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방관아빠 무스 Sep 03. 2023

목욕탕, 폭발하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40)

(사진출처-연합뉴스)


   그제,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는 폭발사고에 이은 화재가 발생했다. 장소는 노후된 목욕탕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동네 목욕탕이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었다. 영업을 하지 않은 상태라 목욕 손님은 없었지만 문제는 그 화재를 진압하러 들어갔던 소방관 9명을 비롯한 무려 24명의 사람들이(숫자는 현재까지 오락가락하는 상태) 2차 폭발로 중경상을 입었다. 그중 2명의 소방관은 중상을 입어 응급수술을 받았고 다친 9명의 소방관 중에는 나와 같이 근무했던 소방관도 무려 3명이나 있었다. 나는 관할구역이 달라 현장에 출동하지는 않았지만 뉴스와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장의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처음 폭발이 일어나 신고가 들어온 시간은 오후 1시 40분경.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소방관들은 소방차 안에서 방회복을 입으며 불길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비 오는 날 폭발사고라? 뭐지?'


   비 오는 날은 공기 중의 습도가 높기 때문에 웬만해선 화재나 폭발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웬만한 소방관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폭발로 현장은 아수라장이고 건물에선 오렌지색 화염과 검은색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다. 불을 본 이상,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몸이 먼저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면체를 쓰고 공기호흡기의 밸브를 튼다. 검은 연기로부터 내 목숨을 지켜줄 것은 오직 이것밖에 없다. 소방차에  연결된 호스를 꺼내 오렌지색 화염에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다. 방수압력(소방호스에서 물이 나오는 압력)을 높여가며 불과의 사투를 벌인다. 불길을 제압하며 한발 한발 계단을 걸어내려 간다. 온통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있어 발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휴대용 렌턴에 의지해 발 밑을 더듬거린다. 그렇게 한 층을 내려가자 보일러실이 보인다. 화재 면적이 넓지 않으니 여기까지만 진압하면 되겠다. 기름탱크의 겉면을 식히기 위해 물을 뿌리자 열기가 더욱 뿜어져 나오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맹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오는 폼방수(소화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소화약제를 섞은 물을 뿌림)로 화염의 열기와 맞선다. 그렇게 삼십 분쯤 흘렀을까, 정신없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데 뭔가 터진다.


   '뻥!~뻐벙!' 


https://youtu.be/VK9muAPupVI?si=to0HH6JpkUyp-uen

 

   2차 폭발이다! 굉음과 함께 가공할 압력과 불길이 온몸에 부닥쳐 온다. 화재를 진압하느라 보일러실에서 목욕탕 입구까지 줄지어 늘어서 있던 9명의 소방관들은 일제히 그 압력과 불길에 휩쓸린다. 그 압력으로 어떤 대원은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그 불길로 어떤 대원은 심한 화상을 입었다. 


   나와 같이 근무했던 대원 중에 모 팀장님은 폭발 시 압력으로 온몸이 튕겨져 나가면서 심한 화상과 골절상을 입었고 응급수술로 비장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비장이라 함은 우리 몸에서 가장 내부에 있는 장기인데 그 비장이 파열되어 응급수술을 받았다고 하니 나머지 사지와 장기의 상태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분은 말 그대로 호인으로 위 아랫사람을 두루두루 잘 챙기시는 분인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대원들도 안면부, 수부, 다리, 목, 팔, 기도등 전신에 화상을 입었고 골절과 전신 타박상을 입은 대원도 있었다. 


   이렇게 소방관 직업이란 게 평소에는 한없이 평온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번 대형 폭발사고나 화재사고가 나면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란 걸 잘 알지만 그제 같은 일을 접하고 보니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차 폭발로 불이 난 보일러실에서 다시 2차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화재 현장에 진입해서 불을 꺼야 하는 것이 우리 소방관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친 9월의 어느 아침, 열받은 목욕탕 폭발로 안타깝게 부상을 당하신 소방관 선후배님들의 쾌유를 기원하며 우리 후배들은 앞으로 조금 더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폭발대응, 화재진화 작업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이전 09화 이제는 '수방관'이라 불러다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