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내가 근무하는 부산도 이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소방관으로 첫발을 딛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바다와의 만남은 언젠가 예정된 운명 같은 것이었다."
서두가 좀 거창하긴 했지만 쉽게 말하자면 요즘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부산 항만소방서란 곳이고 거기서 배에 불이 나면 저 위에 보이는 '소방정 706호'라는 배를 타고 출동해서 그 불을 끈다. 한마디로 당분간 '바다 소방관'이 된 셈이다. 선박화재는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한번 나면 대형화재에다 끄기 힘든 화재가 된다. 따라서 인명피해도 클 수 있다. 바로 지난 일요일 발생한 화재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일요일이었던 그제,
'아빠 소방서 가?, 불 잘 끄고 와~'-요즘은 웬만한 말은 다 하는 우리 막둥이다.~ㅎ^^;;-
라는 막둥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한 소방서, 여유 있는 휴일근무가 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오전 10시쯤에 화재 출동벨이 울렸다.
화재출동!, 화재출동! 중국 국적의 화물선에서 화재 발생!
신고 내용을 살펴보니 불은 초기 진화되었지만 연기는 계속 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 소방 119 안전센터에서 소방정 706호가 접안되어 있는 부두로 뛰어가는데 멀리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두에서 화재선박으로 접근하면서 육지와 배 위에서 찍은 사진들-가까이 갈 수록 쉽게 꺼질 불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소방정 706호를 타고 가면서 보니 신고 내용과는 다르게 선미(船尾) 조타실 부분에선 아직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배의 갑판과 배아래 기관실 부분에서도 검은 연기가 대량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형 선박화재임을 직감하고 우리 대원들은 모두 방화복으로 갈아입었고 화재선박에 접근하자마자 706호에 탑재된 방수포로 화재선박을 향해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화재 선박을 향해 방수포로 물대포를 쏘는 소방정 706호와 나 -우측 아래 사진-)
한 30분쯤 이렇게 불길이 이글거리는 조타실을 향해 물대포를 때렸더니 이글거리던 불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흰 연기만 뭉개 뭉개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방관이 선내(船內)로 진입해서 정확히 화점(火点)에 물을 쏘아야지만 불은 완전히 꺼지기 때문이다. 바다 한가운데 운항 중인 배라면 소방정 706호를 그 배와 붙인 다음 나와 우리 대원들이 진입을 하겠지만 화재 선박은 항구에 접안된 상태였다. -배를 정박하고 그 안에 달려있는 크레인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처음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육상 분대의 소방차들이 이미 출동해 있었고 우리가 방수포로 외부의 불길을 어느 정도 잡은 후에 그 소방대원들이 선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우리 소방정 706호는 다시 불길이 치솟지 않도록 방수포로 그들을 엄호 방수할 준비를 하면서 -종종 다 꺼진 불도 다시 바람이 불면 되살아나 선내에 진입한 대원들이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평택 물류창고에서 소방관 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도 그랬다.- 그들에게 해수(海水)로 소방용수와 공급하고 화재진압장비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최초 신고 후 6시간이 지나도록 불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냉동 운반선인 화재선박은 해치(배 갑판의 뚜껑) 아래에 많은 화물을 싣고 있었는데 그 화물들이 타는 검은 연기 때문에 화재 진압대원이 해치 아래로 진입해서 불을 끄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크레인을 불러와 해치 하나하나를 모두 다 열고서 배 아래 화물칸에 소화약제를 뿌리는 질식소화 -산소 유입을 막아 화재를 진압하는 방법- 한 후에야 겨우 화재는 완전히 진압될 수 있었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고 나서야 우리 706호는 화재선박을 떠나 우리의 접안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몇 시간 동안이나 흔들리는 배 위에서 엄청난 수압의 물대포를 부여잡고 있다 보니 온몸은 쑤시고 뻐근했지만 무사히 선박 화재진압을 해 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뿌듯했다. 대형 선박 화재는 완전히 끄기가 어려워 다음날까지도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제처럼 해지기 전에 완전 진압을 한 것은 꽤나 빠른 시간 내에 이룬 성과였다. 몸은 피곤하고 고되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접안지로 돌아와 소방정 706호를 세차, 아니 세선(洗船)하는 시간에는 흥이 절로 났다. 배를 빨리 운항해서 화재선박까지 신속하게 도착한 항해사 대원과, 기관사 대원, 그리고 화재 진압대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멋지게 불을 끄고 무사히 귀소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든든한 우리의 소방정 706호를 보고 있자니 하루 동안의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