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사고의 원인과 진실을 놓고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 10시 15분, 많은 젊은이들이 핼로윈데이를 앞둔 토요일날 이태원으로 놀러 나왔고 통제되지 않은 좁은 골목길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면서 넘어지고 깔리고 끼면서 무려 156명(2022년 11월 2일 오전 6시 17분 기준)이라는 믿기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압사당했다. 혹자는 후진국형 인재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발생했다고 탄식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의 책임이 수만은 인파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면서도 적절한 통제를 하지 않은 정부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전직 구급대원이자 현직 소방관으로서 이태원에서 있었던 사고에서 있었던 CPR에 관해 얘기해 보고 싶다. 내가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던 10여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일반인들의 CPR에 관한 인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심폐소생술'이라고 하면 대충 알아듣던 일반인들도 CPR이라고 하는 어려운 의학용어가 나오면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날마다 TV를 켜면 CPR하는 요령이 나오고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도 CPR교육을 무료로 해주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실습용 마네킨의 가슴에 손을 포개 얹고 규칙적으로 누르기를 반복하는 동작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숨을 쉬지 못하고 갑자기 쓰러지면 먼저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CPR을 멈추지 말고 하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어왔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해서 집안에 쓰러진 아빠를 살린 아이의 이야기나 길거리에 쓰러진 행인을 살린 일반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 때도 CPR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빠지지 않았다.
그날의 CPR을 보고 있자니 내가 구급대원으로 근무할 때, CPR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던 일이 기억났다. 2013년,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9월쯤이었다. 가슴통증 환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은 오후 3~4시쯤, 늦여름의 태양이 아직 뜨거운 시간이었다. 완전 시골이라고 할 수는 없고 논밭 사이로 소규모 공장들이 드문드문 있는 도시 외곽의 공단지역이었다. 비포장 도로를 달려 찾아간 공장 앞에는 누군가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한쪽 손으론 왼쪽 가슴을 부여잡은 채 서 있었다.
"우리 사장님인데 갑자기 여기가 아프다고 하네요!"
환자의 왼쪽 가슴을 가리키며 하는 동료 직원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사장님이라는 그가 협심증을 넘어선 심근경색 환자임을 직감했다. 그의 오른손이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그랬고 방사통으로 볼 수 있는 어깨 통증까지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더운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리에선 식은땀을 흐르고 있었고 그 땀으로 젖은 얼굴은 검게 일그러져 있었다.
일단 그를 차에 태운 후 구급차는 출발했다. 차 안에서 심근경색 의심 환자가 있다며 병원을 수배해 줄 것을 소방 상황실에 요청했다. 환자는 가슴이 아프다며 구급차 베드에 누우려고 하지 않았다. 혹시 가지고 다니는 약이 있냐고 물어보니 상의 호주머니를 가리키길래 열어보니 검은 약병에 조그마한 흰색 알약이 들어있었다. 협심증 환자가 긴급할 때 복용하는 니트로 글리세린(심장 혈관 확장제 NTG)이었다. 이 사장님은 평소에도 협심증 증상이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협심증이 왔을 때는 좀 쉬면 나아지지만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심근경색은 쉬어도 통증이 계속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NTG 한알을 그의 혀 밑에다 넣어주었다. 그러자 잠시 후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은 다시 펴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좀 쉬면 괜찮아져서 오늘도 그럴 줄 알고 좀 쉬었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계속 왼쪽 가슴이 쥐어짜듯 아프고 그 통증이 어깨를 거쳐서 왼쪽 팔로까지 전이되는 바람에 직원을 시켜 119를 부르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그런 것이 우리 일이라며 무사히 병원까지 같이 가자고 말하며 그를 안심시킨 후 구급차 베드에 누우시라고 했다. 그는 겨우 베드에 눕더니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 15분 정도를 한가로운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다시 왼쪽 가슴을 잡고 이리저리 굴렀다. 기침을 하면서 거품을 흘리며 헛구역질까지 했다. 