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37)
(사진 출처-연합뉴스)
얼마 전 응급실 뺑뺑이에 관해 글을 썼지만 지난 한두 달 사이에 또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사망사건이 두건이나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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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은 경기도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노인이 2시간 동안 병원 11곳에서 '수용불가'통보를 받고 구급차 안에서 사망한 사건이고 또 다른 한 건은 서울에서 5세 남아가 한 대형병원에서 '크룹병'진단을 받았으나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하지 못하고 집에 와 있다가 증세가 악화되면서 다음날 다시 구급차를 타고 그 병원을 찾았지만 심정지로 사망한 것이다.
두 사건 모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응급실에서 병상이나 의료인력이 부족해 환자를 수용할 수 없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앞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일은 내가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던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왜 이런 중요한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고 현재까지 반복되는 것일까? 왜 이런 '응급실 뺑뺑이'가 도미노처럼 계속되는지 생각해 봤다.
1. 의사가 없다.
이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이유다. 가장 큰 원인이면서도 가장 바꿀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의사가 많고 응급실이 많으면 이렇게 길거리에서 헤매다 구급차 안에서 사망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건 쉽사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려 20년 이상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하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의료인력의 공급과 수요라는 경제학적(?) 문제까지도 개입되어 있다. 거기다가 의료시장의 기득권 세력과 정부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니 힘없는 우리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괜히 나섰다가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해선 논외로 하겠다.(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일개 전직 구급대원은 그냥 찌그러져 있어야겠다.ㅠㅠ)
2. 응급실에 경증환자가 너무 많다.
자, 여기서 우리가 개선할 부분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판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비장의 카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울시 응급병상 수는 OECD 평균의 3배라고 한다. 결코 응급병상 수가 적어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의료 시스템과 시설은 선진국 수준인데 그걸 이용하는 국민들의 인식이 후진국 수준인 것이 문제다. 조금만 아파도 큰 병원, 대형병원, 종합병원, 대학병원을 찾는다. 거기 가면 내가 아픈 곳을 바로 고쳐줄 것 같다. 동네 작은 병원들이 못 미더워서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이게 큰 병이라면 작은 병원 갔다가 고생은 고생대로 다하고 다시 큰 병원에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우리 국민들은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한방에 CT도 되고, MRI도 되고, 전문의 선생님도 바로 만날 수 있는 대형병원으로 간다. 그런데 그곳으로 바로 가자니 대형병원은 사람도 많을 테고 많이 기다려야 되겠지?, 그래서 꾀를 낸다.(내다 내다 죽을 꾀를 낸다.) 바로 119를 불러서 구급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구급차를 타고 간다고 결코 대형병원에 빨리 들어갈 수 없는 구조다. 병원에서는 구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나 택시를 타고 오는 사람이나 걸어서 오는 사람이나 모두 '중증도 분류'라는 것을 하게 된다. 거기서 경증인 환자는 외래로 보내고 중증인 환자는 응급실에서 검사와 처치를 하게 되는 것이다.(중증이라는 것은 응급환자로 시급히 처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 있는 환자이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응급 치료를 하고 그러다가 상태가 조금 호전되면 일반병실로 옮기게 된다.) 그런데 이 중증도 분류 단계에서 누가 얼마나 심하게 아픈가를 검사하기 위해 일단 모두 응급실에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증환자가 응급실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어디선가 진짜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생겼다고 해 보자. 구급대원은 현장에 도착해서 이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소방 상황실에 연락하겠지.
"***환자, 혈압과 맥박 블라블라~, 산소포화도 블라블라~, 체온 블라블라~로 ***질환 추정됩니다, 어디로 이송할까요?"
그런데 전화를 받은 소방 상황실, 당황(?)한다.
"그런데 A병원은 지금 병상이 없고, B병원은 의료진이 지금 출장 중(?)이고 C병원은 지금 X-ray가 안된다고 하네요, 정말 웃기는 상황이긴 한데, 그래도 A병원이 가장 크니까 거기서 좀 기다리다 보면 병상이 나지 않을까요? 일단 거기로 가 보는 게 어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상황을 설정한 것이지, 정말 이렇다는 건 아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환자 상태가 좀 안 좋긴 한데 일단 거기 가서 병상 날 때까지 대기하는 수밖에는요~"
그래서 구급대원은 안내를 받은 대형 병원으로 구급차를 몰고 간다. 그런데 그 병원 앞에는 이미 몇십대의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구급차가 왜 응급실 앞에서 대기하냐고? 환자만 내려주고 가면 되지 않냐고?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구급대원은 '구급활동기록지'라는 것을 적어서 의료진에게 사인을 받고 사본을 주고 와야 한다. 거기에는 환자의 상태와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한 검사결과, 응급처치 내용등이 적혀 있다. 그만큼 환자 인수인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환자를 의료진에게 인계하기 전에 떠나버렸다가 환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건가?, 그래서 구급대원 입장에서는 의료진에게 환자를 확실히 인계해야 하는데 의료진 입장에서는 병상도 없는데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병상이 있어야 확실한 검사도 하고 처치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급대원은 환자와 함께 병상이 나길 기다리며 응급실 앞에서 대기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경증 환자라면 환자에게 설명을 하고(뭐 다 아는 사실이니 환자도 이해해 준다) 자기도 어디 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다가 오면 될 것 같지만 지금 이 환자는 중증이다. 구급차 안에서 사망할 수도 있다. 다시 소방 상황실에 전화를 한다, 아니 주변에 환자를 받아 줄 만한 병원에 모두 전화를 돌린다.
