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대구의 한 십 대 소녀가 4층 건물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119 구급대는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소녀를 이송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그 병원의 의사는 '정신과 진료가 필요해 보인다'는 이유로 타 기관 이송을 권유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로 찾아간 병원들에서도 '병상이 없다', '외상환자 수술이 시작됐다.', '(학회 출장 등으로)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각각 환자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여를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찾아 헤맨 끝에 소녀는 심정지를 일으켰고 결국 꽃 같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어떻게 의료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면 이게 바로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현주소이며 응급의료의 민낯이라고 말하고 싶다. 병원과 의사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정작 다쳐서 죽어가는 사람은 살릴 수 없는 대한민국 의료공화국의 실상인 것이다. 4층 건물에서 떨어져 발목과 머리를 다친 환자에게 정신과 진료 운운하다니 그 의사는 정말 정신이 있기나 한 건가? 거기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의료진이 중증외상이 의심된다면서도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이송하라고 했다니 이건 정말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구급차에서 내린 지도(=구급업무를 안 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내가 구급대원을 하던 그때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즉, 나도 이런 일을 숱하게 겪었다는 말이다. 조금 심각한 문제가 있는 환자(독극물을 음독했다든지, 두부외상(머리에 심한 외상) 환자라든지, 안면부 열상(안면부가 찢어지거나 베인 환자))라면 구급차에 타는 순간부터 이송병원 선정을 고민해야 했다. 이런 환자를 응급처치 하면서, 인적사항을 파악하면서(이런 환자들은 인적사항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보호자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119 상황실에 이송병원을 문의해 보면 이상하게도 이송할 병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길 위에서 급한 마음에 근처에 대학병원이라든가 종합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보면 위에서 말한 대로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
1. 침상이 없다.(전문용어로 뻬드가 없다. 이런 건 뭐 어쩔 수가 없다고 치더라도, 그런데 응급실에 경증환자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러면 당연히 중증환자가 우선인데 경증환자를 내리고 중증환자를 그 베드에 넣으면 그 경증환자가 화를 내겠지, 그러면 또 중증환자가... 아!, 머리 아프다,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걸로 치자.)
2. 의료진이 학회 참석이나 기타 사유로 부재중이다.(어떻게 의료진은 일 년 내내 학회 중인가 모르겠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는 최소한의 빽업 요원?이라도 채워놓고 학회에 참석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3. CT나 MRI 등 필수 장비가 고장 났거나 수리 중이다.(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필수 장비가 고장 나서 진료가 불가능하다는데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런데 그런 장비들은 왜 이렇게 급한 환자가 생길 때만 약속이나 한 듯이 고장 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수용불가라는 통보를 받고 이런저런 병원을 같이 헤매다 보면 환자는 물론이고 구급대원도 진이 빠진다. 환자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 보이는데 이송할 병원은 안 나오고 그야말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거기다 환자가 음주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협조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이게 술 때문인지, 질병이나 부상 때문인지 복합적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다.
한 십 년 전쯤인가 보다. 그날 자정이 좀 넘어서 이런 환자를 구급차에 태웠었다. 누군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오륙십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술이 떡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단순 음주라면 경찰관에게 인계하고 오겠지만 문제는 아저씨 머리에서 피가 퐁퐁퐁 솟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수리에서 눈 위에까지 쭉 찢어진 상처, 깨진 맥주병이나 소주병에 베인 상처 같았다. 상해라면 또 경찰을 불러야 하겠지만 목격자도 없고 본인도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일단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을 수배했다. 일반인이라면 안면의 부상이기 때문에 성형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이송해야겠지만 지금 이 시간, 새벽 2시에 취객을 받아줄 성형외과 전문의는 없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우리 관내에서 제일 만만한 병원, S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구급차에 태운 크고 작은 환자들의 60% 이상을 이송해 준 종합병원, 그곳에 응급실 간호사들과도 안면을 텄고 환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정도의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그 환자도 웬만하면 받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처음에 이동식 베드를 응급실로 밀고 들어갔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라슬레이션(열상)이네요, 주취자인가요?"
"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깰 거예요, 바이탈(맥박이나 혈압등 생체징후)도 괜찮고요... 지혈만 하면 돼요."
이전에도 이런 환자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는 듯했다. 환자를 빈 병상에 누이고 우리는 이동식 베드를 밀고 응급실을 나오려 할 때였다.
"아, 잠시만요, 그런데 이환자 우리 병원에 진료비 미수가 있네요?"
병원 원무부 당직계원이었다. 들어올 때 내가 준 환자 인적사항으로 어느새 컴퓨터를 두드려 본 모양이었다.
