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29)
처음에는 보통 애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대놓고 색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물의 얼굴과 옷 상관없이 일명 '황칠'을 하는 것이었다. 대놓고 크레파스로 문지르다 보니 옷과 손에 크레파스가 묻어 엄마에게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일차원적 그림, 즉 점과 선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계속 황칠을 하던 중에 최초의 이차원적 그림, 정말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을 어린이집에서 그려 가지고 왔다. 바로 우리 막둥이 최초의, 첫 그림이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다.
피자를 먹고 싶었던 것일까? 내 눈에는 외계인?이 피자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사실 막둥이에겐 이 그림이 무얼 그린 그림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첨에 너무 신기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놓았을 뿐이다. 하기야 생떽쥐베리가 만난 그 어른처럼 작가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어른의 해석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막둥이가 어린이집에 갔다 오면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막둥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나와 30분 이상 그림 놀이를 할 때도 있고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가 뭘 갖고 왔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공주 색칠놀이와 스케치북과 파스넷을 갖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물론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산타 양말 안에 파스넷을 넣어놓았다. 공주 색칠 놀이와 스케치북은 양말 안에 안 들어가서 그냥 바닥에 놓아두었다.~^^;;, 고맙게도 아직은 산타가 먹히는 나이다.-
어쨌거나 막둥이가 그림 그리는 놀이의 재미를 알고 그것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게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전공이 되거나 나중엔 자기의 직업에까지 영향을 미쳐도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괜찮다. 성장하면서 한 명, 두 명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세상엔 이런 재미난 일도 있구나 하는 것을 하나씩, 둘씩 배워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릴 때 이런 재미난 일을 아빠와, 혹은 엄마와 함께 했었지' 하는 조그마한 추억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