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38)
(사진출처-뉴스 1)
2년 전 가을에 '폭우'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오늘 뉴스를 보고 이제는 제목을 바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극한호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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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호우는 (나도 잘 몰랐는데) 기상청이 시간당 누적강수량 50mm 이상, 3시간 누적강수량 90mm 이상동시에 관측될 때 발령된다고 한다. 어제 서울은 한 시간 동안 72mm의 누적강수량을 기록해 극한 호우 기준에 충족했고 그래서 기상청이 직접 40dB 이상의 경고음과 함께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것이었다.
세상에나~ 폭우도 아니고 극한 호우라니... 세상이 점점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아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단어였다. 우리 어릴 때는 비가 내려도 한반도 전역에 고르게 내리고 또 고르게 그쳤는데 요즘 기습폭우, 아니, 극한호우는 국지적으로 한 지역에만 게릴라성으로 퍼붓고 또 그치는 것이 마치 '각개전투'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그렇게 국지적으로 일시에 퍼붓는 폭우는 더욱 피해가 큰 법이다. 몇십 년 전의 장마는 오랜 시간 넓은 지역에 걸쳐 내렸기 때문에 강수량이 분산되어 피해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의 '극한 호우'는 좁은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강수량이 집중되기 때문에 인적, 물적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제만 해도 벌써 인명피해가 1명 사망, 1명 실종이다. 앞으로 장마전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 비가 더 많이 올 텐데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사망자와 실종자 모두 여주와 부산의 하천변에 있던 70대 남성과 60대 여성이었다. 하천변에 있다가 급하게 불어난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평소에 자주 가던 하천이라도 급하게 물이 불어나면 손 쓸 틈도 없이 물에 휩쓸려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10년 전쯤 장마철에 하천변에서 배수지원 작업을 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장마철이었는데 집에 물이 들어찼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었다. 소방서의 배수지원 장비는 두 가지 정도 있는데 바로 소방동력펌프와 수중펌프이다.
수해 현장은 부산외곽의 '평강천'이라는 낙동강 지류가 흐르고 있는 하천변이었다. 비가 많이 오니 하천변 저지대에 있는 집에까지 물이 들어찬 것이었다. 우리는 소방차에서 내려 소방동력펌프와 수중펌프를 각각 하나씩 꺼냈다. 그리고 동력 소방펌프는 팀장님과 내가, 수중펌프는 김반장이 설치하기로 했다. 우리는 펌프에 소방호스를 연결해서 물이 찬 집 바닥에 설치했다. 무릎 높이로 찬 물은 시간이 지나면 펌프가 돌아가면서 집밖의 평강천으로 빠져나갈 것이었다. 그런데 내리는 비가 심상치 않았다. 한 20~30분쯤 지났을까,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려 물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이대로 가다간 허리까지 차올라 물을 퍼내는 것이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았다.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평강천이 범람한 것이었다. 하천의 강물은 제방을 넘어 주택가까지 모두 휩쓸어 버렸다. 가재도구등 온갖 것들이 물에 둥둥 떠다니고 소방차 바퀴 절반높이까지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20~30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팀장님, 안 되겠는데요, 소방차까지 잠기면 우리는 여기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됩니다."
소방차 운전원이었던 김반장이 팀장님께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안 되겠다, 모두 철수하자, 수중펌프와 동력소방펌프 모두 철수해!"
팀장님이 명령을 내리고 상황실에 무전을 하고 신고자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집주인인 신고자는 벌써 다른 곳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우리는 모두 호스를 철수하고 나는 동력소방펌프를 고정시키느라 묶었던 로프를 풀고 혼자서 동력 소방펌프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탈출하지 않으면 소방차도 물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 같았다. 소방차 운전원인 김반장과 함께 동력 소방펌프를 소방차에 싣고 난 재빨리 뒷좌석에 탔다. 김반장과 팀장님도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탔다. 그런데 소방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시키려는데 수중펌프를 설치했던 작은 김반장이 뒷좌석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수중펌프가 떠내려갔습니다!"
"뭐라고?"
우리는 모두 내려 수중펌프가 설치되어 있던 데로 가 보았다. 수중펌프를 고정시키느라 연결했던 로프가 기둥에 묶인 채 물속에서 너울거리고 있었다. 헐거워진 로프 매듭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집 안에 설치해 놓은 수중 펌프가 물에 휩쓸려 가다니...
"제가 호스를 철수하고 나서 와 보니까 이렇게..."
막내인 김반장은 거의 울먹거리다시피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다, 좀 더 찾아보자."
팀장님은 김반장의 등을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하셨다. 하지만 비는 더욱 억수같이 퍼붓고 거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대문이 열려 있어 거센 물살이 평강천 쪽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수중 펌프는 그 물살에 휩쓸려 평강천까지 갔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찾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소방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거센 물살을 헤치고 안전지대까지 철수할 수 있었다.
센터로 철수해서 막내인 김반장이 자기 실수라며 사비로 그것을 사놓겠다고 했을 때, 팀장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하셨다. 그것은 너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같이 확인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고, 특히 팀장인 자신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돌아가며 센터장님께 한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날의 수중펌프 분실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거센 물살에 떠내려간 수중펌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장마철 집중호우, 아니 극한 호우는 로프에 매어놓은 십 킬로에 육박하는 쇳덩이인 수중펌프마저 쉽사리 휩쓸고 가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혹시나 시원하게 내리는 장맛비를 보려고 하천변을 걷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더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일시에 퍼붓는 장맛비가 당신의 발목을 감싸는 순간, 당신도 거친 수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하천바닥으로 휩쓸려 가버릴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