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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Sep 16. 2023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난다면?(1)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41)

(사진 제공-부산소방재난본부)


   지난 토요일인 9월 9일 오후 4시 15분, 부산 진구 개금동의 한 아파트 7층에서 불이 났다. 불은 출동한 소방에 의해 약 30분 후에 꺼졌지만 이 불로 아파트에 살던 40대 남편과 장모가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 떨어져 숨지고 4살 배기 손자도 큰 부상을 입었다.


https://youtu.be/7Qcx77dEekg?si=vg3zmV8G8ipuMd8L

(지난 주말에 부산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 난 화재, 무엇이 문제였나?)


   이 뉴스에서 말한 대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데는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주방옆 작은 방에서 화재가 시작되었을 때, 장모와 사위 그리고 4살 배기 손자는 아파트 출입문쪽으로 탈출하지 않고 베란다로 피신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대형 재난이 오면 패닉상태에 빠져 좌회본능, 지광본능, 퇴피본능, 추종본능에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여기서 좌회본능이란 좌측통행을 하고 갈림길이 나오면 좌측으로 선회하려는 것, 지광본능은 빛을 따라 밝고 환한 곳으로 움직인다는 것, 퇴피본능은 화염과 연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화재가 난 곳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 추종본능은 최초로 대피 행동을 시작한 사람을 따라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 전체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방옆 작은방에서 예기치 않게 불이 시작되었을 때 세사람 모두 불길과 연기에 대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퇴피본능과 지광본능에 따라 연기가 가득 차 있는 출입문 쪽으로 가지 않고 빛과 신선한 공기가 있는 베란다로 일단 이동했을 것이다. 사위이자 아버지인 40대 남자가 먼저 그쪽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보고 추종본능에 의해 장모가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그쪽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베란다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소방차가 도착해서 자기들을 구해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일분 이분 흘러도 소방차는 좀처럼 도착하지 않는다. 주방옆 작은방에서 시작된 불은 거실을 집어삼키고 출입문까지 점령했다. 도무지 거실을 가로질러 출입문까지 뛰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검은 연기는 곧장 거실을 지나 베란다까지 흘러온다. 좀처럼 숨을 쉬기가 쉽지 않다. 베란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내다보지만 아파트 7층은 사람이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아파트 아래선 주민들이 모여서 자신들을 보고 웅성대지만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없다.(차라리 이럴 시간에 소방차가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차를 빼 주었더라면 더 좋으련만...) 4살 배기 아이는 울기 시작한다. 이대로는 안된다. 검은 연기가 폭포수같이 베란다로 몰려온다. 베란다를 넘어 창틀을 잡고 버티기 시작한다. 장모에게 아이를 달라고 해서 자기가 안는다. 외국인 장모님에게도 베란다를 넘어오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둘은, 아니 셋은 소방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베란다 창틀을 잡고 버티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소방차는 어디쯤 있었을까?


   가장 가까운 소방서(119안전센터)는 그 아파트로부터 2.5km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현장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7분 정도였다. 그 아파트까지 오는데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많아 시간이 늦어졌다고 한다. 나도 소방차를 타고 화재 출동을 많이 해 봤지만 열악한 부산의 도로사정과 불법 주정차한 차량들 때문에 출동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개금동은 부산의 관문이랄 수 있는 동서고가도로와 연결되어 항상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곳이 아닌가? 거기다 때는 토요일 오후였으니 부산을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차들로 도로는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는 주차장을 지하로 빼서 지상엔 거의 차가 없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데 노후된 아파트들은 답이 없다. 어쩌다 한번 오는 소방차가 진입하기엔 너무 빡빡하게(?) 주정차를 해 놓은 차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불이 난 아파트 7층에선 세 사람이 창틀을 잡고 버티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들은 아파트 화단으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때 소방차에 탄 운전원을 비롯한 소방관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무전에서는 아파트 7층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고 하는데 꽉 막힌 도로와 불법 주정차된 차들 때문에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는 심정이란...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난다면 제일 먼저 소화기로 초기진화를 시도하고 그게 안되면 아파트 출입문인 방화문으로 탈출하라고 말하고 싶다. 본능적으로는 퇴피본능, 지광본능, 추종본능을 따르고 싶겠지만 그런 본능들을 꾹 억누르고 먼저 아파트 현관문으로 냅다 뛰어가라는 말이다. 일단 그곳의 문을 열어제끼고 나머지 가족들도 그곳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추종본능에 충실한 다른 가족들은 당신이 먼저 열어놓은 그곳으로 나와 생명을 건질 것이다. 만약 그곳을 연기가 먼저 점령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학교나 직장에서 안전교육을 받은 내용을 떠올리자, 물에 적신 수건이나 물티슈로 코와 입을 감싸고 낮은 자세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문 손잡이가 뜨거울지 모르니 문을 열 때는 잠시 숨을 참고 그 수건이나 물티슈로 손잡이를 감싸고 문을 여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만약 벌써 불이 거실과 천장까지 번져서 출입구까지 가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뉴스에서도 언급됐지만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는 경량칸막이와 완강기가 소방시설로 구비되어 있다. 경량 칸막이는 얇은 벽체로 되어 있어 쉽사리 부수고 이웃집으로 건너갈 수 있다.-하지만 이 경량 칸막이가 설치된 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피난 시설인 완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완강기 - 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렇게 플라스틱 함(?)과 철봉대(?)로 구성된 물건을 오다가다 많이 보았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것은 아파트나 고층건물 2~10층까지라면 설치되어 있는 완강기라는 피난기구다. -불이 난 부산 개금동 아파트도 7층이었으니 이것이 있었으면 제대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1992년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라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아파트나 고층건물 등에서 화재가 나면 지상으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구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아는 사람은 그 사용법까지 잘 알고 있는 반면, 모르는 사람은 저 플라스틱 통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용법은 이렇다.


