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겨울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30)

by 소방관아빠 무스

(사진 출처 - 부산 도치와 ** 어린이집)


요즘 날씨가 춥다, 올 들어 기록적인 한파에 웬만해선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계속 집에만 있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렇게 추운 날에도 밖에서 손 시려운 줄 모르고 놀았는데 요즘 애들은 감기 걸릴까 봐 그러는지 거리에 노는 애들이 하나도 없다.


그럼 애들은 다들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학원이다. 우리 막둥이도 학원에 갈 나이는 안되었지만 어린이집에서 이것저것 하며 놀다 온다. 부모 입장에선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육과 돌봄이 필요한 나이, 우리가 자랄 때는 그런 것 필요 없이 그냥 밥만 먹여 놓으면 알아서(?) 잘들 컸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그런 것도 나라에서 대신해 주는 시대에 우리가, 우리 애들이 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이런 사진을 보내왔다. 눈구경하기 어려운 부산에서 애들에게 가짜 눈이라도 눈구경을 시켜 주고 싶었던 것일까? 막둥이는 스티로폼으로 된 눈 결정체(?)를 보며 웃고, 삽으로 퍼 담고 눈밭(?)에 뒹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하기야 아직 진짜 눈을 접해보지도 못했을 테니 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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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막둥이가 가짜 눈(?)을 보면서 즐거워 하는 사진~^^;;)


그런 사진들을 보니 내가 처음 눈과 얼음을 보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도 부산에서 눈구경하긴 어려웠지만 겨울이 되면 얼음은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가족 모두가 흥분해서 어딘가 놀러 가자는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말을 못 했거나, 제대로 하지 못할 때였던 것 같다.- 어린 나를 업고 누나의 손을 붙잡고 어머니는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데리고 갔던 것 같다. 거기에 가 보니 엄청나게 넓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즐거운지 모여서 놀고 있었다. 뭔가 하얀 것에 눈이 부셨고 안 그래도 걸음마도 서툰데 발밑이 미끄러워 제대로 걷기도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미끄러져 있노라니 어머니가 웃으면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셨다. 당연히 눈싸움이나 눈사람 만드는 것도 할 줄 몰랐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눈밭에 미끄러지고 추운 겨울바람에 손과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콧물을 흘리는 것이 다였을 거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재워놓고 시장에 가서 외투를 사 왔던 기억이 난다. 한참을 자다가 일어나니 어머니가 시장에서 외투 -그때는 '돕빠'라 한 것 같다.- 를 사 와서 나에게 입혀주셨다. 그리고 이 정도면 어떤 추위가 와도 든든하다며 이웃집 아주머니와 함께 날 보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눈밭에 미끄러져 엉덩이가 얼얼했던 터라 무릎까지 내려오는 그 '돕빠'를 입으니 정말 뜨뜻하면서 이젠 눈밭에 미끄러져도 아무렇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추운 겨울날 장갑을 태워먹은 일이다. 그때는 걸음마도 잘하고 말도 잘하던 5살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에 유치원(그 때는 탁아소라고 했었다.)에서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로 장갑을 받았었다. 난생처음 산타 할아버지도 만나고 선물도 받아서 기분이 날아갈 듯했는데 막상 선물을 열어보니 내가 기대하던 기차 장난감이 아니라 어린이용 가죽 장갑이라서 정말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내 새끼 손 시려울까 봐 유치원에 몰래 전달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그로부터 한 달쯤 후에 일어났다. 어머니는 그날따라 뭔가 착각을 하셔서 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잊고 다른 볼일을 보러 나가셨던 것이다. 난 매일처럼 유치원에서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을 걸어 집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린 마음에 집 앞에서 훌쩍훌쩍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집 맞은편에서 리어카에 군고구마와 군밤을 팔고 있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잠긴 문 앞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는 어린애를 보고 왜 여기서 울고 있느냐고 물으셨겠지...