난 왜 이러시냐고, 정신 차리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바로 CPR로 들어갔다. 일단 기도를 개방하고 2회 호흡 불어넣기를 실시했다. 그러고 나서는 1분에 100회 정도의 빠르기로 깊이는 5cm 정도로, 워낙 많이 연습해서 몸이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자세로 손깍지를 끼고 그의 심장을 찾아 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의식을 잃어버렸다. 가슴 압박을 30회씩 3회를 하고 나서 그의 상의를 벗기고 자동 제세동기(AED)의 패치를 그의 몸에다 붙였다. 오른쪽 가슴과 왼쪽 옆구리에 하나씩, 그리고 그의 심장리듬을 분석했다. 자동 제세동기 모니터에서는 불규칙한 리듬이 관찰되었다. AED에서는 '제세동 해야 합니다.'라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그 말을 듣는 즉시 나는 내 심장보다도 더 붉게 반짝거리고 있는 번개모양의 제세동 버튼을 눌렀다. 여기서 나간 전류는 그의 몸을 타고 들어가 심장에 있는 미세한 떨림을 없애고 그의 심장을 다시 정상적으로 돌려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심장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의 심장을 위해서 나는 이 작업을 무한 반복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가 흘렸던 것처럼 나도 땀이 범벅이 되도록 구급차 안에서 CPR을 계속했다. 시골길에서 구급차가 덜컹거리며 내 손이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결코 가슴압박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얼마나 계속했을까? 아마도 5분에서 1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잠시 후, 그의 눈동자가 조금씩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보고 나는 어느 때보다도 기뻤다.
"정신이 좀 드세요?, 괜찮으세요?"
그는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으응..."
깨어난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다시 제세동기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불규칙하게 뛰다가 나중에는 직선을 그리며 '삐이~'소리를 반복하던 그의 심장 리듬이 어느새 일정하게 패턴을 갖춰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맥박수와 산소포화도도 정상수치에 가까이 표시되고 있었다.
"물 좀..."
그는 천국에 잠시 다녀온 듯한 표정으로 물을 찾았다.
"물은 안됩니다. 입으로는 아무것도 먹으면 안돼요!"
아쉽지만 나는 그에게 물을 줄 수가 없었다. 그를 무사히 의사에게 인계하는 것만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심정지가 올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제세동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멀리서 우리가 환자를 인계할 병원이 보이자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고 준비하고 있었던 의료진에게 그를 무사히 인계할 수 있었다. 몇 달 후, 그는 음료수를 들고 우리 119 안전센터를 찾아와서 그때는 정말 고마웠노라며,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심장에 스탠드 시술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그의 어두운 표정에 내 마음도 조금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라며 그를 위로했다. 한 달쯤 뒤에 나는 부산소방 본부장님으로부터 하트세이버 뱃지(심폐소생술과 AED를 활용해 심장이 멎은 사람을 살린 사람에게 주는 뱃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해에만 두 명을 살려 두 개를 받았는데 나머지 한 개를 받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트세이버 인증서(좌)와 하트세이버 뱃지(우)
누군가는 이태원에서의 CPR이 골든타임인 4분을 훌쩍 넘긴, 최소 30분 이상 지난 후에 행해졌다며 별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환자 발견 즉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CPR에 돌입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환자가 살아나건 혹은 그렇지 않건 간에 -그것은 신의 영역이므로 그분에게 맡기고- 일반인으로서 가장 빠른 시간에 제공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인 AED(자동제세동기)를 활용한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CPR만 하는 것 보다는 자동제세동기 AED를 같이 활용한다면 환자의 소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더 많은 AED가 있었더라면 한사람이라도 희생자를 더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더 많은 AED가 사람들이 밀집하는 장소에 비치되어야 하겠고, 또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AED와 CPR교육이 더욱더 많이, 그리고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래서 이번 이태원 사고와 같이 혹시라도 또 일어날지 모를 대형 사고로 많은 사람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국민 개개인이 응급구조사가 되어서 옆에 있는 나의 가족, 친구, 이웃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해보면 당황하게 되는 AED를 활용한 심폐소생술 방법을 아래와 같이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