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밤, 전북 김제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한 신임 소방관이 순직했다는 소식이 안타까운 전해졌다. 불이 난 집 안에 70대 노인이 있다는 말에 한달음에 뛰어간 30대 젊은 소방관은 끝내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요구조자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젊은 소방관의 마지막 모습)
그 신임 소방관은 임용된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인 데다가 어릴 때부터 소방관의 꿈을 키웠고 소방 관련학과를 나와 무려 4수 끝에 소방에 입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나 소방의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소방에 투신했기에 선택의 순간에 한치의 망설임없이 불이 난 가옥으로 들어갔겠지만 그런 훌륭한 소방관을 왜 우리는 지켜주지 못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새내기 때는 너무 열정이 앞서서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화재, 구조, 구급 현장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소방관도 있지만 그런 후배들을 잘 가르쳐서 안전하게 현장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선배 소방관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더구나 지난 회 '신속과 안전'에서도 언급했지만 소방관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활동하는 것이 불문율이자 철칙인데 왜 그 신임 소방관은 혼자서 불이 난 주택에 혈혈단신 뛰어들어가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런데 소방의 현실을 제대로 보면 그 신임소방관이 혼자서 혈혈단신 불이 난 가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첫째는 화재가 발생한 장소가 전북 김제시 금산면이라는 점이다. 물론 서울이나 부산등 대도시에는 소방 자원들이 많다. 거의 하나의 구(區)마다 하나의 소방서가 있고 그 아래 5~6개의 119 안전센터가 있기 때문에 화재가 나면 채 10분도 안돼서 10대 이상의 소방차와 50명 이상의 소방관들이 불이 난 장소로 집결한다. 하지만 중소도시나 시골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는 혼자서 한 지역을 지키는 나 홀로 소방관도 있고 4~5명의 인원으로 도시의 한 구(區) 이상의 면적을 지키는 안전센터도 있다. 그래서 그런 곳은 30분 이상이 지나야 후착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순직한 신임 소방관이 근무했던 곳도 이런 곳이 아니었나 싶다.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니까 4명의 선착대원이 화재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고 하는데 화재가 난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센터에서 4명의 소방관이 선착대로 도착한 것이다. 그중에 신임 소방관이 있었고 나머지 3명은 한 명은 분대장(보통 팀장이나 센터장이 맡는다) 한 명은 펌프차(화재 현장에 물을 쏘는 소방차) 운전원, 한 명은 탱크차(펌프차에 물을 공급하는 소방차) 운전원이었을 것이다. -보통 소규모 분대의 인원편성이 이렇다.- 그러나 화재 현장에 가면 펌프차나 탱크차 운전원은 거의 현장으로 진입해서 물을 쏘는 작업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출동이 걸리자마자 소방차를 운전해서 화재 현장에 가면 그때부터 그들은 소방차를 조작해서 물이 나오게 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장에는 나머지 두 명, 분대장과 신임 소방관이 들어가야 하는데 분대장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무전을 하기에 바쁘다. 현장 상황을 상황실에 알려주고 다른 분대들에게 알려서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후착대도 이 무전을 듣고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화재 진압 작전을 짜야 하기 때문에 무전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선착대의 무전은 후착대의 활동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면 화재 현장에 들어갈 사람은 누가 남나?, 그렇다! 바로 신임 소방대원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임용된 지 10개월 밖에 안된 그 신입소방관은 분대장의 지시를 받고 소방차에서 소방 호스를 꺼내 불이 난 장소까지 전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할머니 한분이 뛰어와서 그에게 외친다.
"우리 영감이 저기 있어!, 저 집 안에~"
그러면 어릴 때부터 소방관의 꿈을 안고 밤낮없이 소방관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임용된 지 10개월의 열정적인 이 소방관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후착대가 오려면 2~30분의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분대장을 바라보니 그는 무전을 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할머니와 이웃주민들은 자신만 바라보고 있다. 불이 난 집에서는 벌건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래서 그는 혈혈단신 그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여기까지 100% 나의 뇌피셜이다. 내가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서였는지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내 23년 소방관 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이렇지 않았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그가 조금 더 경험 많은 노련한 소방관이었거나 아니면 좀 더 인원이 충분한 소방서의 소방관이었더라면 그날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 조건 모두 비켜나가고 말았다. 그는 너무나도 헌신적이고 열정적이긴 했지만 임용 10개월밖에 안된 새내기 소방관이었다. 그리고 그가 속한 소방서는 선착대원 4명의 소규모 분대였다. 이 두 조건이 맞물려서 젊은 소방관의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몇 년 전 소방관들의 국가직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우리 선배 소방관들이 그토록 바라고 염원했던 것이었지만 지금 그렇게 되고 보니 사실 딱히 변한 건 없다며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동료들도 많다. 특히나 인원보강 측면에서 그렇다, 소방관들을 많이 뽑고는 있는데 여전히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끌 '진짜 소방관'은 부족한 것이다. 소방관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인원으로 화재, 구조, 구급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며 PTSD를 얻고 죽어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젊은 소방관의 슬픈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조건 중에서 하나는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두 가지는 바로 화재 현장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과 화재 현장에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충분한 동료 소방관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갖춰지면 좋겠지만 이 중 하나라도 완벽히 갖춰져서 더 이상은 젊고 헌신적인 소방관의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더 이상 영결식에서 소방관 아들의 주검 앞에 오열하는 어머니가 없기를, 새봄이 시작되려 하는 삼월의 어느 밤에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젊은 소방관을 추모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