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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Feb 17. 2023

안전 민감증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31)

   지난 8일 오후 7시 45분경, 부산의 한 아파트에선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아파트 수영장에서 수영강습을 받던 만 4세 남자아이가 수영장에 설치된 사다리에 구명조끼가 끼는 바람에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다 뒤늦게 수영강사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뇌사 판정을 받고 일주일 만에 사망한 것이다. 


https://youtu.be/VWS_HBEY2r0

(동영상 - KBS 뉴스)


   위 수영장은 아파트 커뮤니티에 딸린 것인데 안전요원도 없이 운영되었고 수영을 가르치던 강사 역시 눈앞에서 위험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장난치는 줄 알고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안전불감증에 또 하나의 사건이 더해지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마저 드는 오늘이다. 돌이켜 보면 대구 지하철 화재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 이태원 압사 사고까지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 사고들은 모두 '설마 그렇게 되기야 하겠어?'라는 안전불감증이 부른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설마 지하철에서 불이 나기야 하겠어?'


   '설마 그 큰 유람선이 침몰하기야 하겠어?'


   '설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걷다가 넘어져 압사당하기야 하겠어?'


   이런 생각들이 모여 그 큰 사건들의 도화선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큰 세 사건들은 모두 그 이전에는 우리 사회에 일어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니 '설마 그렇게 되기야 하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비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인명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맞은편 열차까지 옮겨 붙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맞은편으로 들어오던 열차 기관사는 그 지하철역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무정차 통과했을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배가 기울어진 초기에 세월호 선장과 해경은 신속하게 탑승자를 대피시키고 구조활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태원 거리를 걷다가 많은 사람들이 넘어져 사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자체와 경찰은 안전요원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 사고들은 예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될 줄은 모르고 긴급한 구조요청에도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다시 수영장 사고로 돌아가 보면 수영장에서 사망한 아이와 함께 수영을 하던 8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 수영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영강사는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구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대형사고의 판박이를 보는 듯하다.


   나도 한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이 다대포 해수욕장에 놀러 갔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일곱 살, 네 살쯤 되었을 때였다. 부산 끝자락에 있는 다대포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아 아이들이 놀기에 좋고 일몰이 아름다워 '몰운대'라는 지명이 있는 곳이다. 거기서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에서 게도 잡고 얕은 물에서 실컷 놀기도 하고 재밌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붉은 노을을 보고 있을 때였다. 여름이고 낙조가 유명한 해수욕장에 해 지는 시간이라 그런지 바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사람들에 밀려 얕은 바다로 나가 노을을 보게 되었다. 모두들 붉게 타는 노을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도, 집사람도 노을에 정신이 팔려 아이들에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첫째는 물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내 앞에 있던 둘째가 물에 꼬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집사람을 비롯한 아무도 노을에 정신이 팔려 둘째가 물속에 빠졌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른 무릎 정도 오는 얕은 곳이라 나는 둘째가 금방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는 그대로 고꾸라져 있었다. 내가 얼른 둘째를 물에서 건져내니 둘째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급하게 영아심폐 소생술을 하니 둘째가 '으앙'하고 울면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muyal/44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만약 내가 물에 넘어진 둘째를 보지 못했거나 응급처치를 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사고를 겪은 이후로 난 어디를 가더라도 '안전'을 먼저 챙기는 버릇(?)이 들었다. 어떤 곳이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관이나 노래방에 가서 '피난 안내도'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층 건물이나 다중이 모이는 곳에 가면 소화기, 소화전, 완강기의 위치와 그 관리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거창유치원 피난안내도-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되어 있다)


(소화기와 소화전 사용법-알고 있으면 비상시에 많은 도움이 된다(네이버 블로그 헬스 앤 라이프 펌)


(완강기 사용법-고층건물이나 다중시설에 설치되어 있는데 사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네이버 블로그 헬스엔 라이프 펌)


   그리고 수영장이나 바닷가, 계곡에 갔을 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살펴본다. 위험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내가 구조를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혹은 응급환자라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 차를 운전하다가도 어디선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한다. 어쩌면 내가 가서 119에 최초 신고를 할 수도 있고, 근처에 있는 소화기나 내 차에 있는 소화기로 초기진화를 할 수 있다면 소방차가 오지 않아도 되고, 혹은 와서도 아주 조그만 화재로 마무리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뿐만 아니라 모든 동료 소방관들은 일종의 '안전 민감증'을 가지고 있다. 화재현장, 구조현장, 구급현장에 워낙 많이 출동해 봐서 어디를 가면 뭐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간단한 안전 수칙을 소홀히 해서 사고가 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명의 소방관은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면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지만 퇴근을 하고 나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안전 파수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 모든 시간에 소방관이 있을 수는 없다. 지난회에도 말했지만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일반 시민들도 안전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안전 지킴이가 되어 이런 위험요소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2, 제3의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사고, 이태원 압사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작 본인은 자기가 그렇게 엄청난 사고를 막은 줄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가까이는 자신의 이웃과 친지, 지인을 위험에서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이런 어린 생명을 하나라도 살릴 수 있다면 적당히 '안전 민감증'에 걸려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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