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36)
(사진 출처-다음 카페 성호초교 58회 동창회)
며칠 전, 강원도 양양의 한 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기던 사람들이 낙뢰를 맞고 쓰러져 1명은 사망하고 5명은 중경상을 입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런 낙뢰 사고를 뉴스에서 보니 10년도 더 지난, 내 구급대원 시절에 유일하게, 낙뢰에 맞은 환자를 이송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환자는 갯바위 낚시객이라고 했다. '세상에, 이 밤에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다니, 거기다 이렇게 번개도 치는 날씨에...' 출동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갯바위까지 가서 그 사람을 구조한 구조대원도 참 고생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해서 번개에 맞아 의식이 없는 그 사람을 보니, 고인에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낚싯대를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용을 썼던지, 장갑을 낀 손은 둥그스름하게 말려 있었다. 낚싯대를 타고 낙뢰가 들어간 흔적인 양, 검게 굳어버린 그의 장갑을 벗겨보니 손도 마찬가지로 반쯤 불타고 손가락 부분은 검게 변해, 탄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역시 불타서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었다.(옛날에 일명 '번개머리'라는 헤어스타일이 있었는데 그걸 떠올릴 만큼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솟아 있었다.) 한마디로 머리에서 얼굴과 목까지 번개에 순식간에 타 버려서 고기 타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감전사고는 몇 번 봤지만 이건 감전사고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머리와 손이 순식간에 숯검댕이가 되어 있었다. 선임이었던 김반장님은 낚싯대와 머리 두 군데로 번개가 들어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낚싯대를 들고 있던 손과 머리로 수억볼트의 전기가 순간적으로 들어가면서 타버린 것일 게다. 일단 분리형 들것에 누이고 이송을 시작했다. 번개 맞은 머리칼은 빗물에 젖어 있었지만 회색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나 얼굴의 화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동 제세동기 AED를 연결하고 심폐소생술 CPR로 들어갔다. 화상을 아무리 잘 처치해 놔도 심장이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지독한 고기 숯검댕 냄새를 맡으면서 응급처치를 해야 할 사람은 운전을 하는 김반장님을 제외하고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CPR 3주기를 돌리고 나서 심장리듬을 분석했으나 자동제세동기 AED는 전기충격이 필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심장 리듬은 무수축(직선)이었다. 명백한 심정지였다. 그나마 한 가지 고민은 덜었다. 만약 전기 충격이 필요하다고 했으면 일종의 전기 자극인 번개에 맞아 멈춰 선 심장을 되돌리려 다시 전기충격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적으로 고민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장이 스스로 다시 되돌아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기까진 계속 CPR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CPR을 계속하면서 반쯤 숯검댕이가 된 환자를 병원에 인계해 주고 나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일말의 기대와는 달리 의사의 사망선고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병원 문을 나서면서 뭔가 찝찝한 맘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강한 소나기가 내릴 수 있다는 일기 예보도 무시한 채, 왜 그 밤에 갯바위까지 가서 낚시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속담에 번개에 관한 것이 두가지 있는데 '번갯불의 콩 구워 먹듯'을 제외하고 기억에 떠오르는 건 역시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 맞는다'는 것이다. 벼락에 맞은 사람을 입에 단내 날 정도로 구급차로 한번 이송해 본 사람 입장에서 그 속담을 수정해 본다면 '모진 놈은 모르겠고, 대책 없는 놈 옆에 있다간 벼락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이 생전에 그리 모질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드넓은 개활지에 천둥번개가 치는 밤에 대책 없이 낚싯대를 갖고 들어가면 벼락 맞은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벼락에 맞을 확률은 무척 낮겠지만(정확히 검색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그 확률은 높아지는 것이다. (거의 100%까지 높아질 수도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번에 양양에서 서핑을 즐기던 사람들도 그렇다.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면 당연히 바다에서 나와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아니, 야외에서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미리 일기예보를 검색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일정을 취소하든지, 아니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정을 강행해서 무리하게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기습폭우나 태풍이 예보되어 있는데도 강가나 바다에서 캠핑이나 레포츠를 계속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런 자유도 낙뢰가 떨어질 확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그런 자유가 낙뢰를 불러들이는 피뢰침이 될 수도 있다. 자유를 만끽하려다 자신의 생명을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들은 그렇게까지 자유를 만끽하려 했을까? 아마도 그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https://v.daum.net/v/20230611153327792
유튜브나 언론에서는 낙뢰를 피하는 방법으로 30-30을 기억하라고 하던데 -번개가 친 후 천둥소리가 날 때까지의 간격이 30초 이내라면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마지막 낙뢰가 떨어진 후 30분이 지나서 대피를 시작하라는 것- 나는 이런 것도 좋지만 낙뢰에 대비해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전날 일기예보를 보고 낙뢰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면 다음날 야외 활동을 취소하고, 꼭 해야 한다면 낙뢰가 치기 시작하면 가장 신속하게 실내나 안전지대로 대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생명을 지키는 일인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 좋지 않겠는가?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런 날에는 야외활동을 아예 안 하는 것이다. 잠시의 즐거움을 위해 괜히 모험을 걸다가 사망 확률을 100%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그런 날 하면 왠지 더 재밌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나도 야외 레포츠를 해 봐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지만 그렇게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사람, 즉,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사람들 역시 너무나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전에 이런 말을 해 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말하지 않으련다. 오히려 낙뢰에 맞은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풍기는 지독한 탄 냄새를 맡게 해 준다면 그들은 맘을 고쳐먹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구급대원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저 시신을 옮기는 역할밖에 할 수 없었노라고 말한다면 어쩌면 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유월의 중순이고 야외 레포츠를 즐기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폭우와 집중호우, 태풍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어떤 사건 사고들로 이 여름이 얼룩질지 정말 알 수 없다. 부주의, 혹은 무대책으로 자신들이 뿌려놓은 기후 변화의 씨앗을 자연재해라는 이름의 태풍으로 맞고서야 사람들은 올해도 그것 역시 인재였다며 후회하며 또 다른 사람들을 탓하겠지... 어찌 이리도 일 년의 수레바퀴는 여지없이 똑같은 방향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몇 가지 바램이 있다면 그래도 올해는 그나마 이태원이나 세월호 같은 많은 인명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꽃 같은 젊은이들의 목숨이 어처구니없이 스러져가지 않기를, 소방관들의 덧없는 죽음이 더 이상 기록되지 않기를, 따가워지는 유월의 햇살 속에서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놀이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 바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