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의 어린이날(feat. 폭우)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34)

by 소방관아빠 무스

며칠 전 어린이날에는 마눌과 세 딸과 함께 고성, 통영등을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무슨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서였는지 '그까이꺼 대~충 오다가 말겠지'하고 생각한 것이 올해 어린이날을 우중 드라이브로 기억되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 경남 고성에 있는 공룡 박물관을 향해 출발할 때만 해도 긍정, 낙관이 섞인 데다가 가벼운 설레임으로 시작한 어린이날 여행이었다.


'그래, 비 좀 오면 어때, 봄비가 와봐야 얼마나 오겠어, 시원하고 좋지 뭐...'


'비가 오니 오늘 같은 어린이날도 차가 별로 안 밀리네, 정말 탁월한 선택이야...ㅎ'


우리 부부는 겨우 몇 시간 후의 일도 예측하지 못한 채 자동차 안에서 이렇게 설레발을 쳤었다. 나도 어릴 적 봤던 '말괄량이 삐삐'가 비오는 날 꽃에 물 주며(?) 신나게 노는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 놀러 가는 것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폈다. 어쩌면 어릴 적 비오는 날에 우비 입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기억이 떠올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폭우를 뚫고 고성에 도착해서 찜해놓은 키즈카페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런 우리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마침 비는 소강상태에 있었고 차에서 얼른 내려 들어간 키즈카페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주인장 내외는 어린이날 마수걸이 손님인 우리를 정성스레(?) 맞아주었고 우리는 따뜻하고 아늑한 카페 분위기와 정갈한 브런치, 그리고 막둥이만을 위해 준비된 듯한 실내 놀이터를 보고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첫째와 둘째가 막둥이를 데리고 실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우리 부부는 우아하게(?) 브런치를 맛보고 커피 향을 음미하며 '이런 어린이날도 있구나'라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난 실내 놀이터 한구석에서 전날 야간 근무와 장거리 운전으로 찌든 몸과 영혼을 누일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일박 이일동안 이런 몽환(?)적인 어린이날 일정이 계속되기를 맘속으로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정오가 넘어가자 키즈카페에는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우리의 것인 줄만 알았던 실내놀이터와 카페 테이블을 점령하고 빗물을 튕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날에 어디 갈 데는 없고 결국은 키즈카페와 실내 놀이터로 모여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까마귀와 까치가 모여들면 백로는 피할 수밖에 없는 법, 우리는 미련 없이 키즈카페를 나섰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퍼붓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카드가 있었다. 공룡박물관, 그곳이라면 막둥이를 두세 시간 정도는 재밌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과학의 조기교육이란 측면에서 또 얼마나 유익할까, 더구나 이런 폭우를 피해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구조라니, 이런 멋진 여행경로를 생각한 마눌에게 다시금 고개가 조아려지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공룡박물관 가는 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말 공룡이 나올 정도로 우거진 숲길을 구비구비 돌아 찾아간 공룡박물관 주차장에서 계단과 실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착한 그곳은 영화 주라기 공원을 떠올리게 하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비오는 날 막둥이를 위해 앙증맞은(?) 비옷과 장화를 사서 그걸 입혀 보려는 계획이었지만 그 비는 보기 좋을 만큼 그렇게 적당히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 난 폭우에 펄럭이는 우의와 장화를 신은 막둥이를 허리춤에 찬 채(?) 비에 젖어 미끄러운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비오는 언덕에 도착해서도 대형 공룡 모형을 보고 우는 막둥이를 달래느라 얼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비가 안 오는 맑은 날이었으면 막둥이가 좋아했으려나...


(빗속에서 악전고투하던 주라기 공원 1을 떠올리게 했던 이번 어린이날 여행)


한바탕 몰아친 폭우에 젖은 머리를 매만지는 것도 잠시, 실내로 들어온 우리는 다시 쥐라기와 백악기의 공룡 시대로 탐험을 떠나게 되었다. 숱하게 보아온 티라노의 머리뼈를 보는 것으로 시작해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 사우르스, 스테고사우르스... 등등등 거대한 공룡들이 비맞아 쫄고 있는(?) 우리 가족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던 사이에 막둥이는 울음을 그쳤다가 다시 울었고 다시 울었다가 다시 그쳤다.(마치 그날의 폭우처럼...)