"이 환자 단골손님이에요, 진료비 안 내고 두 번이나 달아난...."
옆에 수간호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차, 나도 깜박했다. 우리나라 의료계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환경에서 돌아가는 생태계라는 것을. 나와 박반장은 슬그머니 이동식 베드를 돌려 응급실로 들어갔다. 술 때문인지, 열상 때문인지 꼼짝도 않고 누워있는 환자를 이동식 베드에 다시 실었다. 응급처치로 해 놓은 거즈와 붕대가 더욱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환자를 다시 구급차에 태우고 길 위로 나섰지만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그 시간에 두부열상을 입은 주취자를 받아준다는 병원은 아무 데도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카드는 시 의료원이었다. 거기는 그나마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이런 환자들도 받아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전화를 하고 가면 안 받아줄지도 모르니 일단 밀고 들어가서 쇼부(협상? 혹은 타협의 은어 혹은 일본어?)를 보자고 나와 박반장은 무언의 합의를 했다. 우리가 응급실 문을 열어젖히고 이동식 베드를 밀고 들어가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당직의사가 나와서 덜 깬 눈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아직 인턴이나 레지던트 과정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직 이 바닥(?)이 좀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드렁큰(drunken- 술 취했다는 말)인데 바이탈은 괜찮습니다, 안면부 열상 있지만 심한 상태는 아니구요...지혈만 좀 해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당직의사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빈 베드에 환자를 옮기고 응급실 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잠깐만요, 이 환자 전에도 한번 이렇게 온 적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원무과 직원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 그도 컴퓨터 모니터를 충혈된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여기 있네요, 이 환자 상습범이네요, 한두 번이 아니네요. 우린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린 다시 환자를 이동식 베드에 태웠다. 일단 구급차를 몰고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부산 끝에서 끝까지 환자를 태우고 이병원 저 병원 다니다 보니 벌써 아침이 밝아오려 하고 있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뿌엿게 날이 새려 하고 있었다.
"날 그냥 우리 집으로 태워주시오."
"뭐라구요?"
언제인가 감았던 눈을 뜬 그 환자는 새벽에 우리가 애간장을 태우며 옮기던 그 주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안됩니다, 상처가 심해요"
"아녜요, 이까짓 거, 뭐~ 된장이나 바르면 됩니다."
이런 쿨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남자를 봤나,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몇 번이나 구급차 신세를 지고, 이제는 아무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신세가 되었을까? 붕대를 풀어보니 피는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고 굳어버린 피딱지만 이마에 일자로 앉아 있었다. 보기 싫은 흉터가 남겠지만 이 쿨한 남자는 그조차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선택지도 없는 우리도 그의 말대로 '자택 이송'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가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머리에 붕대를 인도인의 터번처럼 감은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장서서 골목길을 걸어서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게도 좀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권했지만 우리는 차마 그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를 보내고 소방서로 돌아오는 길에 박반장과 나는 구급차 안에서 이런 처치곤란(?)한 환자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둘이서 답도 안 나오는 그런 말들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런 문제가 두 사람의 구급대원이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국가나 보건 의료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는 그 누구도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고 그저 구급대원들은 그날 당직인 자신들의 운수(?)가 나빴다고 자위하며 퇴근해서는 어젯밤에 자지 못한 잠에 곯아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뉴스(구급차 뺑뺑이)를 보니 이것이 그렇게 구급대원들만 힘들어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모두들 쉬쉬하긴 했지만 그것은 국가와 이 나라의 의료보건 체계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책임을 도외시한 채 그것들을 구급대원들의 업보(?)로 넘기며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흘러왔음을 알겠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것이 뉴스로 보도되고 그 뻔뻔스러운 짓을 한 4곳의 병원들에게 보조금 지급 중단과 과징금 처분을 했다고 하니 이제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도 알겠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더 바뀌어야 한다. 중증외상으로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구급대원들만 가슴을 졸이면서 구급차 안에서 살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와 보건 의료체계가 나서서 살려야 할 것이 아닌가? 정부에서는 그것을 위해 많은 대책을 내놓았다고는 하지만 그런 것도 다 공염불에 그칠까 염려가 된다.(지난 10년간 내놓은 대책들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런 정책들이 효과를 거두고 이 나라의 보건의료 체계가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서 십여 년 전의 나처럼 환자를 이송하면서 받아주는 병원이 없으면 어떡하나 염려하는 구급대원이 없어지기를, 중증 외상으로 이 병원 저 병원 떠돌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는 환자가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지기를, 연휴를 앞두고 취객들로 바쁠 이 저녁, 빗속에서 악전고투할 구급대원들을 생각하며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