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27)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어김없이 개최되었다. 그토록 뜨거웠던 2002를 재현이라도 하려는 듯, 그로부터 20년 후에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은 아직도 날마다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다른 경기들도 흥미진진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한국의 태극전사가 나서는 경기에는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가 되는 것 같다. 며칠 동안 우리 집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 때 난 당번 근무였기 때문에 직장에서 동료들과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벌어진 가나전, 저녁 10시에 킥오프 했기 때문에 32개월인 우리 막둥이를 먼저 꿈나라로 보내야 했다. 저녁밥을 먹이고 나서 와이프가 서둘러 목욕을 시켜 막둥이를 안방으로 out 시켜 버렸다. -언젠가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며 응원할 테지만 지금은 네가 빨리 자 주는 게 가족들을 돕는 거란다~^^- 그리고 집사람이 언제 시켰는지도 모를 정도로 반박자 빠른 타이밍에 시킨 치킨 두 마리가 배달되었다. 치킨과 콜라를 앞에 놓고 우리 가족은 써라운드 입체 음향의 대형 tv가 아니라 거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았다. -와이프가 애들 공부에 좋지 않다며 tv를 우리 집 거실에서 out 시킨 것은 10년도 더 된 일이다. tv 없이도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무사히(?) 넘기며 자라준 우리 첫째와 둘째가 고맙고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지독한 테돌이(?)인 나 스스로에게도 어떻게 그 모진? 시절을 넘어왔느냐고 감탄할 때가 있다.(역쉬 마눌님은 위대하시다~)- 집사람과 나, 그리고 둘째의 월드컵 2차전, 가나전의 관전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12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는 첫째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다~그깟 공부가 뭣이라고~ㅋ)
지난번 우루과이전의 팽팽한 접전을 기억하며 응원을 시작했는데 이게 웬 걸~ 어처구니없이 너무나 쉽게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상대편에서 프리킥을 올린 것이 우리 문전 앞에 떨어졌는데 그 앞에서 혼전 중에 가나 선수가 차 넣은 것이었다.
"이거 와 이라노?, 저기서 걷어내야 할 거 아이가~"
나는 천불이 나는 듯한 뱃속에 콜라를 들이키면서 말했다.
"야들이(이 애들이) 지난번보다 몬하네, 동작들이 굼뜨네~벌써 다리에 힘이 풀렸나?"
와이프가 닭다리를 하나 뜯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와이프도 나 못지않은 열성 축구광이라서(오로지 월드컵 때만~^^;;) 슬슬 열받는 것이 보였다. 하기야 2002년 월드컵이 없었더라면 난 와이프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미혼이던 와이프가 우리 교회에 다니던 후배에게서 교회에서 월드컵 응원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북과 꽹과리(?)를 메고 와서 같이 응원을 하다가 그 후배와 같이 우리 교회에 다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도 와이프를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런 스토리가 있었다.~그럼 2002 월드컵이 우리 부부를 이어준 사랑의 오작교?~ㅋ-
그렇게 타는 속을 식히느라 콜라를 들이키며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10여분 후에 또다시 우리가 실점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센터링에 안정적으로 헤딩까지 허용한 골이었다. 너무 허무했다. 전반에만 2 실점, 이러다간 4-0으로 완패할 것만 같은 느낌마저 스멀스멀 들었다.
"쟈들이(저 애들이) 뭐 하고 있노?, 사람을 잡아야지!, 공만 따라가면 되나?!"
나는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어디 조기축구회 감독이나 군대 축구할 때 왕고참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집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닭다리를 치킨 박스에 내팽개치더니
"으이구!~ 치킨 맛이 다 떨어졌다, 치킨 값이 아깝다!, 난 그냥 잘란다!"
하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난
'여보, 그래도 경기는 끝까지 봐야지!'
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와이프가 너무 씩씩거리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남은 전반전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하프타임도 끝났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이강인이 교체 선수로 들어오고 나서 경기의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답답하기만 하던 공격의 물꼬가 트이고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유효슈팅의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강인의 센터링을 받은 조규성의 헤딩슛!~골인!^^, 추격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골이었다.
나는 둘째와 두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조규성의 골은 공의 방향만 돌려놓는 감각적인 헤딩슛이었다.
"조규성?, 누구야? 처음 들어 보는데?"
둘째는 조규성 선수에 관심을 보였다.
"조규성 몰라?, 일본에는 난리 났잖아."
