸들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나지만 집에서는 주구장창(?) 자동차 핸들을 잡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비번날 아빠의 드라이브는 첫째의 등교로부터 시작된다.
"첫째야, 안 일어나나? 학교 가야지..."
우리 집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첫째를 깨우는 엄마의 외침으로 시작된다. 그 전날 첫째가 몇 시에 집에 들어왔는지 사실 난 잘 모른다. 첫째는 내가 잠드는 자정을 훨씬 넘겨서 들어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스카(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새벽에 온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음날 학교 갈 때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엄마의 외침을 몇 번이나 듣고서야 첫째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식탁에 앉는다. 나 역시 마눌이 첫째를 깨우는 외침에 잠이 깨어 이불속에서 살짝 눈을 떠서 시계를 확인한다. 아침 7시다. 3교대로 돌아가는 소방관 생활에서 늦잠을 잘 수 있는 기회는 오늘 같은 비번날 아침밖에 없지만 그날마저도 늦잠을 자기는 쉽지 않다. 아침마다 첫째가 아침을 제대로 먹고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침을 왜 그것밖에 못 먹어?, 더 먹고 가라!"
는 엄마의 한마디에
"안돼, 늦었어, 지금 가도 지각이야."
첫째는 벽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한다.
"버스 타고 가지 말고 아빠보고 한바리(?) 해 달라고 해, 그리고 밥 좀 더 먹고 가!"
이렇게 말하며 두 모녀의 4개의 눈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이불속에 있는 나에게 모아진다. 젠장~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그냥 일어날 수밖에...
"아빠, 그렇게 해 줄 거야?"
"그래, 우리 공주님이 그렇게 하라면 해야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일어나 앉아 하품을 하면서 역시 덜 깬 눈을 껌벅이며 마눌과 첫째를 번갈아 바라본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내 인생에서 늦잠이란 단어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첫째의 얼굴이 환해지며 엄마가 만들어 놓은 계란찜으로 밥을 몇 숟갈 더 떠먹는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옷을 입는다. 첫째가 가방을 메고 나오면 우리는 마눌의 배웅을 받으며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내 ㅋ5를 타고 시동을 건다.
"아빠, 어제 우리 시험을 쳤는데, 수학이 어땠고, 영어가 어땠고, 친구 누구는 이렇고 선생님은 저렇고..."
조수석에 앉은 첫째의 수다가 시작된다. 그렇게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역시 여고생의 입은 잠에서 빨리 깨는가 보다. 나도 첫째의 수다를 듣고 있으니 슬며시 잠이 깨기 시작한다. 출근 차량으로 꽉 막힌 도로에서도 첫째의 수다는 멈출 줄 모른다. 버스에서 시달리며 가다가 오늘은 아빠차로 등교하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아빠, 교문까지 가면 선생님이 지키고 있으니까, 저기서 세워 줘"
아무렵쇼, 누구 명이라고 거역하겠나이까, 세워 드립죠~ 교문 30미터 앞에서 차를 세운다.
"아빠, 고마워, 잘 가!"
첫째가 내리면서 건네는 한마디에 그나마 남아 있던 졸음과 피곤이 한순간에 몰려간다. 아~, 이래서 다들 딸, 딸 하는가 보다. 다시 집으로 가면 막둥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하고 10시가 되면 엄니를 모시고 혈액투석 병원에 갔다가 와야 한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면 다시 막둥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도 오늘의 해는 힘차게 떠오를 것이고 나도 나의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내 차는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서 부산시내를 뽈뽈(?)거리며 돌아다닐 것이다. 우리 세 공주님의 길도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그 목적지까지 내가 에스코트 해 줘야 할 것 같다. 거기가 정확히 어디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목적지가 나오면 내 차에서 내리면서 '아빠, 그동안 고마웠어, 잘가~'라고 해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마저 남은 나의 길을 열심히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집의 패밀리 드라이버는 바로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