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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ug 16. 2019

어느 날 내 몸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작은 목의 통증이었다.


공부를 하느라 책상 위에 고개를 떨구고 있으면 뒷목이 아파왔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반 친구들 대부분이오랜 시간 고개 숙이고 공부하느라 목의 통증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가서 초음파 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몇 달 동안 낫지 않고 통증이 점점 심해져 목에 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에 다녀오면 통증이 잠시 완화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진통제를 하루 세 번 씩 먹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 직후 잠깐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목이 아팠다. 저녁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뒷목이 부러져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실 의자에 누워서 머리를 감는 그 몇 분 사이에 목이 너무 아파서 잠깐 멈춰 달라고 하고 고개를 똑바로 세워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목 근육통이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을 텐데, 그땐 그냥 넘어갔다. 그래도 그동안 학교에서 주변 친구들에게 목이 아프다고 꽤나 투덜거렸는지, 한 친구가 괜찮은 정형외과가 있다며 추천 해 주어 예약을 잡게 되었다.

친구가 소개해준 병원에 간 날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었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으니까 시험이 끝나는 날로 예약을 잡았다. 내가 목이 많이 아프긴 했던 것 같다. 평소처럼 시험이 끝나는 날 친구들과 밥도 먹지 않고, 영화도 보지 않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엄마 차를 타고 정형외과에 갔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MRI라는 것을 찍게 되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나는 그 시끄러운 기계 속에 들어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누군가 몸을 흔들어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검사 중에 뭔가 보여서 추가 검사가 필요하므로 조영제를 맞고 MRI를 촬영해야 한다며 주사 바늘을 내 손등에 꽂았다. 나는 다시 그 하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만, 이번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조영제를 맞고 나자 몸속 어딘가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와 손 끝, 발 끝으로 퍼지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덩어리가 퍼져나가서 내 몸을 축축하게 적셨다. 나는 MRI 통에서 나와서 혹시 내가 뭔가를 지려서 뜨겁고 축축하게 느껴진 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검사실 밖 복도에 앉아서 기다리자 금방 MRI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목 안에 혹이 찍혔다며, 모양이 나쁘진 않지만 크기가 커서 수술로 제거해야 할 것 같으니 대학 병원에 가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이 일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치 뉴스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 접하지만, 그 사고가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종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나는 그중 하나가 아닐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었다.


그다음 날, 정형외과에서 소개해 준 대학병원에 진단서를 들고 찾아갔다. 정형외과에서는 그 수술을 할 만한 의사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며 특정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의사를 꼽아 추천했다. 내 MRI 결과를 본 신경외과 의사는 빨리 수술을 할수록 좋다고 했다. 함께 병원에 간 엄마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술이 잘못될 확률이 있냐, 이 혹이라는 것이 수술을 해도 다시 생길 수도 있는 거냐, 수술은 한 번이면 되는 것이냐, 혹여 수술이 잘못되면 어떤 후유증이 남는 것이냐 등을 물었다. 그 질문들을 쏟아내고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너는 잠깐 나가 있어”

라고 하며 날 내보내려고 했다. 난 당황했다. 어차피 수술은 잘 될 것이고, 수술을 하고 나면 목 통증도 사라질 테니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런 엄마를 보고 ‘애를 내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수술이 잘못될 확률은 0.1% 정도 된다고 했다. 수술 후에 팔다리 저림이나 근력의 일시적인 약화를 느낄 수는 있겠으나, 평생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악성 종양인지는 절개를 해서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모양으로 판단해서는 악성 종양은 아닐 것 같기 때문에 수술을 통해 한 번에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약 한 달 후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하기 전에는 목 통증이 계속될 테니까 더 강도 높은 진통제를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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