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사진처럼 세 자매가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첫째는 학교와 학원을 거쳐 스터디 카페에 갔다가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온다. 11시 반에 잠드는 나는 아침에도 첫째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내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후다다닥 아침을 챙겨 먹고 나가기 때문이다. 잠결에 마눌이 첫째를 깨우는 소리와 마지막까지 침대에서 버티다 겨우 일어나서 엄마가 간단하게 만들어 준 아침을 먹고 '엘베 쫌 눌러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첫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소리를 듣고 깬 것일까? 셋째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에서 자고 있는 내게 걸어온다. 그리고는 '아빠!, 아침이야, 일어나!'라고 내 귀에 알람처럼 되풀이해 읊어댄다. 셋 중 가장 아침잠이 없는 셋째, 아침이니 일어나야 하고 일찍 일어나 심심하니 놀아줄 사람(바로 아빠! 당첨~)을 찾는 것이다. 셋째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면 나도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셋째는 공룡 인형들과 아기 인형들을 내 앞에 가지고 와서
"우리 티라노사우르스하고 트리케라톱스 말하고 놀자!"
(응~아빠랑 그거 뛰면 빵꾸(?) 나~^^;;)
라며 제법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한참을 공룡들의 대화로 이어가다 보면 마눌의 성화에 못 이겨 둘째도 일어난다. 우리 집에서 아마 얘가 가장 아침잠이 많은 것 같다. 일어나서도 잠이 채 깨지 않아 거실로 나와 소파에 다시 드러눕는다. 아침밥이 완벽히 준비되고 숟가락과 젓가락도 세팅되면 그제야 일어나서 반쯤 감긴 눈으로 젓가락질을 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저만할 때 우리 아버지가 내게 했듯이 정신 차리라고, 밥상 앞에서 뭐 하냐고, 호통 칠 수는 없다. 얼마 전부터 둘째도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둘째 역시 학교와 학원을 거쳐 독서실까지 갔다 오면 밤 열 시쯤 되는 것 같다. 오늘도 그런 일정을 소화할 걸 생각하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그리고 한창 사춘기인 둘째에게 큰소리쳐 봤자 남는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셋째와 인형놀이를 하면서 마눌이
"막둥이도 이제 밥 먹으러 와!"
라고 말해주길 기다릴 뿐이다. 그 말이 떨어지면 막둥이도 유아용 의자에 앉아서 얌전하게(?) 엄마와 아침밥을 먹을 테고 나는 잠시 화장실에 가서 대충 씻고 나와서 여유로운(?) 브랙퍼스트를 누리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가 나가고 엄마와 막둥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제각각 가고 나서야 내 비번날도 시작된다.
이러다 보니 다섯 식구가 한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아름다운(?) 모습이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주말에 애들이 학원을 일찍 마치면 겨우 어디 가서 저녁을 먹는 것이 전부다. 세 딸과 함께 여유롭게 무언가를 해본 지가 까마득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입시가 얼마나 힘든가? 약 30년 전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입시는 힘들었지만 애들을 안 낳는다는 지금도 똑같이 힘드니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거기다 얼마 전 대통령이 '수능 문제를 쉽게 내라' '킬러 문항을 없애라' 등등 말한 후부터 공부하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고 첫째는 밥상머리 앞에서 툴툴거린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 맞장구를 쳐주든 반론을 제기하든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시정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그래?, 그럼 이제 어떡하냐?"
라는 말로 퉁치는 수밖에 없다. 십년전 쯤 이런 말이 있었다. 자녀의 입시 승패를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는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아빠의 무관심'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부단히(?) 노력했건만 아쉽게도 이제는 입시의 방향이 바뀐 것 같다. 아빠도 '나 무관심합네~'하고 빠져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빠도 엄마와 힘을 합쳐 정보를 검색하고 뭔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조언 하나쯤은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난 이십 년간 줄기차게(?) 불만 끄다 보니 아이와의 대화에서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는 아빠가 된 것이다.
'그래, 이런 건 사람 불러야 돼!, 입시 컨설팅 있잖아, 그 좋은 걸 놔두고 왜 안 써? 이번 시험 끝나고 나면 첫째 데리고 돈 좀 들더라도 그런데 데리고 가 봐, 성적이 안되면 그런 걸 써서라도 좋은 대학 가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심정으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대답은 아내가 아닌 첫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난 그런 컨설팅하는 데 안 갈 거야, 내가 성적이 안되는데 거기 가서 뭐 해?, 내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면 그때 갈 거야!"
첫째가 그렇게 말하는데 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렴~"
그야말로 비틀즈의 명곡인 'let it be' 교육 철학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 놓아두라니...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그때부터,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 교육은 있는 사람들의 놀이터였다. 강남 8학군으로 이사 가고, 쪽집게 과외를 받고, 컨설팅을 받고... 그때부터 부잣집 애들과 가난한 집 애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개천을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꾸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30년 전 내가 그렇게 공부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게 생겼다. 그러니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가족과 함께 식사할 시간도 없는 것이다. 첫째에 이어 둘째, 막둥이도 그 길을 따르겠지, 대입이라는 험난한 산을 넘고 나면 또 취업이라는 산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의 대학생활도 아마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 또 머리를 싸매고 고 3이 아닌 대 4년의 시간을 보내겠지. 그리고 또 취업을 하고 나면 사회 초년생의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 청년들처럼 우리 애들도 취업을 하고서도 만족을 못해 이리저리 다른 곳을 찾아 헤멜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청춘을 허비하면서 말이다. 세 자매를 낳았지만 이 세상이 험하니 너희들이 알아서 잘 헤쳐가라는 말만 하기엔 부모로서 정말 낯이 따갑다.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처럼 콘크리트로 지어진 절벽을 기어올라 숲으로 가는 여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개구리들이 그곳이 절벽인 줄도 모르고 계속 떨어지겠지만 그들은 다시 도전하겠지. 그러니 세 딸들아, 험한 이 세상에서 건투를 빈다!, 너희 가는 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갓 불내슈~(God bless you)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