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30)
(사진출처-연합뉴스, 지진으로 폐허가 된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 도심)
지난 6일 새벽 4시 17분, 튀르키예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 닷새째인 2월 10일 기준으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규모는 2만 명을 넘어섰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서는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내놓았다.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보도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튀르키예로 구조대와 지원금을 보내는 등, 많은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지만 당장 재난을 당한 그곳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거주지와 한평생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잃은 그곳의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망연자실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는 다행히 지진과 화산활동이 자주 발생하는 불의 고리-환태평양 조산대에서 비켜나 있다고 해서 마음 놓아도 될까?
하지만 이런 우리나라에서도 강진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바로 2016년 9월 12일에 발생한 경주지진이었다. 저녁 7시 44분과 8시 23분경에 각각 리히터 규모 5.1과 5.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는데 난 사실 처음에는 지진이 난 줄도 몰랐었다. 그때는 부산 북부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처음에 뭔가 좀 흔들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냥 주위 공사장에서 울리는 진동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다음에 온 5.8의 강진은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는 강력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소방서 사무실에서 낮에 있었던 출동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소방서 청사 자체가 흔들리고 마치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느낌에 정리하던 것들을 모두 놔두고 바깥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나뿐만 아니라 그날 근무하고 있던 모든 대원들이 소방서 청사 밖 주차장으로 나와 서로를 보며 계면쩍게 웃고 있었다. 재난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나서서 시민들을 구조해야 할 소방대원들이 이런 진동에 혼비백산해서 달려 나왔다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하고 계면쩍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 정도면 일반 시민들이 느낀 공포와 불안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지진발생!, 지진발생!
삼락동 ***-**번지 L아파트..."
우리가 청사를 빠져나온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구조출동이 걸린 것이다. 신고장소는 우리 소방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 나와 우리 분대는 얼른 소방차에 올라타서 신고장소로 향했다.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우리처럼 금방 집에서 뛰쳐나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9월이라면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늦여름 혹은 초가을 날씨라 사람들은 집 안에서는 가벼운 여름옷을 입고 있었지만 막상 지진에 놀라서 급하게 나오다 보니 차가워진 가을날씨에 추워서 떨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 소방차를 보자 구세주라도 만난 듯 우리에게 와서 물어보았다.
"금방 너무 놀라 다들 뛰쳐나왔는데 아파트 벽에 금이 가 있어요!, 이제 우린 어떻게 합니까?,
언제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요?"
그 말을 듣고 당시 우리 팀장님이 지었던 난감한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마도 이런 신고는 처음 받아보았을 테니까... 사실 지난 회차에서도 말했듯이 소방관들은 슈퍼맨이 아니다. 불이 나면 불을 끄고, 위험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아파트 벽에 금이 간 것을 소방관들이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언제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냐니... 그것은 아마 대한민국 최고의 지진 전문가가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더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팀장님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신고자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고, 지진 상황을 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고 돌아섰는데 돌아서면서도 마음이 굉장히 찝찝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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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바로 지진이란 재난의 속성이 그런 것이다. 지진이 닥친 후에 복구와 구조는 할 수 있어도 선제적으로, 또는 지진이 닥칠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지진이란 재난의 속성인 것이다. 화재나 교통사고, 그리고 다수의 재난들은 나름대로 주의하고 예방하여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구조할 수 있지만, 지진이란 게 어디 그런가? 아무런 예고도, 징조도 없이 순식간에 왔다가 많은 피해만을 남긴 채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지진이란 재난의 속성이란 것을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오직 신에게 기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책이자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는 재난, 그것이 바로 지진인 것이다.
