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여름휴가(feat.폭염)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37)

by 소방관아빠 무스

드디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아니, 드디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 건가?) 막둥이의 어린이집도 방학을 하고 첫째와 둘째의 학원과 학교도 방학을 하고 마눌의 직장도 휴가기간인 7말 8초의 어느날, 우리 가족도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의 의견을 거의 100% 반영해서 고른 여행지는 '여수 밤바다'로 유명한 여수였다.


https://youtu.be/gltP9SDdgXA


장범준의 노래로 유명한 여수 밤바다를 아이들도 한번 가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와이프도 여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풀빌라를 예약하겠다고 말했다. 그 풀빌라 가격을 듣고 나는 '그 가격이면 차라리...'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으나 다년간 여름휴가에서 반복 학습으로 저장된 기억이 반사신경을 작동시켜 다행히 재빨리 손으로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다.


"그래, 좋지, 여수, 여수 밤바다, 좋치~ 빨리 예약하자..."


어느새 내 입에서는 이런 마음에도 없는 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세 자매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와이프와 아이들의 의견은 100% 존중해(?) 주는 일이야말로 내가 살고, 우리 가족이 사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다년간의 시행착오(?)로 체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장범준이 부르는 '여수 밤바다'에 가는 걸로 들떠 있는 아이들에게도


"장범준은 그 노래를 봄에 만든 게 틀림없어, 봄에는 바다가 되게 낭만적이거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꽃잎도 날리고... 딱 술 한잔하고 나면 저런 노래 한곡 순식간에 나올껄? 그런데 여수 밤바다를 여름에 가면 덧정 없어, 생선 비린내 나지, 사람 많지, 더워서 어디 걸어 다니지도 못할걸?"


이런 꼰대발언을 시전 하려다가 참았다. 백날 얘기해 주면 뭐 하나, 본인들이 스스로 체험하고 스스로 느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빠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 주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은 아빠가 꼰대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아빠는 말이 안 통해~'라며 자기들의 방문과 입을 걸어 닫아버린다. 그래서


"그래, 여수 밤바다 가자, 거기서 맛난 것도 먹고..."


하면서 속 쓰리지만 웃으며 카드로 풀빌라 가격을 결제해 주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올여름 휴가는 좀 편하게 가보자...


그런데 앞서 우리 가족이 떠났던 모든 여행이 그러했듯이 이번 여행도 그렇게 스무스(?)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여행 출발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한 번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우월한 유전자(?) 우리 둘째가 A형 독감에 걸린 것이다. 거기다 며칠 후에는 집사람과 막둥이도 고열이 나면서 목감기에 걸려버린 것이었다. 이쯤 되니 우리 집의 선장인 나는 '여름휴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어디 여행을 가겠나, 그냥 취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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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감기에 걸리고서도 손수 자신의 여행가방을 싸는 우리 막둥이~^^;;)


하지만 마눌이 숙소에 문의해 본 결과, 전액 환불이 안된다고 했다. 오호 통재라... 그래서 결국 올해 여름 휴가도 감기약을 달고 폭염과 함께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 날씨는 좋았다, 다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 탈이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뜨거운 날씨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좁은 승용차(ㅋ~5) 뒷좌석에서 첫째와 둘째는 계속 막둥이의 카시트를 떼면 안 되냐고 물었다. 거의 뒷좌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카시트를 떼면 둘이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여유 있게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와이프는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는 카시트를 가지고 엄마와 실랑이하고, 막둥이는 목감기에 걸린 데다 뜨거운 햇살을 바로 받아 괴로운지 계속 칭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부산에서 여수까지의 189km의 거리를 혼자 운전했다. 정말 여수 밤바다에는 가야 하는 건지 의문이 도돌이표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아이들과 마눌이 지쳐 잠들어 모두 조용해진 다음, 우리 차는 목적지인 풀빌라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예약한 풀빌라는 쾌적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입실 시간이 3시인데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 2시에 도착한 것이다.(나의 탁월한 운전실력 때문에?) 한 시간을 뜨거운 야외에서 기다리게 생긴 것이다. 마눌은 어디 다른 데 가서 한 시간을 때우고 오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뜨겁고 답답한 차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친 모습으로 풀빌라 입구에 서 있으니 그 바로 앞에 있는 인피니티 풀에서 사람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영복과 래시가드를 갖춰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튜브를 타고 비치볼을 튕기며 인피니티 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딴 세상 사람들 같았다. 우리 가족 모두는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였다.


'으앙!~'


누구보다도 그곳에서 놀고 싶어서였을까, 막둥이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뜨겁고 답답한 차 안에서 무려 3시간이나 달려왔건만, 눈앞에 있는 인피니티 풀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서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막둥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나도 좀 일찍 들어보내 주면 안 되냐고 따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둥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그곳의 사장님(?)쯤 되는 사람이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쑥덕거리니 직원이 우리 이름을 불렀다.


