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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ug 16. 2019

이야기의 시작

이젠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내가 많이 아파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 이야기를 가슴속에 꼭꼭 묻어 두었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이제야 비로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몇 달 전 유난히 기분이 좋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부터였다. '나는 더 행복해질 자신이 있다'는 (뜬금없는) 생각이었다.


병원에 입원 해 있을 때, 나는 운동화를 신고 끝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꿈을 자주 꾸곤 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어느새 달리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제 가볍게 걷는 것, 가볍게 달리는 것, 그런 것들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울적해지지는 않는다. 대상 없는 원망도, 후회할 것도 없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후회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는 끝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더 이상 달리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달리는 법을 멈출 줄 알게 되었다. 달리는 법을 멈출 줄 아는 것은, 일단 멈추고 나니 중요하게 느껴진다. 멈추고 나면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 풍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프기 전의 나의 모습으로 살다가 죽는 날 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리고 수술 이후의 삶을 이렇게 살다가 죽는 날 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때 내가 한 평생 느낀 행복을 수치화시킨다면, 분명 후자가 더 클 것이라는 그런 믿음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나는 더 행복하니까, 그리고 더 행복해질 자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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