https://youtu.be/LNwwjnQkRpk?si=2J475cu-qjvWSgL-

(완강기 사용법-화재로 대피할 때 완강기를 지지대와 연결할 시간은 없을 테니 평소에 미리 연결해 놓는 것을 강추!)

   

   화재가 나면 이렇게 사용하는 피난기구다. 그런데 위 사진처럼 평소엔 보통 연결해 놓지 않으니 무엇에 쓰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막상 불이 나면 그 때야 연결한답시고 어버버~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이번 아파트 화재에서도 만약 이 완강기가 있었고 가족들 중 누구라도 이것의 사용법을 알고 지지대와 연결해 놓았더라면 3명의 안타까운 사상자가 생기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아파트는 뉴스에서 말한대로 노후 아파트라 경량 칸막이는 물론이고 스프링클러, 완강기도 없어서 화재 피해를 키웠지만 안전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집에도 경량 칸막이나 스프링클러는 무리지만 완강기는 얼마든지 설치할 수 있다.(여기서 비용을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20~30만원 정도면 소방업체에서 나와서 노후 아파트에라도 설치를 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아파트 인테리어를 위해 수백 수천만원을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가족의 안전을 담보하는 일이라면 그 정도면 충분히 저렴하지 않은가? 물론 오래전에 지어져 소방법을 적용받지 않아 완강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도 있겠지만 법보다도 먼저 자신이 안전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 그럼 이제 다시 한번 복습해 보자, 만약 자신의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면 어떻게 할까?


1. 평소에 소화기를 준비하고 그 위치를 확인하여 불이 났을 때 소화기로 초기진화를 시도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평소에 소화기를 구비해 놓고 불이 나면 그것으로 초기진화를 시도해야 한다. 가정에서 나는 웬만한 불이라면, 그리고 초기에 그것을 발견했다면 가정용 3.3kg ABC소화기로 모두 진화할 수 있다.

-소화기 사용법은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생략한다.)


(A-일반화재, B-유류화재, C-전기화재에 모두 쓸 수 있다고 해서 ABC소화기이다, 평소에 잘 갖춰놓으면 화재시 소방차 1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2. 초기진화에 실패했다면 여러 가지 본능들을 억누르고 먼저 자세를 낮추고 물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후, 현관으로 뛰어가 방화문을 열고 탈출한다. 나머지 가족들의 탈출도 돕는다.


  3. 방화문을 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베란다로 가서 미리 연결된 완강기를 활용해 탈출을 시도한다,

(완강기는 한사람이 내려오면 다음 사람이 교대로 내려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른 피난시설(경량칸막이, 하향식 피난사다리, 대피공간)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활용한다.-


   간단하다. 딱 이 세가지다, 베란다로 가서 무작정 소방차가 오길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다. 소방차가 아파트에 도착해서 소방관이 당신에게 오는 시간보다 불길과 연기가 당신을 덮치는 시간이 훨씬 빠를 것이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에서 불법 주정차와 교통 체증이 해결되는 그날까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아야 한다. 먼저 스스로 초기진화와 탈출방법을 시도해 보고 그것이 안되면 소방관을 기다리는 편이 현명하다. 모든 국민들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화재가 났을 때 초기진화와 피난기구를 활용한 탈출법을 몸에 익혀 이런 안타까운 희생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부산 개금동 아파트 화재로 유명을 달리하신 두분의 명복과 남은 아이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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