"아니, 이 환자 산소포화도가 블라블라 라구요,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몰라요, 거기로 이송 안될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병원은 전문의 선생님이 부재중이라~"
"저희는 의료장비 수리 중이라고 오늘 오전부터 공지 띄워놨습니다."
"뚝!"
이대로는 안된다. 점점 산소 포화도 수치는 떨어지고 호흡과 맥박마저 약해져 간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정말 사망 직전이라고 생각되면 싸이렌을 울리며 가장 받아줄 만한(?) 병원으로 돌진한다. 환자를 이동식 들것에 올린 뒤, CPR을 치며 응급실 문을 열어젖힌다. 그러면 응급실에는 또다시 비상이 걸린다. 모든 의료진이 바빠진다. 앞서 대기하고 있던 경증환자나 중증환자 모두 대기시간이 더 길어진다. 대기하고 있던 중증환자의 상태는 더 나빠진다.
그러면 그 구급대원이 담당하고 있던 관할구역에서 또다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관할 구급대원이 중증환자를 이송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몇 시간 동안 말이다. 물론 바로 옆동네에 있는 구급차가 출동하겠지, 그런데 그 구급차도 경증환자를 데리고 병원에서 대기하느라 없다면?, 그 옆에, 옆에, 옆에, 옆에...... 옆에 있는 동네 구급차가 출동하느라 시간은 더욱더 길어질 것이다. 응급환자의 상태는 더욱더 나빠진다. 현장에 도착한 옆에 옆에 옆에 옆에..... 옆 동네 구급대원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다시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환자, 혈압과 맥박 블라블라~, 산소포화도 블라블라~, 체온 블라블라~로 ***질환 추정됩니다, 어디로 이송할까요?"
그렇게 해서 20년 이상 무한반복되어 온 응급실 뺑뺑이의 도미노 퍼즐이 완성되었다.~
첫 시작은 응급실에 경증환자가 너무 많은 것이었다. 도대체 왜! 동네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을 가지고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가려고 하는 것일까? 잘 몰라서 그렇지 동네 병원에도 얼마나 많은 명의가 숨어있는지 모른다.(역시나 잘 몰라서?) 하지만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조금만 검색해 보거나 입소문(사실 내 경험으론 이게 젤 정확하다.)으로 들어보면 동네 명의를 찾을 수 있다. 거의 모든 과(科)에서 그런 명의분들이 동네 곳곳에 포진하고 계신다. 그런 분들께 가면 문제가 생긴 곳의 거의 95% 이상을 문제없이 치료받을 수 있다. 물론 대형병원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곳은 동네 병원 명의 분들의 손을 떠난 문제가 생겼을 때 가면 된다. 그런 상황이 오면 그분들은 친절하게도 진료 의뢰서까지 써 주시면서 거기에 가라고 안내까지 해 주신다. 그러니 그런 동네 명의들을 잘 활용하자.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지 말자. 호미로 막을 건 호미로 막아야 한다. 그리고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정말 '응급한 환자'들을 위해 남겨두자. 그렇게만 해도 우리나라 응급실 뺑뺑이의 50% 이상은 없어질 것이다. 또 하나, 119 구급차도 그런 응급실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자기가 혼자서 걸어갈 수 있거나 택시나 승용차를 타고 갈 수 있다면 구급차를 부르지 않는 것이 맞다. 구급차는 병원의 응급실과 마찬가지도 진정한 '응급환자'를 위해 남겨놓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구급대원으로 일하던 10년 전, 20년 전만 하더라도 몸이 조금만 아파도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택시비가 아까워, 혹은 걸어가기 조금 먼 거리라서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구급대원들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좋은 게 좋다고' 그런 사람들을 태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이 변했다. 의료환경은 날로 선진화되는데 왜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언제까지나 10년 전, 20년 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말인가?
의사들의 수나, 응급실 수, 응급병상의 수를 탓하기 전에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선진국의 국민들 몸에 배어있는 '배려의 문화'가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인식으로 바로 드러나는 것 같다. 나보다 더 아프고 급한 사람들을 위해 응급실과 구급차를 비워두는 습관이 이제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될 때 '응급실 뻉뺑이'라는 후진국형 사망 사고는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