"흐흐흑 흐윽 ~!@#$%^&*~ 흑!~"


상황을 간파하신 할아버지께서는 내 손목을 붙잡고 -이건 그 때니까 가능했을 듯~- 군고구마 리어카로 데리고 와서 군고구마도 주시고 어머니 올 때까지 불 쬐라며 연탄아궁이 앞에 앉혀 주셨다. -아마도 군밤을 굽는 연탄 아궁이였던 듯~-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 놓고 본인도 바쁘셨는지, 어쨌는지 나에겐 별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난 어머니가 없어진 설움에 복받쳐 펑펑 울고 나서는 할아버지가 주시는 군고구마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가죽장갑을 끼고는 연탄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울기도 울었겠다, 고구마는 배부르게 먹었겠다, 잠도 쏟아지고... 까무룩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IMG_8198.jpg (연탄불 아궁이의 군밤-아마도 이런 것이었을 듯~(네이버 블로그 stranger 펌))


"무스야!, 니 지금 여서 뭐하노?!!!!"


잠결에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꼈는데 앗, 뜨거!


"이거 뭐꼬? 장갑 다 탔네, 다 탔어!, 벗어봐라, 안에는 괜찮나?!!!"


그랬다!, 졸고 있던 나는 끼고 있던 가죽장갑이 타는 줄도 모르고 손을 연탄아궁이쪽으로 점점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어머니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가죽 장갑과 함께 내 손도 타 버렸을 테지...


난 잠도 미처 깨지 못한 상태로 큼큼하게 올라오던 가죽 탄 내를 맡으면서 동시에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을 받아내야 했다.


"니, 여서 뭐 하고 있노, 가죽장갑 다 태워먹고 뭐 하고 있노?!!!!"


자신이 없는 사이 아들을 맡아준 고마운(?) 고구마 장수 할아버지에게 화를 낼 수는 없고 어머니는 그 화살을 내게 돌리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무안해하는 할아버지에게는 깍듯하게 인사를 드리고는 내 한쪽 귀를 잡고서 어머니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기야 문제의 시발은 자신이 집을 비운 데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무작정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날 더 야단쳤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가죽장갑을 보지 못했으니 어머니는 불에 탄 그것을 아마 어딘가 버린 것 같다. 그나마 내 손이 아무 이상 없으니 아마도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신 듯하다.


한 번씩 그때의 기억을 물어보면 어머니도 어제의 일인 양 기억을 하고 있다.


"그때는 정말 깜짝 놀랬지, 그날은 내가 뭐에 씌였는지 니가 유치원에서 돌아온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니 누나랑 그 시간에 어딜 가지 않았겠니, 가다가 생각하니 집에 니가 와 있을 것 같아서 급하게 되돌아갔는데 글쎄 니가 집 앞에 없어서 얼마나 찾았던지~, 그런데 맞은편에 고구마 팔고 있는 영감 앞에 니처럼 생긴 꼬마애가 하나 앉아 있지 뭐야, 그런데 너일 꺼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가까이 가 보니 연탄 아궁이 위에 그 가죽장갑이 보이는 거야, 그런데 그 꼬마가 가죽장갑을 낀 손을 연탄불에 갖다 대는데도 그 영감은 그것도 모르고 드럼통에 고구마를 굽느라고 정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무스야!'하고 소리쳤더니 니가 껌뻑 정신을 차리더라구, 그래서 너인 줄 알고 손을 잽싸게 끌어올려서 장갑을 벗겨 보니 장갑은 다 탔는데 니 손은 아직 멀쩡하더라고, 얼마나 고맙던지, 그래서 그 할배한테 한마디도 안 하고 집으로 왔지, 맘속으로 다들 감사합니다, 하고..."


그랬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 마음은 다 이런 것이다. 오늘 막둥이가 어린이집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니 세월을 거슬러 내 어릴 적 어머니가 생각났다. 오늘 밤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고 또 그 때 그 가죽장갑은 어떻게 하셨느냐고 자세히 한번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