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35)
(사진제공-부산 항만소방서)
5월 19일 새벽 1시 21분, 출동이 걸렸다. 부산 암남동에 정박되어 있는 러시아 선박 화재란다. 우리가 있는 소방 2정대에서 배로 5~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대원들은 정신없이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소방정(불을 끄는 배)으로 뛰어갔다. 기관사 대원은 신속하게 시동을 걸고 경방(불을 끄는)대원은 배에 묶인 밧줄을 풀고 항해사 대원은 불이 난 쪽으로 배를 몰았다. 얼마간 가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 화염에 싸여있는 러시안 선박이 눈앞에 나타났다.
"선박 내부 어창(생선등을 실어놓는 창고) 쪽에 불이 나서 대원들이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소방정 706호는 어창이 있는 선수(船首)에서 선미(船尾) 사이 우현 1/3 지점에 방수하도록..."
"47(알았다, 오버!)"
배 안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은 연기만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어창이 있는 배의 우현 1/3 지점을 방수포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배의 열기를 식혀 주어야 육상분대의 대원들이 배 안으로 진입해서 화점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우리도 소방호스를 전개하여 불이 난 배 쪽으로 방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위아래로 방수를 해도 뱃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배는 미로처럼 격벽으로 구획되어 있는 데다 검은 연기까지 차면 내부 구조를 아는 사람도 화점으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화점에 정확히 방수를 해야(물을 쏘아야) 불은 완벽하게 꺼지는데 말이다.- 거기다 불이 나서 철판이 극도로 뜨거워져 있으므로 더더욱 진입이 힘들다. 30분 정도 쓸 수 있는 공기호흡기를 메고 있긴 하지만 소방관도 불에서 나오는 유독가스에 노출되거나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것이 쉽사리 진입을 할 수 없는 이유다. 거기다 배는 철판으로 되어 있어 금방 옆 칸으로 옮겨붙는다. 배의 한 부분을 끄면 다른 부분으로 불이 옮겨 붙어 결국은 배 전체로 연소확대(불이 나서 커짐)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새벽 1시 23분 접수된 화재 신고는 하루를 꼬박 지나서 그 다음날 새벽 2시에야 완전히 꺼졌다. 불을 완전히 끄지 않으면 재발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 대원들은 어느 정도 화세가 잡혀도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배의 뜨거운 부분을 식히기 위해 방수포를 때리고 육상분대를 지원하며 1박 2일의 선상출동을 마무리지었다.-그동안의 숙식도 모두 배 위에서 해결하며 말이다.(정확히 말하면 식만)- 물론 24시간 3교대 근무라 아침 8시쯤 다른 팀이 와서 현장 맞교대를 하긴 했지만 화재 진압에 참여한 대원들 모두 힘든 일정이었다.
하지만 화재 진압에 참여한 대원들과 화재 초기에 대피한 68명의 선원들 모두 인명피해는 없었으니 이번 뱃불 화재진압도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나 역시 몸이 좀 고되긴 하였지만 불을 끄고 소방정 706호로 다시 귀환할 때는 땀에 쩔은 방수복이 향기로울 만큼 뿌듯했다. 다른 대원들과 힘을 합쳐 폼액(화재를 질식소화하기 위해 소화수에 배합하여 넣는 첨가제)과 바닷물에 쩔은 소방정 706호를 세선(洗船)하고 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