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육체적으로 무디어진다는 걸 느낀다. 젊을 때 느끼던, 달리고 점프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들의 즐거움이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서글프게도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이 즐거움으로 다가오기보단 귀찮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나의 왼쪽 무릎이 그랬다. 어릴 때는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하루 종일 해도 지칠 줄 몰랐던 나의 무릎, 군대시절에는 수백 km를 행군해도 아픈 줄 몰랐던 나의 무릎이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점점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차량으로 치면 장기사용으로 인한 노후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기야 이제 내 나이 만으로도 50이니 그동안 뛰고 굴린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지 않았을까?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무릎 연골이 닳아서 그렇겠지.., 그동안 내가 들고 나른 구조구급장비, 소방호스의 거리와 무게만 해도 얼마인데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60쯤, 은퇴하고 나면 요즘 유행한다는 인공관절수술이나 받아봐야지, 그때까지는 좀 아프더라도 이걸 가지고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비가 오는 날이나 힘든 출동을 다녀온 후엔 잠자리에 누워서 무릎이 욱신거릴 때면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올해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에선 검진 항목이 하나 더 생겼다. 만 50세가 된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MRI를 찍을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어깨나 무릎, 허리등 자신이 원하는 부분에 MRI를 찍을 수 있다고 했다. 난 평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왼쪽 무릎의 MRI를 찍기로 했다. 연골이 많이 닳았으면 인공관절 수술을 더 일찍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결과는 나의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전방 십자인대 파열'
(무릎 안쪽에 X자 형태로 되어있는 흰색 인대가 바로 전, 후방 십자인대)
MRI를 찍고 나서 내가 받아 든 병명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니... 이런 살벌한 병명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같이 근무하던 후배가 화재 진압 중에 갑자기 물이 들이차고 있는 소방호스에 걸려 넘어진 후에 판정받은 병명이었다. 그 친구는 그렇게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고 공상신청을 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나는? 나는 십자인대가 파열되고도 어떻게 이렇게 걸어 다닐 수가 있는 건가?
자세한 의사의 소견을 들어보니 이랬다. 십자 인대는 우리 무릎에 전, 후방 2개가 있는데 하나가 끊어지더라도 나머지 하나가 붙어있기 때문에 걷거나 뛰는 데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세한 것은 정밀 검사를 해 봐야 하고 정밀 검사를 해서 필요하면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수술은 무릎뼈 양쪽에 구멍을 뚫고 자신의 허벅지에서 인대를 떼어 그 인대를 뚫어놓은 구멍에 접합하는, 쉽지 않은 수술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격렬한 운동이나 작업을 한 적이 없는지?, 있다면 혹시 무릎에서 '뚝'하는 소리가 난 적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있었다. 그런데 최근이 아니라 무려 2년 전이었다.
2020년 6월,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다. 아침에 내가 근무하던 안전센터로 출근하자마자 화재 출동이 걸렸다. 화재는 우리 안전센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하구 다대포에 있는 '아미산'이란 산에서 난 산불이었다. 산기슭에서 시작된 산불은 바닷가의 해풍을 타고 산 정상으로 타올라가고 있었다. 관할 안전센터인 다대분대는 산 아래쪽에서 화점을 향해 소방호스를 연장하여 산을 올라가며 화재를 진압하고 우리 분대는 산 중턱에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며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방차를 몰고 등산로로 진입해 산 아래쪽을 바라보니 시뻘건 불덩이가 산 위쪽을 향해 바람을 타고 맹렬한 기세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불이 우리를 지나쳐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 버리면 대형 산불로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산불은 위에서 내려가며 끌 수는 있어도 아래에서 올라가며 끌 수는 없는 법이다. 바람을 타고 산을 올라가는 산불의 속도가 사람의 걸음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른 소방차에서 소방호스를 펼쳐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산불머리에 바로 물을 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 불은 우리 쪽으로 오다가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도 얼른 불의 진행방향으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내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난 것은.
(다대포 아미산 등산로에서 아래를 보고 찍은 사진-아래쪽 산등성이까지 소방호스를 메고 뛰어내려 갔다.)
