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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Apr 22. 2023

나의 첫 책

아침 동산에서(34)

   작년 말, 내 브런치 글을 보고 한번 출판해 보자며 먼저 손을 내밀어주신 출판사가 있었다.(고맙게도~) 그래서 그 출판사와 함께 몇 개월간 졸작인 내 글을 손보면서 출판 작업을 했는데(주로 출판사가 하고 난 그저 비번날에 브런치 글을 한글 파일에 복사 붙여넣기 해서 이메일로 보내주는 작업 정도~) 그 결과가 이제 눈에 보이려 한다. 어제 출판사 대표님이 카톡으로 그 책의 표지 일러스트를 보내주셨다. 책은 다음 주중에 서점에 배포될 예정이라고 한다.


   나이 50이 넘어 첫 책이라니... 너무 감개무량(이런 단어는 내 나이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해 주는 듯~)하다. 물론 50이 되기도 전에 몇 권의 책을 낸 작가님들이 봐서는 아주 귀여운(?) 수준이겠지만 내게는 정말 하나의 버킷 리스트를 넘어서 20여 년 소방생활의 기념비이자 내 인생의 하나의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난 사실 젊은 시절(?)부터 글을 쓰는 데 관심이 있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도 글을 쓰려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거창한 전제 때문이었다.-사실은 학력고사 점수 때문?- 국문과를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떤 기술이나 기교를 배우기보단 작품에 녹아들어간 작가의 철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으니 지금이나 그 때나 자뻑?이 정말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는 당대 최고의(?) 작가인 이문열 선생이 지도하는 후학양성소인 '부악문원'이란 곳에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나중에 그는 보수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그가 지은 책들이 젊은 사람들(?)에 의해 책 장례식으로 불태워지는 등 수모를 겪었지만 그는 내 사춘기 시절에 흠모한 유일한 한국 소설가였다.


   거기서 간단한 면접과 테스트를 마치고 나서 그는 나에게


   "자네가 여기 오면 문무(文武)가 겸비되겠군~"

  

   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손발이 오글거리시는 분들은 이 부분 패쓰하셔도 됩니다~^^;;- 자신의 이름자에 글 문(文)자를 쓰니 무예 무(武)자를 쓰는 내가 거기 들어오면 문무가 겸비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곳에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글쟁이는 배고프다'라는 아버지만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후에 내가 소방서에 들어오고 나서 18년 후에 돌아가셨지만 그때까지 그 철학은 변함이 없으셨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외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그런 철학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https://brunch.co.kr/@muyal/6


   아버지는 내가 펜대 굴리는(?)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다. 더운 날에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추운 날은 따뜻한 히터 밑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겠냐며 늘상 부러워하셨다. 그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펜대 굴리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방공무원이 되었으니 아버지의 평생소원을 반쯤은 이뤄드린 게 아닐까?


   어쨌든 그런 아버지의 평생소원을 반쯤은 이뤄드릴 수도 있고 또 당시에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나는 위급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소방에 첫 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물론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1998년 2월에는 한창 IMF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내가 취직할 만한 곳이 많지는 않았었다.


   소방에 입문한 후에도 펜을 놓지 않고 비번날엔 글을 쓰곤 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좀 피곤하긴 했지만 소설이나 동화를 써서 신춘문예나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상 결과는 좋지 않았다. 피곤한 상태에서 글을 써서 그런가 생각해 보기도 하고 차라리 국문과에 가서 글 쓰는 기술이나 기교를 익혔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 때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직이 안되어 잠시 쉬고 있을 때 부산의 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논픽션 공모전에 응모하여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번번히 신춘문예나 공모전에서 쓴 잔을 들었기 때문에 나의 문학은 이렇게 날카로운 첫 키스만을 남기고 떠나가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문학의 날카로운 첫 키스)


   하지만 답은 가까이 있었고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었다. 내가 매일 출동하는 화재, 구조, 구급 현장에 답이 있었던 것이다. 2020년 3월 나는 처음 브런치를 접했고 어떠한 형식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수필형태의 글쓰기 플랫폼에 큰 매력을 느꼈다. 내가 매일 같이 접하는 화재, 구조, 구급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여기에 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막둥이도 태어났기 때문에 육아일기 형식으로 막둥이가 커가는 이야기도 병행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쓰기 시작했고 3년이 지나니 그런 이야기들이 내 인생 최초의 책으로 만들어지는 열매가 열린 것이다.  


(지식인 하우스에서 펴낸 나의 첫 책 '나는 소방서로 출근합니다.')


   화재, 구조, 구급 출동을 하느라, 또 신춘문예와 공모전에 투고할 소설과 동화를 쓰느라 보낸 불면의 젊은 밤들이 떠오른다. 웹소설의 조회수와 순위를 확인하느라 난 또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한 데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가상의 세계를 짜내느라 몰입하기보다는 내가 사는 현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가는 것을 독자들은 원했던 것이다.


   이제는 어떤 가상의 세계를 짜내느라 고민하지 않고 내가 사는 현실의 삶에 더욱 충실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소방관으로서, 또 아빠로서 겪은 일들을 내 소방관 후배들과 또 후배 아빠들과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그렇게 해서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 사용 설명서로, 이정표로, 때로는 지친 일상에 위안을 주는 한 편의 시로 남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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