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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Jul 10. 2024

호텔에서 한 달 살기

중국 생활

의도치 않게 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됐다. 어디 어디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나도 그 흥미로운 흐름에 한 번 편승해 보게 된 셈이다.


중국에서 지낼 집은 이미 정했지만, 거주증을 받기 전에는 입주가 불가능하다. 한 달 동안 거주증 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주소지를 한 곳으로 고정해 둬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서류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한 호텔에 대략 한 달간 머무르게 됐다. 이렇게 오랜 기간을 한 호텔에 장기 투숙하게 되는 것은 처음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곳저곳 호텔을 옮겨서 지내는 것과는 그 내용과 모양이 많이 다를 듯하다. 이왕 이렇게 상황이 되고 보니, 유명한 작가들이 호텔에 장기 투숙을 하며 글을 썼다던 일화들 생각이 났다. 언감생심.. 호텔 방에 있는 책상에 앉아 그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호텔 방에서 글을 썼을지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왠지 나도 뭔가 그럴듯한 글이라도 뚝딱 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호텔 방은 어찌 보면 굉장히 단조롭다. 내가 지내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닌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나는 호텔 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방이 크던 작던, 그 사각형 안에서 움직여 봤자 침대에서 소파, 책상에서 창문 앞일 것이다. 그런 단조로운 동선 안에서라면 생각의 흐름을 방해받을 가능성도 낮아서일까. 몇몇 유명한 작가들은 호텔에서 글쓰기를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자신을 외부와 단절한 채, 단조로운 공간 속에서, 내 것이 아니어서 특별히 신경 쓸 것도 없는 방 안에서라면, 글쓰기에만 몰입해 보는 게 수월할 수도 있겠다 싶다.  


호텔은 여행의 설렘 한 편에 자리하는 기분 좋은 공간일 수도 있지만, 평소와 다른 특별한 임무를 띤 채 방문하게 되는 업무의 연장선에 놓인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경우로 그 느낌이 더 강렬히 남아있다. 처음 해외에 있는 호텔에 홀로 투숙을 해 본 경험은 회사 출장 차 간 곳이었다. 업무 준비를 위한 부담감 때문에 멋지게 꾸며진 호텔 방에서 지내게 된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었다. 그러다 한 번은 늦은 저녁 호텔로 돌아갔는데, 방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유리벽 너머로 눈부시게 빛나는 피조물이 시야를 가득 채운 광경을 본 후, 이게 호텔에서 지낼 때 누리게 되는 기쁨인 것을 처음 이해하게 되었다.

 

호텔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기에, 타인에게 내가 지내는 모습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낯선 이에게 내 생활 모습을 보이는 게 그리 편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호텔에서 생활할 때도 침대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두거나, 내 물건들을 방에 들어왔을 때 보이지 않도록 가방 안에 넣어둔다. 한 호텔에 있다 보면 오고 가다 내가 머무는 방을 청소해 주시는 분도 지속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내가 지내는 방을 깨끗이 정리해 두는 게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나에게 주변에서는 불필요한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면 그건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요, 나름의 평범한 일상을 가꿔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며칠 동안 머물던 호텔의 방을 청소해 주시던 분은, 아침 일찍부터 방청소를 시작하고는 하셨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호호호호~ 경쾌한 웃음소리를 한참을 낸 뒤 좋은 아침이에요!라는 인사를 늘 건네오고는 했다. 그녀의 호호호호~는 멜로디를 만들어 음역대가 늘 다르고는 했는데, 경쾌하게 복도에서 퍼지는 웃음소리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 웃음소리에 순박한 미소를 환하게 지어주는데 그 모습을 보고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듯했다. 그런 모습에 기분이 나쁘다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안타까울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호텔 방을 매일 청소해 주는 그분을 만날 때, 지저분한 방을 만들어 놓는 사람보다는 깨끗이 방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녀의 유쾌한 웃음소리를 나도 좀 더 흐뭇하게 기억할 수 있다.


낯선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낯선 시간을 보내며 생활해야 하는 게 호텔 생활이다. 호텔에서 지내는 동안 무난하고 소소하게 일상이 흘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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