(공룡박물관에서 막둥이와 언뉘야들~^^;;)


겨우 공룡시대의 타임캡슐을 빠져나왔을 때 비는 잠시 그쳐 있었고 우리는 공룡빵(?)을 판다는 근처의 카페로 홀린 듯이 들어섰다. 울음을 그친 막둥이는 배가 고팠는지 공룡빵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시 내리는 비를 보며 잠시 비멍~을 때릴 수가 있었다. 이제 공룡이고 뭐고 다 귀찮고 예약해 놓은 숙소 생각이 간절했다. 마눌과 아이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마눌에 통영에 예약해 놓았다는 펜션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산길과 바닷길을 돌고 돌아 찾아간 우리의 펜션은 홈피에서 보던 대로 바닷가에 멋진 바다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차에서 짐도 꺼내지 못할 만큼 부는 바닷바람과 폭우에 우리는 그 바다뷰를 감상할 여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차에서 몸만 빠져나와 3층인 우리의 숙소로 가는 동안에 옷은 비에 쫄딱 젖어 버렸다. 비 맞은 새앙쥐 꼴이 되어 언제나 비가 그쳐 짐을 가져오나 하고 밖을 내다보면서 한두 시간 숙소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겨우 비가 잦아들어 짐을 차에서 꺼내올 수 있었지만 비 때문에 베란다에서 불을 피울 수 없었기 때문에 호기롭게 가져갔던 삼겹살 두팩중 한 팩만 후라이팬에 구워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식사는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빗소리를 들으며 삼겹살에 맥주 한 캔으로 아이들과 건배(물론 아이들은 사이다와 뽀로로 음료수로~)한 것도 괜찮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다 같이 식사를 한 것도 괜찮았던 것 같다. 하지만 tv자막에 폭우로 지반이 연약해져서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위험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서둘러 대피하라는 메시지가 뜰 때는 나름 긴장했던 것 같다. 우리가 예약한 펜션이 앞은 바다였지만 뒤에는 가파른 산이었던 것을 입실할 때 미리 봐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어디선가 들리는 '퍽' '퍽'하는 소리는 더욱 나를 긴장하게 했다. 만약 펜션 뒤쪽의 산이 무너지게 된다면 세 딸과 마눌을 어떻게 대피시킬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숙면이 아닌 불면의 밤을 지새야 했다.


(좌-바다뷰가 좋았던 통영의 까페, 우-막둥이가 해양수산과학관에서 제일 좋아했던 낚시놀이)


아침이 되자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했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마눌이 짜놓은 일정에는 통영에 있는 해양수산과학관과 박경리 문학관, 그리고 바다뷰가 좋은(이쯤 되니 '그놈의 바다뷰'라는 소리가 내 입을 간지럽혔다.) 카페가 있었다. 나는 박경리 문학관을 개인적으로 들르고 싶었지만 막둥이에게는 어려울 거라는 세 여자의 의견이 합치되어 박경리 문학관은 우리의 리스트에서 광탈(탈광인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빗속을 뚫고 해양수산과학관과 전망 좋은 카페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일박 이일의 어린이날 우중 드라이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려니 그날의 우중 드라이브가 떠오른다. 어린이날 이렇게 폭우 수준의 비가 쏟아지다니... 내 기억으로 어린이날 비가 온 것은 내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한번 비가 많이 와서 어디 나가지도 못해서 굉장히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에 남을 만큼 많은 비가 온 적은 없었다.


https://youtu.be/qM9nUCb2H84

(이번 일기예보는 거의 정확히 들어맞은 듯~)


이렇게 어린이날에 비가 많이 온 걸 보니 이상기후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어린이날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줬음 했는데 이상 기후란 놈이 그걸 알게 뭐란 말인가? 어른들이 뿌린 지구 온난화의 씨앗을 우리 후손들이 이상기후라는 이름으로 거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날씨가 화창하고 온화하고 온갖 꽃들이 피어 나들이하기 좋아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로 제정해 두신 이 날까지도 이상기후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이번 어린이날은 이렇게 맛보기(?)만 봤지만 나중에는 이상기후란 놈이 더욱더 강해져서 5월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거나, 초봄에는 계속 산불이 난다거나, 여름에는 기습폭우와 산사태로 지구에는 더욱 많은 재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른들은 지구 둘레를 유리나 비닐 같은 것으로 둘러 쳐서 아예 날씨와 기후, 온도와 습도를 자신들이 스스로 관리하려고 할 지 모른다. 마치 아파트 안에 시스템 에어컨처럼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을 테고 그렇게 관리하는 것조차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결국은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실행에 옮기겠지, 예정된 시나리오다. 또한 그때가 되면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과 황폐한 지구에 남아 이상기후와 재난을 온몸으로 받아낼 사람들이 나뉘겠지...-좀 섬찟하지만 어린이날을 아쉽게 보내면서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상과학 만화(이게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같은 생각을 한번 해 보았다. 하지만 이게 정말로 현실이 되면 안 될 텐데...-


비록 어린이날에 하는 공상과학 만화 같은 얘기지만 그때가 되면 난 이미 지구에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행성으로 떠나든, 그걸 여기서 받아내든, 우리 막둥이와 같은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날에 우의와 장화를 신고 공룡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은 막둥이가 귀여우면서도 짠하다. 그들이 쥐라기와 백악기를 거쳐 대멸종한 공룡들처럼 이상기후에 멸종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어린이날 치고는 정말 심각한 멘트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남기게 되어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막둥아.


"하지만 그들은 답을 찾을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