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 소방서에서도 거의 비상 수준(?)으로 여러 가지 지시가 내려왔다. 화재 현장에서는 민간인들의 접근을 막는 경계선을 치고 진화작업을 할 것과(목욕탕 밖에 있던 일반인들의 피해도 컸기 때문) 개인안전장비를 잘 착장하고 진화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방화복이나 방화두건등 안전장비를 확실히 갖추지 않으면 같은 화재에서라도 부상정도가 심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한 동료들에게는 가급적 연락을 하지 말 것과(부상을 당해 전화를 받기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소방관의 입장에서 부상당한 그들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 모금에 동참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같은 소방관의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일정 금액을 그들을 돕는 모금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렇게 지나가나 했는데, 또 다른 뉴스가 나의 귀를 때렸다.
(화재현장에서 부상을 당해 손가락이 붙은 여경이 간병비를 지원받지 못하자 동료들이 모금에 나섰고 경찰청장이 간병비를 비롯한 치료비를 모두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뉴스, 그럼 소방은?)
소방관들도 10명의 부상자 중 중상자가 2명이나 되는데 그들의 간병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도 이 여경 못지않게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이 여경과 마찬가지로 화상을 입은 체표면적이 35%에 미치지 못해 간병비는 지원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화상환자의 체표면적 계산-9의 법칙으로 화상을 입은 부위의 비율을 계산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 여경과 마찬가지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간병인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를 오래 간호했기 때문에 간병의 세계에 대해서는 좀 아는 편이다. 5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실 때,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계셨는데 내가 직장을 두고 서울에 가서 아버지를 간병할 순 없었고 어머니 역시 긴 병수발에 지쳐 있어 간병인을 써야 했는데 그때 당시 하루에 10만원이었다. 올해 초에도 어머니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척추 압박골절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혼자서는 일어나 앉지도 못했기 때문에 역시 간병인을 써야 했는데 그때는 하루에 15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단위로 그것을 정산해 줘야 했다. 15만원씩 일주일이면 그것만도 105만원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간호사들에게 맡길 수도 없었고 7~8명에 달하는 환자를 한 명의 간병인이 맡는 통합간병실에서도 어머니 한 명에게 간병인이 계속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족이 생업을 제쳐두고 간병에 매달릴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도 중상을 당한 2명의 소방관도 이런 처지가 아닐까 한다.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꼼짝도 못 하고 거즈와 붕대를 두르고 침상에 누워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고 생리현상도 해결해야 한다. 간호사의 요구에 반응할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24시간 가족이 붙어 간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간병인을 써야 하는데 한 달이면 400만원이 넘는 돈이 나간다. 하지만 화상의 체표면적이 35%가 되지 않아 간병비를 자비로 내야 한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동료 소방관들이 정성으로 십시일반 모금을 한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부산 항만소방서에서는 400여만원, 부산진 소방서에서는 500여만원 정도의 돈이 걷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 2명의 소방관들에게는 그저 한 달 간병비 정도의 돈일 뿐이다.
수술과 입원치료가 끝나고도 화상은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심하면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꾸준히 통원치료하면서 연고를 바르고 거즈와 붕대도 사야 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피부과 약은 꽤 비싸다. 연고 하나에 몇십만원, 거즈와 붕대도 몇만원씩 한다. 미용과 성형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웃기지 않은가, 소방관이 불을 끄다가 화상을 입어 치료하는데 미용과 성형 목적이라니... 정말 개가 웃을 일이다.
웃긴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방관이 불을 끄다가 다쳤는데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해서 치료비를 감당한다? 이 어느 쌍팔년도 구시대적 발상이란 말인가?, 아니 쌍팔년도도 아니고 60~70년대의 못먹고 못살던 박통 때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성장을 이루었건만 소방관들의 처우와 복지는 아직도 박통 때의 사고방식을 못 벗어나고 있으니 이 또한 개탄할 노릇이다. 이 같은 일은 비단 소방관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뿐만이 아니다. 화재현장이나 구조구급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경우에도 전국의 소방관들이 계급별로 소방사는 얼마, 소방위는 얼마 이상 하면서 부조금?, 조위금?을 걷는데 전국에서 십시일반 갹출한 소방관들의 성금이 유가족들에게는 가장 큰 복지혜택이라고 들었다. 이 또한 웃기지 않은가?
일촉즉발의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들을 몸소 하면서 이렇게 순직이나 부상을 당하는 소방관들에게는 국가가 나서서 그 치료와 유가족들의 생계에 관한 모든 것들을 지원해 주는 것이 타당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위험한 화재현장, 구조구급 현장에 누가 과감하게 뛰어들어갈 것인가? 동료 소방관들의 성금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가 나서 모든 것을 지원하고 난 후에, 정말 같은 소방밥을 먹고 있는 동료애로서 동병상련의 정을 표시하며 해야 할 것이지, 이렇게 그것이 주(主)가 되어선 안된다는 말이다.
오늘밤에도 병상에 누워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아니 자신의 치료비를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사랑하는 동료들을 위해, 아니, 나의 미래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쾌유를 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세계 10위의 경제 문화 대국 대한민국의 지원으로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소방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몇 달 전에 펴낸 나의 첫 책 '나는 소방서로 출근합니다.'에 대한 인세는 지금부터 모두 부상당한 우리 소방관 동료들을 위한 소방화상전문병원의 건립을 위해 기부할 것임을 여기서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