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불이 많이 나는 것은 지금이 봄이 오는 시기로 모든 대지와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타이어만 해도 2002, 2006, 2010, 2014년에 이어 이번에 다섯 번째 화재라고 한다. 이쯤 되면 혹시 누가 일부러 불을 지르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될 만도 하다. 그리고 이맘때면 매년 반복되는 산불은 이제 뭐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해년 해마다 건조한 날씨와 안전 불감증으로 산불과 대형화재가 일어나면서 이를 진압하는 소방관들과 산불진화대원들이 희생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이번 하동 산불에 투입됐다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산불진화대원은 64세였다고 한다. 세상에~ 그런 험한 작업에 64세의 어르신을...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20kg의 등짐펌프를 지고 불타는 산길을 달리다 보면 젊은 장정이라도 쓰러질 법한데 64세의 어르신이 그런 일을 맡았으니 이것은 예견된 참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소방관은 만 60세에 퇴직하므로 그분은 소방관은 아니고 산림청 소속이신 듯한데 이런 인사제도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소방관들은 그에 비해 젊긴 하지만 각종 소방장비를 갖추고 소방호스까지 끌면서 산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소방관의 노동강도는 그에 비해 높았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방관이나 산불진화대원이나 동일하게 산불 현장에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항상 상존하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야간에 뜨거운 산불이 난 산에서 싸늘한 초봄의 강풍을 맞아가며 무거운 소방장비를 멘 채, 불을 쫓아 이리저리 뛰다 보면 나이를 불문하고 심근경색, 뇌경색을 일으키거나 관절, 근육에 무리가 오고 그것이 부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또 일어난 한국 타이어 화재에선 소방관이 발목 부상을 입었다. 나도 각종 고물상이나 오토바이, 자동차 정비공장등의 화재에 투입되어 화재를 진압해 봤지만 그런 곳에서 화재가 나면 일단 불꽃은 물론이거니와 연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는 항시 유류 취급이 많기 때문에 일단 불이 나면 급속도로 연소확대가 되거니와 타이어 등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온 주위를 감싼다. 뉴스에 보면 그 일대가 모두 타이어가 타면서 나온 유독가스로 인해 시민들이 대피하고 아파트에선 화재 사이렌까지 울릴 정도였다는데 그런 곳에 들어가서 화재를 진압해야 하는 소방관은 어땠을까?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사망에 이르는 유독가스가 나오는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화재가 나면 그곳에 있는 타이어는 모두 녹아서 제 형체를 잃어버리고 화재가 다 진압될 즈음에는 모두 딱딱하게 굳어 마치 돌처럼 되어버린다. 그런데다 소화수를 뿌려놓으면 마치 계곡에 있는 바위처럼 미끌거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바위처럼 딱딱해진 녹은 타이어 덩어리를 모두 곡괭이를 같은 도구로 파내어 물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그냥 놔두면 그 안에서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면서 다시 재발화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타이어에서 나오는 유독가스 때문에 공기호흡기를 쓸 수밖에 없고 그러면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미끌거리는 바위 같은 타이어 녹아 붙은 용융물 위에 올라 곡괭이질을 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곡괭이질 하면서 허리부상, 미끄러지면서 무릎부상, 발목부상등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큰 산불화재와 타이어 정비공장 화재를 모두 경험해 본 나로서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소방대원들의 부상과 사망 소식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런 부상과 사망의 언저리에 놓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상과 사망은 결코 소방관들의 잘못이 아니며 '화재'라는 작업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망과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나 보상은 아직도 열악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예로는 소방관 후배 C가 있다. 그는 작년에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에서 혈액암(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그는 나보다는 한 살 아래고 소방서도 나보다 일이 년 늦게 들어왔다. 그래도 근속기간이 20년 이상인 베테랑 소방관인 것이다.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해서 모든 화재현장이나 업무에서도 적극적이었다. 그런 그가 20년의 소방관 생활동안 얼마나 많은 화재현장을 겪었을까? 아마도 한국타이어와 하동 산불 같은 화재를 각각 20번 이상씩은 겪었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그가 들어마신 유독가스만도 얼마나 될까? 아마도 병이 안 나면 이상할 정도로 많이 마셨을 것이다. 그런 유독가스가 발암물질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병문안을 가려고 그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그가 아직 공상처리(소방 업무를 하다가 병에 걸렸음을 이유로 국가 책임으로 치료와 보상을 받는 것, 사기업에서 산재와 같은 개념)를 아직 못 받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C야, 오랜만이다. 너 요새 몸이 안 좋다며?, 그럼 요새 소방서 출근은 하고 있나?"
"요즘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서 휴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사람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병문안도 다음에 오셨으면 합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공상처리는 됐나?"
"아뇨, 제가 소방작업 중에 병에 걸렸다는 것을 제가 입증해야 된답니다."
"그래? 그럼 넌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
"몸이 좀 괜찮아지면 제가 전에 있었던 소방서 등을 돌면서 출동기록이나 그런 걸 다 취합해서 제출해야죠."
그 대목에서 말문이 막혔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항암 투병환자가 자신의 공상처리를 위해, 자신이 소방업무 중 암에 걸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그동안의 출동기록을 취합하러 다녀야 한다니... 하기야 요즘 워낙 개인 정보 때문에 말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나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이런 걸 보니 몇 년 전 소방직이 국가직으로 승격(?)되어 좋아하던 선배와 동료들 생각이 났다. 그들도 국가직이 되면 이렇게 일을 하다가 병을 얻어도 국가에서 지원이 쉽게 되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현실은 그전이랑 똑같다면 국가직이라고 해서 뭐가 좋아진 것일까?
앞의 두 사건과 내 소방관 후배 C의 일을 생각해 보니 씁쓸한 뒷맛을 감출 수 없었다. 위험한 소방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하거나 병을 얻고 다쳐도 마음 편하게 치료받고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몰려온다.(사실 내 왼쪽 무릎도 다친 지 2년이 지나 신청했다는 이유로 아직 공상처리되지 못했다.)
언론에서는 소방관들이 순직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국가의 영웅' 운운하면서 추켜세우기에 바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혀지고 그 뒤에 감춰진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이제는 말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소방관이 소방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으면 공상처리등으로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치료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하동지리산 산불로 사망하신 산불진화대원님의 명복을 빌며 간절히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