"왜?"
"잘 생겼다고~"
"축구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됐지, 잘 생긴 게 무슨 상관이람?~"
둘째는 모니터로 눈을 옮기면서 말했다. '내 딸이지만 맞는 말만 하는구나, 축구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됐지, 잘생긴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흐뭇한 마음으로 계속 경기에 몰입했다. 그런데 잠시 뒤에 터진 조규성의 두 번째 골!, 김진수가 밖으로 나갈 뻔한 공을 센터링으로 올려주자 조규성이 거의 공중에 날다시피 하면서 헤딩슛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워낙 순식간인 데다 거리도 너무 가까워 가나의 골키퍼가 손을 대었지만 소용없는 골이었다!
"골인!, 골인!, 대~한민국!"
나는 다시 둘째와 손을 부딪히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아파트 전체가 잠시 들썩일 정도로 시끄러웠다. '그렇지, 이 맛에 축구 보는 거지!' 잠시 2002년의 그때가 생각났다. 경기가 끝나고 차를 몰고 나가면 여기저기서 '빠방빵 빵빵!' 클락션을 울려대던 그때가...
"지금 보니 얼굴도 정말 잘 생겼네... 축구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기면 더 좋지..."
둘째가 두 번째 골을 넣은 조규성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더니, 십 분 만에 이리 마음이 변할 줄이야...
"뭐야?, 누가 넣었어?"
치킨 맛 떨어졌다며 자러 들어갔던 와이프도 갑자기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조규성 선수, 두골이나 넣었어, 그래서 지금 동점이야, 얼굴도 너무 잘생겼지?"
"진짜?, 진짜 잘생겼네, 으이구, 가서 엉덩이라도 한번 두들겨 주고 싶다..."(여보 그럼 안돼!~ㅠㅠ)
두 모녀는 그렇게 합체? 되어 조규성의 얼굴을 찬양하면서 치킨을 뜯으며 응원을 시작했다. 나도 그때부터는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한골만 더 넣고 가나전을 승리하면 16강 진출이 훨씬 가까이 다가올 것 같았다. 조금만 힘을 내면 금방이라도 한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분 후에 골은 넣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가나였다. 골대 측면에서 패스한 공을 가나 선수가 헛발질했는데 데구르르 구른 공을 다른 가나 선수가 우리 골대로 차 넣은 것이었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나... 열띤 응원을 하던 우리 가족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아무도 말이 없어졌다.
"그러길래, 공을 막지 말고 선수를 잡으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저 선수한텐 수비가 아무도 없었잖아!"
와이프는 다시 벤투 감독으로 빙의해서 선수들의 질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응원하니까 경기가 좀 이기나 싶더니..."
그런데 이건 좀 아니었다. 우리가 두 골을 넣고 나서야 와이프는 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그건 아니지... 당신이 들어가고 나서 두 골을 넣고 나오니까 가나에게 한골을 먹었는 걸?"
그녀는 나를 한번 슬쩍 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걸 보고 있던 둘째는
"아빠, 왜 그랬어?, 그런 얘기 들으면 누가 좋아하겠어?"
라고 말했다.
'그래, 맞다, 내 입이 문제지...'
난 속으로 이렇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와 나는 그렇게 계속 경기를 시청했지만 끝내 가나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고 경기는 2-3, 우리의 패배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프리킥을 주지 않고 경기를 끝내버린 심판은 항의하는 벤투 감독에게 레드카드를 줘서 다음 경기에 벤투 감독은 관람석에서 경기를 봐야 하는 웃픈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응원했건만 경기에 지니 기분을 꿀꿀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첫째가 들어왔다.
"우리 큰 딸 왔어?"
"응 아빠."
그런데 첫째도 뭔가 풀이 죽어 있었다.
"혹시 너도 축구 보다 왔니?"
"무슨 소리야, 오늘 시험 망쳐서 학원에서 선생님께 야단 맞고 왔구만..."
그랬구나, 첫째의 표정이 어두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축구 때문에 일희일비했지만 첫째는 시험 때문에 험난한?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면서 첫째는 우리가 남긴 치킨을 허겁지겁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축구도 못 보고 공부하느라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는지 배가 고팠나 보다.
나중에 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나도 잠자리에 들면서 내 말에 상처받은 아내의 마음이 내일 아침엔 다시 풀어지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힘든 오늘을 보낸 한국 축구처럼 첫째도 다음 시험에선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