온통 돌밭으로 되어 있는 산의 경사면을 타고, 어깨에는 소방호스를 메고 그렇게 뛰어내려 갔으니 무릎에 온전할 리가 없었다. 왼쪽 무릎에선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산불이 우리를 지나쳐 산 정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산봉우리를 넘어서 부산시 전역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한자로 가마 부(釜) 자를 쓰는 부산(釜山)은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 같은 산들이 연이어 있어 산불이 나면 나머지 산으로 연소 확대되기 아주 좋은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지난봄에 강원도의 산불을 뉴스를 통해 이미 접한 터라 내가 지키는 부산을 산불에게 내어줄 수는 없었다. 아픔을 무릅쓰고 소방호스를 잡았다. 바람을 타고 산허리로 감싸도는 산불을 겨우 따라가 잡았다. 위에서 우리는 산불머리에 물을 쏟아부어 막아서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다대분대와 함께 1시간여의 합동작전을 펼친 결과, 끝내 산불을 제압할 수 있었다. 모든 나무와 풀들이 숯검댕이가 된 산 중턱에서 나는 겨우 주저앉았다. 다대분대 동료들이 올라와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우리도 그들에게 고생했다며, 우리는 조금 있다 내려갈 테니 먼저 내려가라고 말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나는 한 30분 정도 그 자리에 계속 주저앉아 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소방호스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난 돌밭에 뛰어내려오느라 무릎이 좀 삐끗한 것 같다고 말하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좀 쉬고 나니까 좀 절뚝거리긴 했지만 다시 걸을 수가 있었다. 아프면 늘 그랬듯이 퇴근하고 나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나니 다음날은 괜찮아져서 다시 출근할 수가 있었다. 그때는 내 무릎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당연히...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전방십자인대 파열의 원인이었다. 그때를 제외하곤 그렇게 격렬한 운동이나 작업을 하다 무릎에서 나는 '뚝'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걸 갖고 공상을 신청할 수는 없었다. 화재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즉시 공상을 신청해야 하는데 2년 전의 부상을 입었다는 추정을 가지고는 공상을 신청해봐야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 담당 직원의 말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정밀검사를 해서 수술을 하게 되고 공상으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수술비와 치료비를 오롯이 자비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몇 백만 원의 수술비와 치료비, 그리고 치료기간 동안 출근을 못하는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수술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을 바라며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수술 여부에 대한 판정은 병원마다 달라서 몇 군데의 병원을 다니면서 정밀검사를 해야 했다. 처음에 갔던 동네 정형외과에서는 인대가 완전히 끊어져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갔던 척추, 관절 전문병원에서는 걸을 수 있으니 수술까지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부산 대학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바라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전방 십자인대가 MRI상으로 완전히 끊어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부분 파열로 추정되며 지금 걷고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당장 수술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무리하게 격렬한 작업이나 운동을 하면 남아있는 부분이 완전히 파열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담당 의사에게 그 소견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나는 그 의사 분에게 고개를 숙이며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내가 처음 입사한 20년과 비교해 보더라도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20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고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 -지금 하는 말이지만 그때는 내 발에 맞는 소방 장화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지금은 신청만 하면 지급받는 게 소방장화니, 장비등에 대한 지원은 상당히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이 있다. 소방관들이 다치거나 병을 얻으면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 소방 병원이 없는 것도 그렇고, 다치고 병을 얻은 원인을 소방관 자신이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공상 시스템도 그렇다. 소방에만 일생을 바쳐 온 소방관들이 고가의 의료장비를 활용하고 법률적 지식까지 동원해서 자신의 부상이나 질병이 공무를 수행하다 얻은 것이라고 직접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고(故) 김범석 소방관은 2014년 6월, 불과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6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약 8년간 부산 119 구조대 등에서 270여 회의 화재출동, 1,000회 이상의 구조출동을 하다 2013년 11월 희귀병인 혈관육종암 판정을 받은 지 약 6개월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유족들이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고 국가에게서 실제 보상을 받기까지는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사회의 뜻있는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좌-살아생전 구조현장을 누비던 (故)김범석 소방관, 우-혈관육종암과 투병 당시의 모습)
나의 경우에도 왼쪽 무릎이 화재 출동 중에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2년의 세월이 흐른 후라 그것을 입증하기가 어렵고, 그렇게 되면 공상처리가 되지 않는다. 즉 화재 현장에서 입은 부상이나 질병을 소방관 자비로 부담해서 치료해야 하는 문제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문제점 때문에 소방관 출신인 더불어 민주당 오영환 국회의원과 소방 노조의 주도로 '공상추정제도'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상 추정제도란 소방 공무원이 업무 수행 중에 재해를 겪을 경우 일단 공상으로 인정하고 그 인과관계의 입증 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소방관들이 병을 얻거나 다치면 일단 현장의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국가가 먼저 보상하고 그 후에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다시 시작되는 2023년에는 이 '공상추정제도'가 국회를 통과하고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신설되어 화재, 구조, 구급현장에서 불철주야 국민들을 위해 고생하는 모든 소방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2023년 새해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