"***가족, 303호로 입실하시면 됩니다.~"


ADiwnxs9XK0.jpg (우리가 묵은 풀빌라의 인피니티 풀과 여수 바다-네이버 블로그 '책 읽는 세뇨라'펌)


휴~ 다행이었다. 이 뜨거운 곳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렸다면 막둥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모두 반쯤 익어버렸을 테고 나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 저 인피니티 풀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려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짐을 들고 우리 객실로 향했다. 3층에 있는 우리 객실은 와이프의 말대로 여수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뷰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아까 그 사람들이 놀던 인피니티 풀로 향했다. 거기서 첫째, 둘째와 나는 비치볼로 이것저것 놀이를 하고 막둥이는 엄마와 함께 대형 튜브를 타고 놀았다. 그래, 이렇게 더운데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뽕을 제대로 뽑아주겠어~ 우리 가족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이라도 한 것처럼 놀고 또 놀았다. 나중엔 막둥이가 지쳤는지 튜브를 타면서 졸았다. 그래서 막둥이는 먼저 엄마와 함께 객실로 들어가고 나서도 두 딸과 나는 저녁 석양이 질 때까지 놀았다.


하루종일 지구를 달구던 태양은 우리에게 세이 굿바이를 남기고 서쪽 바다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바닷물까지 온통 붉게 물들이며 사라져 갔다. 막둥이가 남기고 간 튜브를 타고 있던 첫째가 그 광경을 보면서 말했다.


JQLNAwYfwqb.jpg (객실에서 본 여수의 석양-네이버 블로그 '시원맘 육아일기' 펌)


"아, 행복하다~"


뭥미?,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라니, 해지는 걸 보면서 그렇게 행복해?, 난 아빠된 입장에서 첫째를 이렇게 불행(?)하게 키웠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첫째를 보면서 슬쩍 말을 걸었다.


"해 지는 거 보는 게 그렇게 행복해?"


"응, 하루 학원 안 가는 게 이렇게 행복할지 몰랐어."


이건 또 뭥미?, 학원에 안 가는 게 그렇게 행복할 일이야?, 그런데 첫째의 표정을 보니 정말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지는 석양을 받아서인지, 오면서 차 안에서 익어서인지(?) 첫째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첫째는 학교와 학원과 스터디 카페를 쳇바퀴 굴리듯 날마다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마음이 짠해왔다.


"하루만 학원 안 가도 이렇게 행복한데 나 그냥 자퇴할까?"


뭥~뭥~뭥~미... 순간 당황했지만 여기서 당황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하기야 요즘 주위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입시 경쟁에 자기 애를 내몰지 않고 학교 자퇴시키고 검정고시 치게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 행복하면 자퇴하고 검정고시 준비할래?, 그리고 너 좋아하는 마라탕 집이나 차릴래?"


말은 장난스럽게 했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정말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나도 거쳐오긴 했지만 꽃다운 십대 후반을 입시경쟁에 내몰려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항상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마라탕을 좋아하는 첫째는 자기가 다니는 여고 앞에 마라탕 집이 없다고, 하나 생기면 대박 날 거라는 말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아빠가 차려줄꺼야?"


"그래, 니가 원한다면 해주지 뭐~"


"돈은?, 돈은 어떻게 할 건데?"


"우리 아파트 담보대출 내지 뭐~"


난 석양이 질 때 바다에서 부는 바람처럼 쿨하게 말했다.


"대신에 너가 거기서 성공할려면 마라탕 고수한테 가서 배워야 해, 거기 고수한테서 더 배울 게 없을 정도로 실력을 쌓고 나면 니 가게를 열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담보대출 못 내게 할 테고 고수에게 배우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난 그냥 공부하는 게 낫겠다."


첫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몰랐던 우리 부녀의 대화는 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처럼 이렇게 시부지기(?) 끝나버렸다. 난 어쨌든 본인이 원한다면 그렇게 밀어줄(?) 용의가 있었다. 고등학교 3년 입시 지옥을 거쳐 원하는 대학과 과에 간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나오면 취직이 안돼서 편의점 알바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청춘들의 자화상이 아니던가, 그런 고등학교 학원비와 대학교 등록금, 그리고 자취방 월세와 용돈까지 생각한다면 일찍 자신만의 노하우를 배우게 해서 가게를 열어주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젊음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첫째는 공부를 택했고 자신의 인생이니 아빠인 내가 더는 강요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해는 져버렸고 정말 '여수 밤바다'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첫째와 둘째는 '여수 밤바다'를 더 즐기겠다고 하길래 나는 먼저 객실로 올라왔다.


객실에는 물놀이에 피곤했는지 막둥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집사람은 목감기가 심해졌는지 잔기침을 하고 있었다. 난 집사람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며 준비해 간 고기를 구워 맥주와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애들에게는 거리에서의 '여수 밤바다'가 어울렸지만 우리에겐 역시 테라스에서의 '여수 밤바다'가 어울렸다.


(분량이 긴 관계로 여수에서의 가족 여행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