우리가 그 아파트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연이어 다른 신고들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도움이 될까 하고 또 다른 지진 피해 장소로 이동했지만 하나같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처음에 만난 신고자와 마찬가지로 지진에 놀라 길거리로 나와 있었고 언제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우리 역시 뭐라고 해 줄 말이 없었다. 금이 간 건물도 우리가 어떻게 수리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단 한 군데, 우리가 구조작업을 할 수 있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단독 주택이었는데 지진에 현관문의 문틀과 문짝이 비틀어져 열리지가 않았다. 그 안엔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 딸이 있었는데 그 집의 창마저 창살이 달린 방범창으로 되어 있어 아무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우리는 능숙하게 방범창을 개방하여 그 세명을 구조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만약 여진이 일어나서 이 집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더 큰 여진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날 밤을 넘기고 나서는 더 이상 지진 구조출동은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엔 지진 교육이 강화되었다. 한 일이년 동안은 학교와 관공서, 공공장소를 찾아다니며 지진 안전교육을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을 그렇게 하고 나서 지진이 사그러들자 지진 안전교육은 점차 시부지기(?) 사라졌지만 그 당시 내가 지진 안전교육을 나가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지진 대피 요령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1. 지진이 나면 빠른 탈출이 가능한 곳에서는 바로 대피하고, 그렇지 않다면 튼튼한 탁자밑으로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지진이 발생하면 바로 탁자나 책상밑으로 들어가라고 하던데 내 경험으로는 1층이나 빠른 대피가 가능한 곳에서는 바로 대피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번 튀르키예 지진을 보더라도 건물 안에 잠을 자고 있다가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갇혀서 사망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아파트 고층이나 대피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곳에서는 외부로 대피를 하다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튼튼한 책상이나 탁자 밑에서 지진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겠지만, 1층이라든가, 바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빨리 외부로 대피를 해서 안전지대로 가서 지진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바로 탈출할 수 없다면 먼저 출입문을 열어놓는다.
자기가 사는 곳이 1층이 아니라든지, 빨리 외부로 나갈 수 없는 곳이라면 먼저 출입문을 열어놓고 탁자나 책상 등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물체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거기서 지진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다가 막상 잠잠해져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출입문의 문틀과 문짝이 비틀어져 문이 열리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여진이 온다면 그 안에서 탈출도 못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책상밑으로 들어가기 전에 출입문을 열어놓고, 할 수 있다면 전기와 가스를 차단하는 것도 좋다.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3. 지진이 잠시 멈춘 사이를 틈타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며 계단을 통해 탈출한다.
경주 지진에서도 경험했지만 한번 강진이 오고 나면 다음 여진이 오기 전에 잠잠한 시간이 꼭 온다. 처음 강진의 시간은 길어야 1~2분이다. 그 강진과 여진의 사이가 바로 지진 대피의 골든타임이다. 그때를 틈타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그런데 대피하면서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머리가 지진으로 인해 떨어지는 낙하물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으니 집에 헬멧이나 그 밖에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쓰거나 혹은 머리에 이고 탈출하는 것이 현명하다.
4. 탈출의 타이밍을 놓쳤다면 화장실로 대피하자.
그런데 만약 너무 놀라거나 무서워서, 혹은 뒤이은 여진으로 인해 탈출의 타이밍을 놓쳤다면 화장실로 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곳은 여러 배관이 지나면서 철근 사용이 많아서 집안에서 가장 튼튼한 공간이며 고립되었을 때 물을 확보할 수 있어 생존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진이 났을 때 구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화장실로 대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란 사실을 잊지 말자.
5. 외부로 탈출하고 나서는 넓은 곳으로 가고,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면 높은 지역(산)으로 대피하자.
물론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류가 몇십만 년 동안 위험에 대처하면서 쌓아온 진화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니 누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지진이 나면 안전한 곳으로, 넓은 곳으로, 사람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진이 나서 탈출하게 된다면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넓은 곳으로 가자.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지진이 난다면 쓰나미가 따라올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 재난방송에 귀를 기울이다가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경보를 들으면 최대한 신속하게 높은 지역(산)으로 대피해야 한다.
이상으로 튀르키예 대지진을 계기로 지진발생 시 대피 요령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해 보았다. 물론 평상시에도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지진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고 외우고 있더라도, 막상 지진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멘붕이 오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진처럼 급속하게 와서 많은 피해를 주는 재난은 찰나의 판단이 생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평소에 대피요령을 더욱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침착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1, 2분간의 강진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이다. 재빨리 대피를 할 수 있다면 대피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집 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서 거기서 강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잠잠해진 후에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면 많은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지진에는 안전한 땅이라고, 복 받은 땅이라고 말해 왔지만 세계 곳곳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이제는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진에 관한 정보를 듣고 비상 대피요령을 잘 숙지하고 대피해서 튀르키예와 같은 강진이 온다 해도 많은 피해를 입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