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B 컨설턴트, 번아웃의 시작
어려서부터 내겐 사랑받는 공식이 있었다 - 열심히, 남들보다 잘하는 것.
부모님의 사랑은 내 성적이 높아질수록, 전교 등수가 올라갈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험을 잘 봐도, 못 봐도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부모님의 자랑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실패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못 하면 혼났고, 잘하면 칭찬을 받았다. 아주 단순한 공식이었다. 그리고 그 공식은 꽤 오래, 꽤 정확하게 작동했다.
다행히도 나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잘하는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버티는 데에는 소질이 있었다.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 되는 게 있으면 더 오래 앉아 있었고, 머리의 좋고 나쁨을 떠나 문제를 맞히는 데에는 점점 능숙해졌다. 그 과정이 칭찬을 받았다. 열심히 한다는 말, 노력형이라는 말. 나는 그 말들이 좋았다. 똑똑한 사람보다 끈기 있는 사람이 더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상 앞에 끈기 있게 오래 앉아있는 만큼 나의 성적은 올랐다. 성적이 오른 만큼 나는 사랑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배웠다. 사랑은 노력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계속 노력했다. 전교 1등, 특목고 입학, SKY 입학, 졸업 후 두바이의 전략 컨설팅펌 입사. MBB라고 불리는 컨설팅 업계의 정점. 억대 연봉.
인턴쉽 마지막 날, 리턴 오퍼를 받던 날, 부모님께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가가 들렸다. "그럼 취업이 된 거네? 잘됐다." 그 한마디가 내 인생 24년을 정당화했다.
두바이에서 나는 팀 막내, 신입 어쏘였고, 모든 걸 증명해야 했다. 새벽까지 슬라이드를 고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파트너의 코멘트를 반영했다. 주말에도 전화가 울리면 받아야 했다. 업무용 휴대전화를 늘 지니고 다녔다.
"Good girl." 파트너의 짧은 한마디.
그게 전부였지만, 그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야근도, 주말 근무도 다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
하지만 그 확신은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리셋됐다. 내가 이 치열한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했다. 입사 6개월 이후 첫 고과 성적 평가가 있었다. 나는 동기들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매니저는 "너는 시니어 컨설턴트 감"이며 "우리는 너의 승진을 위해 최대한 밀어줄 것"이라고 했다. 기뻤다. 빨리 승진이 하고 싶었다.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업무에 대한 꿈을 꿀 정도로 하루 종일 쉼 없이 일 생각을 하거나 일을 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100점을 받아야만, 1등을 해야만, MBB에 합격해야만 받는 건 사랑이 아니라 거래라는 것을, 그리고 그 거래는 끝이 없다는 것을.
다음 프로젝트, 다음 승진, 다음 성과.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멈추면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 같았다.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처음 한 일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